세가지 인간.
크게보면사람은세가지로분류할수있다.
꼭필요한사람.
있어도없어도그만인사람.
없으면더좋은사람이그것이다.
그누구라도이세가지의큰분류에서예외가되기는어려울것이다.
말하자면이런분류는사람에대한평가인셈이며한인간의’인간적가치’에대한
자리매김이라할수있다.
이때의가치는값이아니다.
그것은인간정신의목표가되는타당의당위(當爲)를말한다.
진,선,미와성(聖)의개념이그런것이다.

예를들어영국의세균학자인,
플레민경(SirAlexanderFleming1881-1955)은1929년푸른곰팡이의배양액에서
‘페니실린’은발견했으며1945년노벨생리,의학상을수상했다.
지금까지항생제’페니실린’으로목숨을건진사람은얼마나될까.
비누의발명이전염병의절반을없앴다면페니실린의발견은죽어야했던부지기수의
‘목숨’들을살려내는위업을달성한것이다.
꼭필요한사람의경우가여기에해당된다.
BC247-210년까지재위한중국진나라의시황제(始皇帝)는최초로중국을통일한왕이다.
그의능(陵)과아직도발굴중인’병마용갱’을보면삶에대한그의무서운집착을알수있으며
자기의사후세계를구축하는일에재원을탕진,국력이기우는지경에까지갔다.
결국50도채우지못하고죽은시황제는자기한사람을위해하나의국가와국민들을
도탄에빠뜨린,없으면더좋은인간인것이다.
이두사람의차이는결국,’기여도’의차이다.
기여(寄與)가무엇인가.
그것은남에게이바지하는것이며남에게이익을주는것이다.
한사람은전인류에게기여했으며다른한사람은자기에게만기여함으로수많은사람들에게
고통을준것이다.
한사람은가치있는인간이되었으며다른한사람은무용(無用)한인간이되고말았다.

‘인간의가치는그소유에있는것이아니라그기여도로평가해야한다.’
서구사회가오랫동안가지고있는인간에대한사회적가치관이다.
이가치관에깊이뿌리내리고있는삶의태도가
‘노블리스오블리지-noblesseoblige-고귀한신분에따르는도의상의의무’다.
즉,신분이높은사람-귀족-더좋은여건을가진자는더큰사회적인책임을진다는,
기여도가높아야한다는개념이다.
서구가동양에비해훨씬앞설수있었던것은이런사회적이념이오래전에정착되어
있었기때문이며거기에는기독교의’희생정신’이그바탕에깔려있다.
기여의골자는남을이롭게하는것이며거기에는예외없이’자기희생’이따른다.
기여가가지는가장큰가치가바로이’자기희생’이다.
앞서가는모든사회공동체에는이정신이그바탕에깊이자리잡고있다.
온갖종류의’자원봉사’가그하나의예다.

우리모두는인간으로태어나한번뿐인인생을살게된다.
자기가선택한것은아니지만자기가태어난사회공동체에속해서살게된다.
그리고우리모두는그사회공동체에서,
꼭필요한사람,
있어도없어도그만인사람,
없으면더좋은사람중하나로살고있다.
결국어떤평가를받는가하는것은전적으로자기가하기에달려있다.

가장먼저생각할수있는것이이러한’인간적평가’에대해전혀관심을가지지않고사는
부류이며이들의가장큰공통점은’동물적이기심’이다.
자기만편하다면,자기에게이익이된다면남이야죽든살든상관하지않는다.
다음이내가남에게이익을주는것도없지만나도남에게어떤이바지받기를바라지않는
‘고슴도치’형이다.
사회적으로해가되는존재도아니지만이익이되는존재도아닌회색지대에홀로사는부류가있다.
마지막으로자가기가진나름대로의탈란트와역량으로사회에이바지하고남에게이익을주는
부류가있다.
그들의공통점은’자기희생’을감수하는철학을가지고산다는점이다.
한가지기이한것은이런분류에는교육의많고적음,남여노소,빈부의차이와관계없이
한인간의’인간성’이그근간을이루고있다는사실이다.
‘사람됨’은그겋게중요한것이고그것은거의태생적인것같다.

어떤인간으로살다가갈것인가.
이문제는우리가’동물’이아니기때문에반드시해답을가지고있어야한다.
그해답이있어야’정신적존재’로서의바른삶을영위할수있다.
철학(哲學)이란원래세계,인생,지식에관한근본원리를연구하는학문을이르는말이다.
그러나개인이가지는’자기철학’은그렇게거창한것이아니라’삶의태도’에대해가지는
기본적이고소박한’생각’을뜻한다.
생각을가지고살면이미철학이있는삶이다.
그러나아무생각없이본능적으로만산다면그건’동물적인삶’이된다.
인간이생활하는행태가아무리시대에따라변해도사람과사람이모여사는사회공동체는
결국’인간관계’로귀결된다.
그’인간관계’에는더불어함께사는인간이어떤인간인가에따라규정될수밖에없다.
꼭필요한사람이많은사회,
있어도없어도그만인사람이많은사회,
없었으면더좋은사람이많은사회,
결국이세가지부류의분포비율이’삶의질’을결정하는것이고한사회공동체의성격을
만들어내는것이다.

지금우리사회는거의틀림없이서로가서로를향해
‘저런놈은없어져야해’하면서살고있을확율이높다.
그러나생각을바꿔내가사회에기여하는인간이되겠다고마음먹는다면그게더빠른길이
아닐까.
이일을가능하게하는사회적기능이제도적교육이다.
가슴아픈것은이렇게중요한교육커리큘럼이오직입시를위한도구와수단으로전락한사실이다.
우리에게희망이없는가장큰이유가교육의붕괴다.
인간을인간이되게가르치지않으면’없으면더좋은’인간이양산된다.
지금우리사회의형편이그렇다.
그런인간들이추구하는것은오직’소유’뿐이다.
‘돈밖에모르는놈’이얼마나무서운,해악을끼치는존재인지는모두가알고있다.
또한가지는,
우리사회는noblesseoblige가없다는점이다.
광복과함께반상(班常)의계층이무너지고사대부의’선비정신’이없어졌기때문이다.
더가진자,힘을가진자,더좋은여건을가진자들이’천민자본주의’출신들이기때문에
인간적품위가없다.
그들의삶에철학이있을수가없다.
바탕이없기때문이다.

2006년,
21세기는이제본격적으로초입에들어섰다.
이제우리는’먹고사는문제’는해결한국가다.
더중요한것은’배부르고등뜨신’동물적단계를벗어나인간이인간답게,품위를가지고사는
다음단계로진입해야한다.
이때가장중요한것이보통사람들의마음가짐이다.
우리사회에꼭필요한사람으로살겠다는자기철학을가져야한다.
그런사람들의분포비율을높이는길밖에다른방법이없다.
(이점에서TV의역기능과해악은망국론으로가고있다.)
옥에도티가있는법.
부정적인인간들이없는사회는없다.
그분포비율에차이가있을뿐이다.
우리는문맹율이제로에가까운문명국이다.
여기에문화를더하면되는것이다.
예를들어휴대폰은문명의상징이지만통화예절은문화에속하는문제다.
이두가지가조화를이룰때선진사회가될수있다.
우리라고해서선진사회를만들지못할이유가없다.
똑같이우리모두는인간적품위를가지고그런사회에서살권리도가지고있다.
그래서모두가함께그목표를향해노력해야한다.
선진사회는누가만들어주는것이아니라우리스로가만들어가는것이며그것은
꼭필요한사람들이만들어가는사회이기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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