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평(羅平) 과 홍하(紅河).
유채(油菜)는봄철에그특유의노란색꽃을흐드러지게피우는겨자과(科)의두해살이
식물이다.
우리나라에서가장규모가큰유채밭은제주도의성산일대에있다.
줄기높이1미터정도의유채는봄에원줄기끝에노란꽃이피며꼬투리는길이8센티정도의
원통형으로익으면벌어져검은갈색씨가나온다.
이씨로는기름을짜며주요한밀원식물(蜜源植物-꿀벌이꿀을빨아오는근원이되는식물.)
이기도하다.
다른이름으로는대개(臺芥),또는’평지’라고한다.

이유채밭의크기가서울면적의6배에이르는규모라면믿을수있을까.
실제로그렇게넓은유채밭이존재할수있을까.
그런데그게정말이었다.
중국남서부의운남성(雲南省).
그곳의나평(羅平)지역에는평지기준30만무(畝)의유채밭이있는데우리기준으로환산하면
9억평(坪)의넓이다.
산지에있는유채밭까지합하면46만무,실로13억9천평의넓이다.
그건유채밭이아니라끝이없는유채꽃의바다였다.
그장관을한마디로설명할수는없다.
아니불가능하다.
탄성이절로나왔고벌어진입을다물수가없었다.
성도(省都)곤명(昆明)에서버스로8시간이상가야하는오지.
그곳의들판과산의다락밭은유채꽃으로완전히덮여있었으며평지의유채줄기는내키를
넘는크기였다.
공기까지도노란색으로느껴질정도로그규모는엄청났으며유채밭사이사이에섬처럼
떠있는작은언덕들은그푸른색으로하여더아름다운조화를이루고있었다.
년간생산량은,
유채씨가4천만kg.꿀이1.500톤,봉왕장(로얄젤리)이1.000톤규모이며
씨를털어낸줄기는밭에서태워비료로쓰기도하고일부는화목으로,일부는가구점에
보낸다고했다.

이엄청난유채밭은주로나평지역에살고있는소수민족인보이족(布依族)3만4천여명이
경작한다고했다.
이렇게적은인원으로넓은지역의경작이가능한것은우리처럼일일이모종을심는것이아니라
씨를그대로밭에뿌리는경작방법을쓰기때문이며,대신수확은전부사람의손으로한다고
했다.
특히나평지역의유채밭이유명한것은이지역의습도가높고안개의발생빈도가높아
꽃을볼수있는기간이60여일에가깝기때문이라고했으며이는타지역의두배가넘는
기간이라고했다.
그건정말,쉽게볼수없는,일년에단한번봄철에만볼수있는중국땅의장관이었다.
이지역자체가전문사진작가들에의해비로서알려지기시작했을정도의오지이기도하다.
유채꽃속에서서저멀리유채밭끝자락으로지는해를보며,
언덕에서한노인이얼후를연주하며부르는노래를듣고있노라니그처연함은비감하기까지
했다.
평생에다시이렇게넓고아름다운유채밭은보지못할것이다.

운남성(雲南省)은,
글자그대로구름의먼남쪽에있는변방,
그러나중국에서는4번째로큰성이다.
서쪽으로는미얀마,남쪽,남동쪽으로는라오스,베트남과인접해있다.
대부분이표고1500이상의고지대이며넓이는43만6000제곱키로미터다.
동부는고원,서부는대종곡지대(大縱谷地帶).
기후는수직적차이가크며남부의하곡(河谷)은열대의몬순기후지만북부의산악지대는
한대성기후다.
성도(省都)곤명의표고는1992미터,
이지역에서의갖가지세력분쟁은원대(元代1279-1368)에이르러마무리되었다.
1253년몽골족은남조(南詔)를무너뜨리고이곳을중국제국의성(省)으로편입시켜
운남이라는이름을붙였다.
1949년이래중화인민공화국은운남성을중국에서최우선적인산업지대로만들었으며
1960년중국,미얀마조약이맺어짐에따라두나라사이의국경분쟁도끝이났다.
특히1999년의’꽃박람회’를통해운남성은전세계에알려지게되었다.

‘다락’이란재래식가옥에서,
부엌위에이층처럼만들어물건을넣어두는공간을이르는말이다.
다락밭은산의경사면을이용,계단식으로만든경작지를의미하며벼를재배하는경우
다락논이된다.
우리나라에서이런다락밭이나다락논을만드는경우십여계단미만이대부분이다.
그런데그다락논이십계단이나백계단이아니고천계단단위라면그걸믿을수있을까.
눈으로직접보기전에는믿기어려운일이다.
그러나평균고도1600의운남성홍하(紅河)지역에는1400여년전당(唐)나라때부터
하니족(含尼族)이축조한계단식논이그웅장한모습을간직하고있다.
중국정부가풍경구(風景區)로지정한면적만도8000무(畝),
즉2400만평이며홍하지역전체로는19만무,즉5억7천만평이나된다.
이곳에서는풍작일경우약50만톤의쌀이생산되며일모작농업이다.

원양(元陽)에도착한후,
바로노호구(老虎口)로가서보게되는일몰장면과멀리아래에펼쳐진계단식논들의
놀랍도록아름다운모습은감탄이절로나왔다.
사진을찍을엄두가나지않는일대장관이었다.
이튿날새벽도이수(多衣樹)에서보게되는일출은해가올라오는시각에따라다락논의
물이신비한색깔로변해가는장관이연출된다.
어떤인공적인영상이라해도그렇게아름다울수는없을것이다.
그건정말놀라운장면이었다.
그리고’빠다’,
빠다는하니족말로’어깨’라는뜻이다.
조상대대,’어깨’로흙을날라다락논을만든역사가담겨있는곳.
거기에는실로’삼천단-삼천계단’의다락논이있었다.
그장엄한모습은절로경외심을가지게했다.
중국정부는그곳을’紅河含尼梯田-Hongheterracedfields’라고부른다.
경사각도15에서75까지의가파른산에단지인간의손으로1400여년에걸쳐그엄청난
역사를이루어낸것이다.
저절로고개가숙여졌다.
UNESCO는사람의손으로만든이지역을인류의’자연유산’으로지정했다.

하니족은,
운남성남서부높은고원지대에살고있는소수민족이며특히고원의남서부에집중적으로
모여산다.
하니족은오스트로아시아인종의요소가강한티베트미얀마계통이다.
이들은원래보다큰이족(彛族)집단에속한하나의부족으로분류된다.
하니족은티베트에서이주해온최초의이민족으로한대(漢代)에중국으로들어왔다.
그들은몽골족의침입을피해도망온타이족에게밀려서서히이지역으로이동했으며
티베트미얀마어군에속하는방언을사용한다.
해발1400-2000미터지역에서다락논을조성,경작하고있으며평균기온섭씨15도,
년간총일조량은1.670시간이라고했다.
원칙적으로다락논은평지인아래에서위쪽으로만들고있으나지역에따라서는위에서아래로
조성하는경우도있다고한다.
놀라운것은그넓은다락논에필요한물을전부산위쪽의지하수에서얻는다는사실이었다.
하니족의경우,
61.453개의물줄기를확보하고있었고662개의저수시설을이용,위에서아래까지물을
공급하고있었다.
중국정부는비나안개에서대량의수분을흡수,지하수형성에뛰어난기능을가지고있는
수동과(水冬瓜)나무를계획조림하고있었다.
이놀라운다락논은1980년부터서구인학자들과사진작가들에의해알려지기시작했으나
워낙깊은오지이기때문에일반관광객은거의없는편이다.
하니족마을에서직접보게된벼는,
우리벼가둥글고황색이라면그벼는가늘고뾰죽했으며푸른빛이돌았다.
그쌀로지어놓은밥은전혀찰기가없었고흡사보리밥을먹는것같았다.
그러나’제사밥’으로지은노란색의찰밥은고추장을발라먹어보니아주맛이좋았다.
논에모를심을때그일은반드시여자만할수있다고했으며아마도이는생식기능에대한
상징적의미가있는것같았다.
그들은아직도재래식주택에서자기들만의전통적인방법으로생활하고있었는데
그오지에까지전기가들어온것을보면서중국의힘을느꼈다.

이번운남성의나평과홍하지역여행은
테마세이투어의’ManiaOnly’프로그램이었다.
하루에10시간에서12시간까지버스를타고가는오지.
게다가상대적으로높은여행비용으로는모객(募客)이어려운,상품화가쉽지않은케이스였다.
그러나볼것만분명하다면그모든것을감수하고나서는매니어도있는법.
그리고일년에단한번만기회가주어지는시기성때문에여행매니어가아니면어려운여행
이었다.
그러나결과는대만족.
두곳말고도오지마을의장날이나시장을둘러보는재미는각별한것이었다.
우리의전세기가거기에고스란히남아있었다.
말은단한마디도통하지않았지만몸짓과웃음만으로모든거래가가능한,우리와똑같은
‘사람’이사는곳이었다.
끝을알수없는유채밭과인간의위대한손이만들어낸3천단의다락논.
평생에그런곳을직접가서볼수있었다는것자체가행운이었다.
특히날씨가좋았던것은더큰행운이었다.

‘테마세이투어-Themesaytour’에는세가지가없다.
그하나는여행경비를지불한후그어떤잡비도다시거두는일이없다.
다른하나는,
버스안에서마이크를잡고하는자기소개와노래자랑이없다.
물론버스안에는음악도없다.
비싼돈내고왔으니자연을보고,자연을듣고,사색하라는것이다.
또하나는쇼핑이없다.
테마세이의이차별성은이미성공을거두고있다.
머리가깬,개성적인여행객들이오래동안겪어온고통을제거해버린것이다.
그러나,
숙,식,세세한부분까지의대고객서비스는단연일류다.
결코다른여행사들이쉽게따라올수없는수준이다.
비싼돈내고도그게비싸다고느끼지못할정도니장사는제대로하고있다는얘기다.
테마는,
내년3월에도나평과홍하에갈것이다.
그곳에꼭가보라고권하고싶다.
세상천지에그런곳이있다는것을봐야한다.
그어떤설명으로도,
그어떤사진으로도그곳을전달하지못한다.
가서봐야한다.
‘테마세이투어’는,
www.themesaytour.co.kr
02)734-1800이다.
그들이제대로,잘하기때문에널리알리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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