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에 체류기- 4 .
9월15일일요일.
어제는일찍잠자리에들었었기때문에잠을충분히잤고아침일찍일어났다.
이상하게도아내는여행중에자주시장끼를느끼곤하는데오늘도새벽에일어나떡,고구마,
컵라면까지먹고다시잠을잤다.
오늘은주일이기때문에오여사내외가출석하고있는빠리장로교회에함께가기로했고
점심식사는오여사댁에서하기로했다.

아내는느긋하게아침시간을즐기면서밖이잘내다보이는고색이창연한창가에이젤을펴놓고
오베르의교회를큰사이즈로다시그리기시작했다.
비로소이방이본래얼마나우아했는지를알수있었다.
그만큼가재도구와소품의배치는중요하다.
한화가가이젤을펴고창가에앉자방은완전히다른모습으로변했다.
정말놀라운변신이다.
그것은동,서양의공통점을나타내는문화의모습이기도했다.
나도느긋한자세로침대에누워FM104의음악을들었다.
우선놀랜것은그동안이차넬을들으면서방송국의보유음반의다양성이었다.
그리고그레파토리는엄청난보유량을말해주는것이며담당자의진행방법도인상적이었다.
곡명,연주자,작곡가를소개하는것외에는다른말은한마디도없다.
한가지재미있는사실은,
내자신워낙클래식음악을좋아하고많이듣다보니불어방송이지만곡명과연주자에대한
얘기는거의알아들을수있었다는점이다.
사람이어떤일에열중한다는것은그래서대단히중요하다는사실을깨달았다.

사실,
마담은프랑스여자로서는체구도큰편이고그성품이서글서글하고너그러운여자다.
자기는일요일에늦잠을잘것이니우리끼리마음대로아침을만들어먹으라고미리말했다.
식당에가보니,
바게뜨대신토스터용식빵과콘후레이크는있는데아무리찾아봐도우유는없다.
아내가커피를만들고토스터에빵을구워마아가린을발라먹었다.
마담은바게뜨와우유를준비하는것을까맣게잊어버린것이다.
까다롭고이기적인프랑스여자보다는물론낫지만확실히좀덜렁거리는타잎인것은사실이다.
아내는나중에매일아침새바게뜨와신선한우유를준비해줄것을정식으로요구했다.

한편,
이집의부엌구조는프랑스가정에서직장을가지고있는여자가가장효율적으로시간을쓸수
있도록모든기구들이합리적으로배치돼있다.
식당입구에서왼쪽벽에는설합식냉동고가자리잡고있다.이냉동고는설합마다온도가다르기
때문에식품종류에따라적절한배치로냉동보관이가능하고그만큼보관상태가양호할수
있으며요리를만들었을때본래의맛이유지된다.
그옆에싱크대,그리고4개의화덕을가진개스조리대가붙어있고그밑에세탁기와건조기,
그리고식기세척기가배치돼있다.
그리고반대쪽벽에는보통냉장고와전기오븐(이오븐은우리의[대우]제품인데오래쓴것이어서
되다말다한다)이있고헝겊내프킨등을담아놓는상자가붙어있다.
그리고입구쪽벽에는이집을지을때만든붙박이선반들이연달아설치돼있고온갖부엌용품들이
어지럽게들어있으며모두가고색이창연한것들이다.
당연히식탁은부엌중앙에위치해있고8명이함께식사할수있는사이즈이며식탁이나의자는
결코좋은제품은아니다.
그러나여자들이부엌에서짧은시간에능율적으로일할수있도록모든것들이배치된아이디어는
참으로돋보였다.
말하자면그만큼동선이짧아진공간인것이다.

마담은얘기하기를좋아한다.
그녀가제일많이사용하는영어단어는[because]다.
어제저녁에도수다를떨다가토스터에집어넣은식빵을6조각이나태웠고더태우지않은것은
순전히세바스챤의덕분이다.
세바스챤은엄마의그고약한습관을익히알기때문에매눈을하고주의를준다.
마담의식탁에앉는한까맣게탄빵을슬슬긁어내고먹는일에도익숙해져야한다.
악의가있어서그런것은아니니까.
그리고그나쁜습관은쉽게고쳐질것같지도않아보인다.

오전11시,
이군에게서전화가왔다.
교회가는길에대사가부탁한손님한분을모시고가야하니조곰일찍오라는것이다.
우리는곧출발,지하철로오여사댁에갔다.
그댁의한식식탁에서나는밥을두그릇이나먹었다.
오여사의요리솜씨는정말훌륭하다.
교회가는길에동승한손님은10월바스티유에서공연되는[리고레토]의연습을위해
빠리에체재중인소프라노신영옥씨였다.
빠리의장로교회는아주길이좁은동네에있는,프랑스인들의루터교회를오후시간에빌려쓰고
있었다.
건물은많이낡았지만아름다웠고안에는자그마한파이프올갠이있었다.
450여명이출석하다고했으며,
목사의설교는준비가부족한,참으로길고지루한것이었다.

예배를마치고돌아오는길,
증권거래소앞을돌때마침벼룩시장이열리고있는것이보였다.
길모퉁이에차를세우고우리내외와오여사,셋이서벼룩시장을구경했다.
그런데개개인이물건을들고나와파는것이아니라물건을수집해서파는장사꾼들이었다.
여기저기를살펴봐도필요한물건을하나도없었다.
우리는민박집앞에서내렸고,오여사가함깨들어와방도보고그림도봤다.
그들을보낸후우리는뒷길의시장에나갔으나일요일이라철시,그래서세곳의빵집에들러
찬찬히구경했으며처음에들렸던작은가게에가서포도와치킨페이퍼,그리고요구르트를
사가지고돌아왔다.

꼬마매튜는밖에서놀다가창가에서그림을그리는아내를보고자기엄마를졸라기어이
식구모두가우리방에와서그림을구경했다.
그림과그림그리는사람에대한정중한태도에서문화에대한기본자세가돼있는국민임을
감지할수있었다.
우리부부는우리가이댁을떠난후훌륭한한국인으로기억되기위해상당한노력을기울이고있다.
그동안이댁에는상당수의일본인들이체류했었고여기저기그흔적들이있다.
적어도함께유숙하고있는일본인도모꼬양보다더평가받는손님이되고싶은것이다.
우리의느낌으로는,
한국의오늘을모르는마담으로서는당연한것이겠지만,
우리가자기들보다는하위의국민일것이라고생각하는것같고이낡은집도우리의거주공간보다
훨씬우수하다는자부심을가지고있는것같다.
물론우리부부의기준으로볼때마담은평범한프랑스인이고이거주공간은우리의아파트와는
비교자체가안되는것이지만우리는일체그런내색을하지않고의연한자세를견지해나가고
있다.
도모꼬양에대해서도마찬가지다.

마담의저녁메뉴는,
푹삶은무우,당근,소고기의푸짐한프랑스요리다.
흡사우리나라의소고기무우국같은.아주맛이있는음식이다.
디저트로는맛이있는,잘익은과일들과프럼.
이제이댁의생소한식사에도익숙해져가고있다.
아내는마담에게,
아침식사는매일우리가스스로해먹는편이좋겠다고했고마담은기쁜표정으로동의했다.
대신매일틀림없이신선한우유와새바게뜨를준비해줄것을요청,동의를받았다.
서구인들은정당하고분명한주장과요구에대해서는이를존중하는정신문화가있다.
우리부부가이댁이요구하는민박비용을지불한이상이런요구는정당한것이고마담도그런
태도에대해전적으로이를수용했다.

이제는시차도많이극복되어10시가되니저절로잠이왔다.
매일매일을충실하게보낸만족감과감사한마음을가지고내게는그길이가약간짧은,
100년이다된골동품침대에들어갔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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