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에 체류기- 8 .
9월19일목요일.
아침식사를하려고식당에들어서니마담이창밖을내다보며비가온다고했다.
오늘은몽마르뜨에서그림을그리기로계획했었는데아내는실망하는눈치다.
식사후우리는여러가지로의논한후하루계획을다시짜기로했다.
이곳에서의하루가얼마나소중한것인가.
비가온다고방에앉아있을수는없었다.

가을비가내리는빠리,
우산을받쳐들고로댕박물관에가기로했다.
아침10시경까지,그리다멈춘꽃그림을다그리고여러해전사두었다가이번여행에가지고온
[지방시]의두번접는작고예쁜우산을펴들고나섰다.
뜻밖에도우산의무늬와색깔은이곳거리와잘조화가되었다.
평소전철노선도를열심히공부한덕분에가장가까운역까지직행,11시에는로댕박물관에
들어갈수가있었다.
본래그림보다는관심이적었던로댕의조각작품들을감상했다.
로댕이작품을만들어내는여러가지작업공정들이알기쉽도록축소전시된방에서는여러가지
새로운사실들을알게되었다.
조각작품들은생각보다어렵고복잡한물리적과정들을거치고있었다.
그리고뜻밖에도2층에서고호의[땅기영감]원판을보게되어아주기뻤다.
비가오는데도사람들이계속들어오고있었고우리는비오는정원에나가사진몇커트를찍었다.
그리고는로댕박물관옆에있는나폴레옹의무덤인앵발리드를구경했다.
안으로들어가지는않고건물을빙돌면서돔형식의웅장한교회형태의건물을둘러봤다.
비오는빠리의보도를우산을받쳐들고부부가함께걷는기분도상당히좋았다.
낭만적이기까지했다.
이런기회가아니면맛볼수없는즐거운시간이었다.
나보다는아내가더좋아했다.
그런데앵발리드를한바퀴돌면서방위가달라지는바람에우리가내렸던바렌역을찾을수가없었다.
엉뚱한지하철역으로들어갈뻔하다가두사람에게물어겨우바렌역을찾았다.
여행중에는언제어디서나모르면물어봐야한다.
바렌역에서지하철을탄후두정거장을지나몽빠르나스타워역에서내렸다.

점심시간이되어시장하기는한데들어가고싶은적당한카페가보이지않는다.
일본,중국,베트남,인도음식점들만늘어서있다.
결국깨끗하게단장된레스토랑을찾아들어갔으나생선전문식당이라소고기는없다고하면서
아주친절하게가까이에있는hippo에가보라고권한다.
빗길을더걷기도힘들어서체인점인hippo에들어갔다.
아내는빅햄버거를,나는스테이크와감자를주문했다.
비록빠리에위치해있기는하지만체인점인hippo는전형적인미국식식당으로전혀품위가
없었다.
주문한음식도내가원한것보다더태웠고아무맛도없는형편없는음식이었다.
그것도둘이서165프랑을지불했으니입맛이썼다.
궂은날만아니었다면더싼값에맛있는음식을먹을수있는카페를찾을수있었겠지만타워역
앞에서는그게안됐다.
도대체왜빠리쟝들이이런식당에그렇게붐비고있는지알다고모를일이다.
hippo를나온후바로길건너에있는문방구를발견,편지지,봉투,카드등약65프랑어치를샀다.
인상적인것은그문방구를경영하는중년의부부가풍기는친절과품위였다.
그리고그들은정직한사람들이었다.

다시몽빠르나스에나갈이유도없었기때문에6번을타고에트왈로,다시2번으로갈아타고
빌리에로돌아왔다.
그리고이미내가아내에게약속했던대로동네뒤편의상가에서아주예쁜,이태리제의
레드바이오렛의순모스웨터를사서아내에게선물했다.
아내는지금도이스웨터를즐겨입곤한다.
정말사람사는곳은어디나비슷하다.
시장에서포도를파는총각이나멜론을파는젊은이는이미우리와구면이라우리만보면아주
반가워한다.
그들이파는과일은싼편은아니지만정말신선하고맛이있다.그래서우리는자주사먹었고
그들은특히잘익어맛이들어있는과일은따로뒀다가우리에게주곤했다.
들어오는길에수퍼마켓모노푸리에들려오여사가추천한6병묶음의volvic이란생수를샀다.
병당3프랑이니아주싼편이다.
동네뒷길의시장과상가들을다니면서가만히살펴보니방만하나구하면무엇이든지다해먹을수
있을만큼식품류가다양하고풍부하다.
또한가지강열하게다가오는것은여러가게에진열되어있는다양한상품들을볼때높은질감이
느껴지는점이다.
많은것중에서뽑아낸,아니면최고의기술로손질된,그런상품들이대부분인데특히식품류가
그렇다.
눈에보이는모든것이먹고싶고,가지고싶을정도다.
아내는꽃가게에들려꽃화분하나를샀다.

돌아오는길의몽빠르나스역구내,
한코너에서남여가바이얼린과비올라로이중주를연주하고있었다.
정말아름다운생음악이었다.
사람들은1프랑짜리동전을열려있는악기케이스에던져넣었고나도그랬다.
분명그들도청운의뜻을품고그어려운악기를시작했을것이다.
일단방으로돌아온후,
1시간정도푹쉬면서음악을들었다.
서울에서가지고온테잎은들어볼짬이없다.
빠리의두개체널의FM음악방송이워낙충실하고좋기때문이다.
내게는아주큰선물인셈이다.
빠리보다조곰더앞선곳이런던에서듣게되는BBCFM이고,뜻밖에좋은음악을방송하는곳이
예루살렘의FM음악방송이다.
서울의KBSFM은내용도빈약하지만계속지껄여대는[말]때문에AM수준이된지오래다.
정말안타까운일이아닐수없다.

몽셀미셀에가는일때문에여행사최부장에게전화했으나최부장이아닌프랑스인이전화를
받는다.영어로최부장을찾으니오늘하루쉰다는것,그제야바로오늘야외로놀러나간다는말이
생각났다.
그런데이렇게비가오니정말안됐다는생각을했다.

오늘저녁식사는,
이미마담이말한대로,바쁜일때문에일찍집에돌아오지못하는마담대신큰딸엘리자벳이
맡아준비했다.
이딸은지금한쪽팔에기브스를하고있는데,일전우리에게담뇨와고물전기히터를갖다줬던
그청년(스페인계로보인다.)과동거중이며같은건물의4층에살고있다고했다.
곧결혼할것이라고했다.
딸은임신중이기때문에몸의움직임이둔했고프랑스여자로서는체구가작고뚱뚱한편이며
결코잘생긴얼굴은아니다.
아무튼엄마에게는골치덩어리딸임에틀림이없고,가만히지켜보면그청년은특히매튜에게
자주위압적인태도를취하곤했다.
딸은정성껏저녁식사를준비했다.
야채샐러드,감자와고기,금방사온바게뜨,
그리고후식은사과파이였다.
오늘은우리부부와그들둘,이렇게넷이서덤덤하게식사했다.
도모꼬양은감기가심해누워있다는것이다.
아마도무리가있었던모양이다.
빠리에서아까운시간에그렇게누워있으니본인인들얼마나안타까울것인가.

그런데,
딸의애인인이청년은설거지하나만은여자들보다더잘한다.
식사후식탁에앉아커피를마시며그가설거지하는모습을지켜보면정말예술의경지다.
어쩌면그렇게설거지를잘할수있을까.
정말손재주가뛰어난청년이다.
그섬세한손놀림을보면어떤일도잘해낼것같은생각이든다.
그러나마담은그청년이탐탁치않은게분명한표정이다.
그래도결혼전인어린딸이남자와동거하고임신까지한사실에대해서는지극히당연한것으로
받아들이는태도는우리와는달랐다.
프랑스인가정의또다른한면이다.

내일브르헤로떠나야하는데계속비가오면어쩌나하는걱정이앞선다.
늦은저녁시간인데도비는계속오고있다.
그만큼낡고우아한우리방은더아늑해진다.
비오는빠리의하루가그렇게지나가고있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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