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에 체류기- 12 .
9월25일수요일.
흐렸다다시맑아지는변덕스러운날씨다.
그래도어제보다는따뜻하다.
이제이번여행도중반에접어들었고그만큼몸도마음도어느정도지치는것이사실이다.
아내의컨디션은회복되지않고있으며제대로된식사를하지못하고계속누룽지와육개장국물,
그리고멸치로유지하고있다.
여행과건강은정말깊은함수관계가있음을실감했다.

오전중나혼자서최부장을찾아보기로하고먼저전화한후지하철을이용,빌리에다음역인
rome까지갔다.
가르쳐준대로번지를확인해가며쉽게사무실을찾았다.
빠리에11년째거주하는분답게세련됐고업무처리도아주매끄러웠다.
먼저체재비송금때이쪽은행이공제한수수료348프랑을지불하고베네치아와서울행에대한
컨펌을확인했다.
그리고최부장은빠리비죵에전화,10월2일수요일,아침7시에출발하는몽셀미셀행에우리
두사람을예약했다.
한편,’바르비죵’은주간에이틀을버스가운행되는사실도알았다.
당초의귀국일자는다음달6일이었지만9일로변경하려고했으나좌석이없어6일로굳혔다.
돌아오는길에어제저녁딸에게써놓았던편지를우체국에들려미국으로붙였다.
그동안아내는오여사에게몇번전화했으나부재중이었다고한다.

점심때둘이서뒷편시장에나가내가먹을바게뜨샌드위치하나를사가지고돌아와나는그것을,
아내는불려놓은누룽지와육개장국물,멸치와고추장으로점심식사를했다.
한가지재미있는사실은,
이상하게도나는바게뜨샌드위치를좋아하고물리는법이없다.
식빵으로만드는샌드위치와는전혀다른맛이고아마도프랑스의치즈가독특한맛을내는것같다.
귀국한후에도바게뜨샌드위치를여러번만들어먹어봤지만빠리에서의맛은아니었다.
우선빵이틀리고치즈가다르기때문이다.
내게는,
빠리에체재하는동안바게뜨를먹는즐거움이아주큰것이었고지금도그때를생각하면저절로
군침이돈다.
서울에는어디에도그런바게뜨가없다.

다시배낭에그림도구를넣고이젤을챙겨마르모땅미술관을향해출발했다.
2번,6번,9번선을갈아타고LaMutte에서하차,역주변에있는택시기사에게미술관위치를
물으니여럿이서친절하게가르쳐준다.
긴숲길을지나쉽게찾았다.
입장료가35프랑,둘이서70프랑이니비싼편이다.
말년의모네가아들에게준65점의그림이그의기증으로전시되어있는유명한미술관이다.
관광객이없는,조용한미술관이다.
아내의표현을빌리자면,노년의모네가마음의눈으로그린,풀어진,놀라운그림들이거기있었다.
정말모네의진수를보는마음이었다.
특히아내가좋아하는’작은배’는그질감과밀도에서뛰어났고꽃그림들은거의환상적이었다.
그동안이곳을찾아보지못했던것이후회스러웠다.
일본인들은많은데한국인관람객은없다.

미술관을나온후2번선을타고빠리21구의Jaures역까지갔다.
생마르탱운하때문이었다.
아내는기대가컸던모양인데역부근은그림을그릴만한전경이아니었다.
운하주변은건물들로가득찼고무엇보다도아주지저분했다.
빌레트감옥건물이커다랗게자리잡고있고그주변역시더러웠다.
도시외곽지역의분위기그대로였다.
어디에나사람들이대,소변을보는음침한장소가있듯이곳이그랬고빠리쟝들보다는이방인들이
빠리를더럽히고있다는인상을받았다.
안내책자에는그곳에서더밑으로내려가면전망좋은곳이있다고쓰여있었지만아내가기운이없어
더걸을수가없었기때문에그대로돌아가기로했다.
같은2번선을이용하기때문에오가기는쉬웠다.
방에들어가기전시장에들려아내는오디파이를,나는멜론을하나사가지고들어갔다.
마담은,
다음주에이근처에서영화촬영이있는데응접실과대식당을배우들의분장실로대여해줄것이라고
했다.

저녁식사는,
밥과이상한생선요리다.
(생선을갈아다른것과섞어서찐것같은요리)
밥과그것을비비고소금으로간을맞추니아주먹을만했다.
오래간만에세뱌스챤도식사를많이했다.그래서우리모두는기뻐했다.
그러나매튜는생선을거부,마아가린에밥을비벼먹는다.
매튜는생각보다가리는음식이제법많은편이다.
후식은초코렛과바나나,그리고아이스크림이다.
식사시간에오여사로부터전화가왔다.
내일점심시간에가기로약속,종일집을비운것은빠리에있는친구들과야외에갔다왔기때문이라고
했다.

일찌기임어당은’식탁보다더좋은외교는없다’고했다.
프랑스인과한국인은그근본부터가다른이방인들이다.
그러나이제2주이상한식탁에서같이밥을먹다보니그대로한식구가되었다.
식탁의힘은그렇게큰것이었다.
서로의식성,식사량,식사하는습관,그리고세바스챤이나매튜가무엇을더좋아하는지를알게
되었다.
프랑스가정의저녁식사시간은우리의몇배나길다.
자연많은얘기가오가고서로를이해하는시간이길어지면서그만큼더가까워지는것이다.
특히우리부부가애써지키는중후한매너가그들이처음에가졌던[한국인]에대한편견을
바꾼것은확실했다.
마담은미술과음악에대한우리부부의풍부한지식에감탄하는눈치다.
또프랑스인은화가에대해서는벌써큰점수를주고들어간다.
간간히,단순하고집체적인일본인들을비판하는얘기를하는것은우리가그들과비교되었고
상당히우위에있음을암시하는것이다.
마담은오늘우리가마르모땅에다녀온사실을크게기뻐했고정말잘한일이라고여러번말했다.
그것은마담이자기수준에서우리를받아들인다는의미였다.
그래서식탁은정말좋은외교다.

식후방에돌아와,
우리는작고잘익은맛있는멜론을더먹었다.
우리돈으로1.300원정도니비싼편은아니다.
아내는오디파이를한조각더먹었고친구들에게편지를쓰기위해먼저편지지에그림을그렸다.
나는슈베르트의[아르페지오네]를들었다.
지은지100년이다되가는이낡은방도오늘저녁은더아늑하고우아해보였다.
정이들고있다는뜻이다.
빠리의밤은그렇게따뜻한전등불에젖어들고있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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