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에 체류기- 18 .
10월3일목요일.
스웨터만입고나가도될만큼맑고따뜻한날씨다.
우리는서둘러아침식사를한후다시몽마르뜨에갔다.
먼저그림을그렸던장소에가서베네치아에서그렸던화풍으로그곳풍경을다시그리기위해서였다.
미완성이었지만성공적이었고그점이중요했다.

점심은몽마르뜨의중심을약간벗어난골목의프랑스식당에서먹었다.
따뜻한어니언숲,바게뜨샌드위치와오물렛,햄과치즈,그리고그라페까지먹고커피와까뻬올레를
마셨다.210프랑.
이태리에서의식사와함께이번여행에서기억될만한성찬인셈이다.
식사를주문하고기다리는동안창문을통해일단의한국인관광객들이보였다.
뒤이어다른한국인그룹도지나갔다.
그들의표정,생김새,옷색깔,걷는자세,큰소리로떠드는것모두가이곳과는전혀어울리지않았다.
우리는아직멀었다는생각을안할수가없었다.

일단방으로돌아온후짐은벗어두고가벼운차림으로뽕삐두센터를향해출발했다.
나는언제나그내부가궁금했다.
안에있어야할것들을전부밖으로끌어낸특이한건축설계다.
마침ModernArt전이열리고있어특별한비구상작품들을감상할수있었다.
그런데뽕삐두센터로갈때,
2번선을탔는데우리가내려야할역이내카드에적여있지않았다.
바로다음역에서하차,역구내의벤치에앉아지하철노선도를펴놓고다시공부했다.
곧내릴역을찾아냈고카드에정확히기록했다.
참으로특이한체험을한셈이다.
이런일이있을때일수록아주침착해야하고노선도를꼼꼼하게읽어수정해야한다.
당황하면반드시실수하게되어있다.

뽕삐두센터,
앞광장은자유분방한젊은이들이차지하고있었다.
빠리만이수용할수있는특이한건축물이다.
보수적인마담은못마땅해하는눈치가역역했다.
그러나처음의에펠탑이그랬던것처럼이곳도시간이지나면비중은좀떨어져도명물이될것이다.
방으로돌아가기전시장에들려물과키친타월,멜론,포도등을샀다.
아내는오여사와통화,
빠리의한국문화원에함께갈것을상의했다.
이제이틀이지나면귀국해야한다.
내일은바르비죵과퐁텐불로에갈계획이다.

10월4일금요일.
아침에는비,낮에는구름,오후에는개였고약간추웠다.
한국문화원에가기위해9시15분경오여사댁에도착했다.
오여사는우리들이오늘계획을취소하고내일자기들과함께바르비죵에나가자고제의했으나
날짜가없기때문에우리는우리스케쥴대로움직여야했다.
문화원은오여사댁에서가까운거리에있었음으로걸어서갔다.
입구부터가초라했고,썰렁하고촌티와관청냄새가물씬났다.
위치도구석진곳이니누가이런델찾아오겠는가.
세금이아깝다는생각을안할수가없었다.
아내와오여사가원장을만나는동안(전시회에대한문의)나는창구직원과얘기를나눴다.
빠리에서민박여행을한다고하니으례히한국인가정에서민박하는줄알았다가프랑스인가정에서
장기민박을하고있다고하니아주놀랜다.
아직그런케이스는본일이없었다고한다.
마담을위해불어로된한국소개의자료들을챙겨서그곳을나왔다.
마담은그자료들을반가워했다.
우리와가까워지면서한국에대한생각이많이바뀌었기때문이다.
특히한국에세계1위의조선소가있다는것과자동차생산이세계6위라는사실에기절할만큼
놀랜다.
믿어지지않는다는표정이었다.
내짐작이긴하지만이집식구들에게세계지도를펴놓고한국이어디있느냐고물으면아는사람은
하나도없을게틀립없다.
그래서문화원생각을하면화가더치밀었다.

문화원을나와지하철앞까지왔을때오여사는이대로자기집에가서놀다가점심해먹고가라고했다.
그러나우리의스케쥴이빠듯해서더시간을낼수가없었다.
일단방으로돌아온후아내는외출준비를하고내가시장에나가서바게뜨샌드위치를사왔다.
아내가끓여놓은물로커피믹스를타서함께먹으니그대로꿀맛이다.
후식으로는케익과포도를먹었다.

정각12시에출발,빠리비죵의사무실에도착했다.
680프랑을지불한후쿠폰을받았다.
가을초입의뛰를리공원을잠시돌아본후버스에승차했고,
먼저바르비죵에도착했다.
그아름다운작은마을과[밀레하우스]를둘러보고동네카페에서한잔에5.5프랑하는커피를
두잔시켜서마셨다.
그런데밖으로나오니우리가가장늦어서버스의여자가이드가우리를찾아오고있었다.
다음이샤또퐁텐불로,
벨사이유에비해규모는작았지만역대왕들이사랑한별장과사냥터였던만큼볼것은많았다.
여자가이드는프랑스어와영어로한방한방을아주자세히설명했다.
여러가지용도로사용했던여러방들의내부치장은어지러울정도로복잡했다.
로코코양식의극치였지만,아내의표현은,
[도깨비가나올것같다.]였다.
특히인상적이었던것은나폴레옹보나파르트의침대였다.
그침대는정말작았다.길고둥근베개도퍽인상적이었다.
나폴레옹이키가작았던것은사실이지만침대가그렇게작은것을보고다시놀랬다.

이작은샤또를둘러보며느낀것은,
프랑스혁명은필연의산물이라는생각이었다.
극히일부의사치스러운생활과영화를위해거의모든백성이당한고통에대해프랑크족후예들은
칼을뽑아든것이다.
그래서프랑스의삼색국기는아름답기도하지만자유,평등,박애라는혁명정신의깊은상징성을
가지고있다.
오후4시40분그곳을출발,
아름다운바르비죵의들판을보며빠리로돌아왔다.
재미있는것은우리가탄버스가바로몽셀미셀에갈때탔던버스였으며위치만바뀌었을뿐
역시제일앞자리에앉았었다.
운전사는다른사람이었지만참으로묘한인연이었다.
리볼리사무실에도착한것이오후6시.
지하철로빌리에에돌아왔다.

마담은밥을했고,돼지고기요리를했다.
아주맛이있는저녁식사였다.
마담은우리에게자신의일신상의얘기를했다.
그만큼우리를가깝게느끼고있다는표시다.
남편과사별했을때그의죽음을받아들일수없었던심정,
그후종교와신앙에대해폭넓게생각하게되었다는내용등프랑스인으로서는하기어려운
속내이야기를한국인인우리들에게했다.
그때팔의기브스를푼딸엘리자벳이나타나서함께식사했다.
우리가봐도딸과그의애인은마담에게애물단지인것이분명했다.
가끔낮시간에도설거지하고있는것을보면미겔(그청년)은직업이없는것같았고거기에딸은
임신까지하고있는것이다.

식사후약간쉰다음,
둘이서사과파이와멜론,케익을먹으면서이제끝나가는여행일정에대해의견을나눴다.
식사후나는마담에게귀국일자가당초의9일에서6일로변경된것을알려줬고,
마담은[민박협회]에얘기해서사흘치의민박비를환불받으라고했다.
친절한충고였고,그것은내문제임을분명히했다.
저녁8시반이지나이군에게서전화가왔다.
내일은자기가휴무일이니자기차로어디든가자는것.
벨사이유를제안받았지만이미여러번가본곳이어서거절했고,내일은우리대로오전스케쥴이
있고오후에는쇼핑도해야하기때문에오히려우리가떠나는날아침10시반에와달라고했다.
이군은,
[자네가여기사는나보다오히려더폭넓게빠리를보고있다]고했다.
시살그럴지도모른다.
매일지하철을타고동서남북을돌아다니고있으니말이다.
이번빠리여행에서오여사부부에게진신세는정말큰것이다.
비록친구요동창이라해도그건쉬운일이아니다.
그점깊이감사한다.
아내는여러장의그림에대해마감손질에바빴고내가잠든후에도한참을계속작업했다고한다.
빌리에의체류는그렇게끝나가고있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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