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에 체류기- 19 .
10월5일토요일.
밤새비가내렸고,날씨는약간춥고을씨년스럽다.
어제저녁아내의늦어진취침때문에8시에야일어났다.
서둘러아침식사를한후,
9시30분에마르모땅미술관을향해출발했다.
내일이면떠나야하는우리가다시마르모땅을찾는것은그놀라운그림들을다시보고싶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첫입장객이었다.
1917-24년어간의모네그림은’마음의눈’으로그렸다는표현그대로사람의마음을사로잡는
힘이있었다.
정말환상적인그림들이아닐수없다.
처음왔을때보다한점한점을더깊이드려다볼수있었고그만큼감동도컸다.
다시오기를잘했다고생각했다.
(저녁식사때마담은우리가마르모땅을다시갔었다고하자전혀다른진지한얼굴로우리를보며
아주잘한선택이라고했다.서로가상통할수있는수준이확인되는순간이었다.마담은몇번이고
아주잘된일이라고했다.)

약1시간정도그림들을감상한후밖으로나와아내는마르모땅으로진입하는숲길에이젤을
세웠고초가을의아름다운숲을그리기시작했다.
나는번화한네거리까지걸어나와카페에들어갔다.
날씨가쌀쌀해서밖에있기가추웠기때문이다.
창가에자리를잡고까뻬올레를시켜놓고오가는프랑스인들,빠리쟝들을관찰했다.
그것은정말재미있는시간이었다.
느긋하게앉아창가를지나가는사람들을구경하는것은우리처럼개별여행을하는경우가아니면
거의불가능한일이다.
때문에여행은결국혼자해야정말여행을할수있고그것은누구에게나가능한일이기도하다.
꽤시간이지난다음아내에게가봤으나아직미완성,다시30여분을더기다리는데갑자기
빗방울이떨어져급히아내에게로돌아가그림위에우산을펴들고그리기를마쳤다.
일단방으로돌아와올때사가지고온바게뜨샌드위치와멜론,커피로점심식사를했다.
이렇게맛있는바게뜨샌드위치를매일먹다가서울에돌아가면못먹을생각을하니아주섭섭했다.

오후2시30분,
번화가인오페라가에나갔다.
우리는우리가입을춘추용반고트를사려고했지만라빠에뜨의건물셋을뒤져봐도이미철이지나
물건이없었다.
그동안우리부부는쇼핑은전혀생각하지않고지냈기때문에철이지나는것도모르고있었다.
다른가게에들어가인파를헤치고아들에게줄춘추용긴코트하나를219프랑을주고샀다.
그리고는인파로덮인오페라가를떠나빌리에로돌아왔다.
세일기간의상가풍경은서울이상이었고인파도엄청났다.
그것은세일을위한세일이아니라정말알뜰한빠리쟝들이기다리던제대로된바겐세일이었다.
일단방으로돌아온후아내는그림들을손질했고,나는음악을들으면서쉬었다.

마담은저녁식사로,
미트볼과밥을준비했고,손수케익을구워후식으로내놨다.
정성이깃든음식이었으며내일떠나는우리를위한배려였다.
식사중,이제우리부부가떠나고나면다시셋이서만식사를해야하니정말섭섭하다고했다.
세바스챤과매튜도시무룩해있었다.
저녁8시30분,
마담은딸네식구까지함께모두가정장을하고우리방으로왔다.
아내가그동안그린그림들을보고싶다고해서우리가정식으로초대한것이다.
우선20여점의그림을보고그수량에놀라워했고,수채,유화,흑백스케치등다양성에다시놀라워
했다.
그들은예술의도시에사는시민들답게아주천천히한점한점을감상했고그림들이좋고아름답다고
칭찬했다.
처음이집에도착했을때의낯선한국인에대한표정과는완전히달라진,한사람의화가를대하는
얼굴들이었다.
그래서예술은국경이없고화가는어디서나존경을받는것이다.
그것은참으로우리모두를위해뜻깊은시간이었다.
우리가떠난다음에도마담은한국인인우리부부를오랫동안기억할것이다.
우리는이프랑스가정에서한국인이얼마나뛰어난자질을가진사람들인지를충분히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들이돌아간후,
곧짐꾸리기에착수했다.
나는이미숙달돼있는솜씨로간단히내짐을쌌으나아내는오정은양에게줄남은라면들을상자에
담가가갑자기라면국물이먹고싶다며부엌에서물을끓여와컵라면을먹었다.
나는낮에사다놨던멜론을숟갈로떠먹었다.
정말이맛은집에돌아가서도잊지못할것이다.
이제내일이면귀국,
아침10시반에이군내외가차를가지고오기로했다.
처음에는한달간의민박이지루할수도있다고생각했지만생각보다는시간이빨리지나갔다.
그리고이번여행은처음의계획보다더알찬것이었다.
무엇보다도한곳에오래체류함으로서이문화의도시를어느정도체험적으로이해할수있었던것이
가장큰수확이었다.
우리부부는모로코의남단말라케쉬에서덴마크의북해까지많은곳을여행했지만한곳에이렇게
오래머문것은처음이었다.
특히빠리의한국인가정이아니라중산층프랑스인가정에머물렀던것은아주잘결정한일이었다.
그것은정말특이한체험이었다.
나는많은분들에게이런형태의여행을해보라고권하고싶다.
특이한것은그것대로우리에게주는선물이많은법이다.
그리고사람은그런체험을통해인간적으로도성숙해지는게사실이다.
프랑스는서구선진국중에서도그문화적수준이가장높은나라이며빠리는바로그핵심이다.
그리고그핵심을구성하고있는것이프랑스인가정들이다.
때문에그안에서그들과함께살아보는것이그들을이해하는첩경이다.
결국우리는대등한입장에서서로를수용하는단계까지갔고무엇보다도그점이이번민박여행의
의미있는수확이라고할수있다.
이번의빌리에장기체류는그내용을잘정리하면아주훌륭한여행정보를많이얻을것이다.
일단은귀국하는비행기안에서정리해보려고한다.
나는언제나귀국하는비행기안에서여행내용을정리하는습관을가지고있고그것은그대로
여행을위한자료가되었다.

17구빌리에30번지의이집은,
우리가평소아파트에서편리하게사용하는목욕시설이없다.
믿기어려운일이지만사실이그렇다.
처음도착해서목욕시설이어디있느냐고물었을때,마담은창고같은방으로나를데리고갔는데
거기에는뜻밖에도영화에서나볼수있었던구시대의범랑으로된커다랗고오래된욕조가
덩그러니마루위에놓여있었다.
그래도더운물은나오니목욕을하고싶으면그안에서하라는것이다.
그건우리에게너무나익숙치못한생소한것이어서목욕은결국하지못했다.
대신,샤워시설이따로있는데이것이좁기도하지만물이잘빠지지않아큰고생이었다.
그때마다병에들어있는고약한냄새가나는액체를하수구에부어넣는데그건흐르는물을
막고있는이물질을녹여내는약이라고했다.
고색이창연한이집의하수시설이얼마나오래되고낡은것인지를알게해주는사례다.
더고약한것은,
많을때는여섯명이이좁고낡은샤워시설을함께쓰기때문에서로가조심해야했고그만큼
그불편은컸다.
물론돈이있는집에서는다뜯어내고현대적인시설을했겠지만대개는이런식으로사는게
프랑스인들이다.
그들은그런불편에익숙해져있었다.
그러나현대식아파트에사는우리에게는그댁을떠날때까지아주불편한생활이었다.

뒷길에있는시장에는바게뜨빵을구워파는가게가여럿있었다.
집집마다단골들이달랐고새빵이나오는시간이면사람들이줄을서곤했다.
그런데빵을싸주는종이는정확히손가락두개넓이에길이는빵을한바퀴도는짧고좁은종이다.
바게뜨를봉투에넣어주는가게는전혀없다.
거리를걷다보면빠리쟝들이맨빵을뜯어먹으면서걷는것을자주보게되는데그건손가락으로
빵을쥐는부분에만종이가있기때문에그렇게보이는것이다.

아무리찾아봐도우리눈에익숙한티슈를찾을수가없었다.
그들은우리가쓰는크기의반으로된규격을쓰고있다.
티슈페이퍼에서소비자체가우리의반이라는얘기다.
정말기가찰정도의절약이다.
여러해전풀로리다올랜도의디즈니월드에서엄청나게버려지는물건들을보면서느꼈던.이상한
분노와는다른,무서움같은것이느껴졌다.
일반프랑스인들의검소함과절약정신은우리의생각을초월하는것이다.
시장을돌아다니며물건을사도비닐봉지한장을거저얻을수가없는곳이빠리다.
[빠리에는공짜점심이없다.]는얘기는빈말이아니다.

가끔마담의가족들이점심식사하는것을보게되는데,
그들은반드시어제저녁에먹고남은음식을다시데워먹었다.
손님인우리에게는매일저녁다른요리를대접했지만,그들은남은음식을버리지않고다먹었다.
세바스챤과매튜의불만스러운얼굴에대해마담은요지부동이다.
그들은낭비자체를죄악시하는사람들이다.
우리는그들을보면서우리들이,우리사회가얼마나절제없이사는지를실감했다.
지금우리주변에서재활용쓰레기로나오는물건들을프랑스인들이본다면거의틀림없이
기절할것이다.

햇볕이따뜻한날아침이면,
늘우리방창문앞벤치에나타나는거지가조곰일찍와서자리를잡는다.
아주잘생긴50대의남자,성격도유순해보이는사람이다.
그가제일먼저하는일은[르몽드]를펴들고읽는일이다.
신문을구경하는것이아니라아주진지하게읽는다.
그리고는바게뜨와물을꺼내서식사한다.
어떤때는잘알수없는음식을먹기도한다.
그리고는아주여유있게담배한대를다태우고는보따리로베개를만들어베고는벤치에길게누워
잠을청한다.
외출했다돌아오면이미떠났기때문에더관찰은못했지만빌리에거지는확실히빌리에스타일이다.

우리부부는외출할때마다방에있는쓰레기를먼지하나없이봉투에담아길앞쓰레기통에버리곤
했다.(빠리에는규격봉투가따로없다.)
마담은아주오랫동안이낡아빠진방을가장효율적으로,우아하고아름답게,그리고가장깨끗하게
쓴한국인부부를기억할것이다.
한국인들이프랑스인못지않은문화인임을알았을것이다.
적어도그점만은장담할수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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