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기행 1- 공항.
1991년5월18일,토요일.
13시15분서울발모스크바경유취리히행KAL의747점보기는김포공항을무겁게이륙했다.
국적기를타고소련을여행할수있다는사실이도무지믿어지지않았다.
불과얼마전까지만해도대표적인적성국가소련은우리들에겐금단의땅이아니었던가.
서기장체르넨코사망후,
정치국원중유일하게모스크바대학을졸업한젊은엘리트[고르바쵸프]가새서기장에임명
되었고그는시대를읽는안목으로[페레스트로이카]를외쳤다.
그러나그외침은[대처]전수상이말했듯이시기적으로너무늦은것이었다.
사회주의체제는자기속성이가지는취약성때문에이미붕괴되기시작했으며그것은어떤힘으로도
막을수없는기울기였다.
그래도그개방정신이소련여행을가능케한것은사실이었다.
비록소련[국영여행사]의상품만을사야하는제한성은있어도여행자체가가능해졌다는사실은
놀라운일이아닐수없다.

아내는가끔내게이런말을하곤했다.
[자기가읽은공산주의관계책들을쌓아놓으면키를넘을거야.]
사실은,
나는그보다는더많은사회주의-공산주의관련책들을읽었으며가장큰이유는반인간적인
그이데올르기의내막을파헤쳐보고싶었기때문이었다.
1917년[볼세비키혁명]이후74년동안그사악한이데올르기는국내,외에서약2억의인간을
고통과죽음으로몰아넣지않았는가.
91년은,
그소련제국이붕괴되고다시러시아로돌아간뜻깊은해이다.
냉전시대한쪽의중심축이었던그곳에,그리고악의제국이해체되는싯점에서그곳을여행할수
있다는것은하늘이주신기회일것이다.
나는설레이는마음을스스로진정시키면서[역사의현장을관찰하는]관찰자로서의냉정한
마음을가지려고애썼다.

소련(蘇聯).
그정식명칭은,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이다.
(UnionofSovietSocialistRepublics)
국적기는북한영공을통과할수없었기때문에일본의규슈까지올라가서북방향을잡은후비행을
계속했다.
창문을통해내려다보이는[툰드라-동토(凍土)]는하얀눈으로덮여있었다.
그광할한동토의밑에는무엇이얼마나묻혀있을까.
앞으로슬라브의운명은그동토를어떻게개발하느냐에따라크게달라질수있을것이다.
우랄산맥을지나자땅은푸른색을띠기시작했다.
경작지라는의미일것이다.
소련은정말큰땅이다.
LA에서뉴욕까지의비행과는그스케일이달랐다.
거대한제국의실체가조곰씩느껴졌다.
한가지안타까운것은직항거리10시간의모그크바에는갈수있어도지척의내땅,북한에는갈수
없다는비극이었다.
왜북한은그렇게경직되어있을까.
밖에서사람이들어오는것을한사코막는이유는체제에자신이없다는명백한증거다.
이미패배한결과를인정하지않으려는나쁜의도는결코길게갈수가없는것이다.

모스크바시간으로오후6시.
국적기는모스크바의국제공항S-2에착륙했다.
그곳은,
세계여러나라,많은국제공항을봤던우리눈에는,
도저히국제공항이라고할수조차없는초라함그자체였다.
년전,오스트리아에서육로로국경을넘어공산항가리에도착했을때봤던그잿빛의가난과낙후가
그대로거기있었다.
정말충격적이었다.
이게모스크바국제공항이란말인가.
그리고청사내부는조명이너무어둡고스산해서커다란창고에들어선기분이었다.
짐을기다리는시간도너무길었고짐을실어야하는카트도모자랐다.
(그나마그것도우리나라’삼성’이제공한것이었다.)
입국심사를맡은관리들의표정은위압적이었고그들이쓰고있는모자의둥근윗부분은지나치게
컸으며군복에달린붉은색견장들은우리에게는생소한것이었고공포심을자아낼정도였다.
입국심사자체도선진국에비해몇배가길었다.
소련의첫인상은,
말로표현하기힘든어떤[무게]가공항청사뿐아니라주변전체를내리눌르고있는것같은중압감을
느끼게하는침울한분위기였다.
개별입국심사가길어지는만큼대기시간도길어졌지만편하게앉을의자도마땅치않았다.

우리부부의차례가다가오면서나는한가지위험한실험을하기로결심했다.
여권과서류사이에일회용라이터하나를넣어심사관앞에내밀었다.
정말놀랬던것은,
그관리는전광석화같이빠른솜씨로라이터를빼내아래설합에집어넣었고,우리여권에는소리도
요란하게스탬프를찍는것이아닌가.
그동작은대단히익숙했고,그만큼’뇌물’은일상화되어있다는의미인것이다.
김포공항을떠나기전우리가소련에서쓰기위해준비한물건들은,
여자용나이론스타킹,일회용라이터,말보로담배,볼펜,작지만품질이좋은세수비누와치약등이
었다.
적지않은무게였지만반드시용도가있음직한일용품들이기에가지고갔다.
그첫케이스에서일회용라이터하나가놀라운힘을발휘한것이다.
우리모두가아는대로’뇌물’이통하는사회는그겉보기가아무리견고해도그속은썪을대로썪은
사회다.
소련을비롯,동구공산권은물론북한까지도’뇌물’로안된는것이없는썪은사회들이다.

짐을찾아가지고밖으로나가니현지국영여행사직원이우리들을기다리고있었다.
젊고성실해보이는그소련청년은심한북한사투리의우리말을할줄알았고첫인상에’노력형’임을
알수있었다.
공항에서호텔까지운행하는관광객전용의버스는체코제로서아주깨끗하고좋았다.
시간이지나면서알게된사실은소련의[국영여행사]는권력이있는국가기관이었으며,
특히절실히필요한외화를벌어들이는창구로서모든일에서우선순위가부여되어있는막강한
기관이었다.
경찰국가가아니고서는있을수없는일이다.
그버스가공항을떠나면서우리부부의소련기행(記行)은정말시작된셈이다.
도대체앞으로어떤일들을만날것인가.
스스로생각해도가슴이설레이는일이다.
그동안외국여행을많이해본경험으로서의육감은,
쉬운일보다는어렵고불편한일을많이만날것이라는예감이들었다.
지금우리부부는그동안책으로읽고,말로만듣던악의제국,그중심부에들어가고있는것이다.
사서하는고생일까.
아니면보람이라는보답을받게될뜻깊은여행일까.
그건정말지내봐야알수있는일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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