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기행 2- 호텔.
공항에서모스크바시내로들어가는도로의이름은[레닌고속도로].
모스크바외곽순환도로인이길은생각보다더조악했다.
도로,특히국제공항에서수도로이어지는도로는그나라의관문이기때문에모든나라들이신경을
써서관리하고있는것이사실이다.
[레닌고속도로]는전혀손을보지않은지가오래됐다는것을말해주고있었다.
이유는단하나,돈이없기때문이다.
소련의경우,국가예산의지출1순위는언제나국방분야였다.
미국보다먼저위성을쏘아올린것도,
핵탄두경쟁에서앞섰던것도,
핵잠함제조에서앞섰던노하우도,
미그전투기의놀라운전투능력도모두가예산이차등적으로뒷받침된결과였다.
때문에다른분야의낙후는상대적인것이기는하지만너무치명적이었기때문에붕괴로이어진
것이다.
[레닌고속도로]도그런희생양중하나일뿐이다.

그리고그망가진도로위를다니고있는차량들은,
우리라면벌써폐차처분했을정도로낡고더러운것들이었다.
또길옆에서있는차들이많았다.
이유를물어보니[고장]이나서그렇게서있다는것이다.
차들도늙었지만,부품구하기는더어렵다고했다.
고장난차들이길가에그렇게많이서있는모습도처음보는일이었다.
지금내가목격하고있는이모습이막강한공산종주국수도의진입로라는사실이믿어지지않았다.
오가는차량들중비교적새차는모두군용차량들이었고화물트럭들은너무나투박하고,낡고,
더러워서신기할정도였다.
어떻게저런차가굴러다니고있단말인가.
88서울올림픽때서울을취재한소련기자들이가장놀란것은한국의포장이잘된도로,깨끗한
새차들,그리고매연이없는(?)도시환경이었다고한다.

모스크바시내에진입하면서제일먼저눈에뜨인것이저층아파트신축현장이었다.
그들은타워크레인을쓰지않고기중기로자재를옮기고있었는데첫눈에그열악한시공상태는
한번도본일이없는수준미달이었다.
정말저맇게짓는아파트에사람들이들어가살수있을까할정도였으며특히벽돌들을쌓아올린
솜씨는너무나서투른것이어서보기에민망했다.
그래도거기엔보통사람들이살고있었다.
아주낡은아파트지역에작은소택지가있었는데소련인세명이막장대로낚시를하고있었다.

호텔Cosmos,
모스크바올림픽때지은것이라고했으며객실은3.000여개.
입구에는사복을입은건장한남자들이험악한자세로출입하는사람들을체크하고있었으며
일반소련인의출입은엄격히통제되고있었다.
지금이호텔은관광객전용으로사용하고있는,모스크바시내에서가장좋은숙소라고했다.
들어선로비는,
서방세계3류호텔만도못했다.
손님이앉아야할소파는중간중간용수철이튀어올라와있었고너무나오래된것이어서더러웠다.
그리고리셉션데스크에는직원이하나도없었다.
휴식시간이라는것이다.
열려있는문으로사무실안쪽을보니여직원인듯한뚱뚱한여자여러명이어지럽게둘러앉아담배를
피우며잡담을하고있었다.
그들은손님인우리를쳐다보면서도움직이지않았다.

그들이나빠서가아니다.
손님,영업,이윤창출과같은서방세계의경제개념이전혀없기때문이다.
월급받고,정해진시간에피동적으로움직여주면그만인,사회주의시스템인것이다.
세상어느곳호텔이손님이나타났는데도데스크를비워두는,그런일이있을수있겠는가.
그러나사회주의모스크바는그랬다.
우리는속절없이기다릴수밖에,
같은국영여행사의호텔이지만휴식시간은그들고유의권한이기때문에아무도간섭할수없다고
한다.
하나의국가가경제적으로발전하기위해서는기본적으로4가지요소가있어야한다.
개인의재산권,과학적사고방식,자본,그리고통신과물류수단이그것이다.
소련에는미국을앞지를수있는과학자도,
돈도,통신도있지만물류가부족했고(추수한곡식들이화차수배가제때안되어역에쌓인채
썪었고,그만큼그식량이도착해야할지역의주민들은굶주리게된다.-북한의경우는더심각하다.)
특히개인의[재산권]없기때문에[우리것]은있어도[내것]은없는나라다.
인간은본능적으로[내것]일때만자발적인최선을다한다.
그리고경제에서가장중요한[효율]은바로거기서나오는것이다.
모든사회주의국가들의붕괴와몰락은바로[재산권]이주어지지않았었기때문이다.
[영업]의개념이없는호텔이백개가있어도거기에서이윤이나올수없는것도같은이치다.

한참을기다린후줄을서서물건을사는사람처럼체크인할수있었다.
그런데수속이끝났는데도방의키를주는대신카드에방번호만적어서준다.
그리고는방으로가라는것이다.
그의문은엘리베이터에서내렸을때풀렸다.
이호텔은자기가투숙할방이있는각층에서다시거기에있는직원에게카드를주고방의키를
받는이중시스템이었다.
말하자면전혀불필요한인원을오직[고용]을위해배치하고있는것이다.
이는[생산성]의개념이없기때문이고따라서[원가]의개념도없는것이다.
그뚱뚱하고험악하게생긴중년여인은카드와키를바꿔주면서자기가벌려놓은좌판을손으로
가리켰다.
말하자면공무를수행하면서[개인장사]를하고있는것이다.
캐비어(철갑상어알),초콜릿,담배같은물건들이초라하게놓여있었다.
우리는웃음으로거절한후우리에게배정된방으로들어갔다.
방문의시건장치와키는지금서방세계호텔에서는골동품대우를받을수있는구식이었다.
들어선방은,
꽤크고넓었지만,호텔을지은후단한번도내부수리를하지않은우중충한방이었다.
내가제일먼저체크한곳이화장실.
물은제대로나오는가,그리고욕조와세면대에물막이기구가제대로붙어있는가하는것이었다.
운좋게도(이건정말운이좋은것이다.)낡은것들이었지만제대로붙어있었다.
그리고화장지,
그것은화장지가아니라누런색의두꺼운마분지였다.
정말믿어지지않았다.
그들이자랑하는호텔이이정도라면보통인민들은어떻게살고있는것일까.
더큰문제는트윈으로된침대의스피링이고르지못해잠을제대로잘것같지가않았다.
특히내가쓰기로한침대는발끝쪽이튀어올라와있었다.
시트는세탁한것이었지만색깔이누렇고거칠고투박했다.

저녁을먹으로식당으로갔다.생각보다는작은방이었다.
소련에서는모든사람들에게제일중요한문제가먹는일이다.
식량의절대량이모자랐고구하기도어렵기때문이다.
그러나호텔식당은그막강한힘으로상당한재료를확보하고있었다.
제일먼저손에잡은것이검은빵.
그냄새는고향을생각나게했다.
광복후,우리고향에진주한로스케(소련병사)들이가지고왔던그검은빵.
우리들은집에서달걀을훔쳐가지고가서그검은빵과바꾸어먹곤했다.
시큼시큼한맛도그대로다.
정말감회가깊었다.
그리고우리앞에덜커덕갖다놓은커다란접시에는어마어마하게큰스테이크덩어리가놓여있었다.
질려서손도댈수없었다.
내실력으로3분의1을겨우먹었으니아내는말할것도없다.
왜그렇게많이주는것일까.
아마도자기들기준일것이다.
그리고커피를가져왔는데프림도,우유도없단다.
내일아침식사때구해지면갖다주겠다고한다.
그렇게맛이형편없는커피도처음마셔봤다.
식당의한쪽구석스테이지에는반라의무희들이요란한서방음악에맞춰춤을추고있었다.
관광객과달러앞에서는사회주의도맥을못추는것인가보다.
방에돌아와FM수신기로음악차넬을찾아봤다.
수신상태가나빴고,영어로된pop음악은방송되고있었는데소련음악이안잡혔다.

공항에서모스크바로들어오는동안,
유일하게우리부부를기쁘게한것은[자작나무숲]이었다.
그숲은러시아의것이고,러시아인의것이아닌가.
우리가읽었던러시아문학에서자작나무숲은언제나러시아의아름다운자연이었다.
자작나무숲은[혁명]을겪지않고거기그렇게살아있었다.
호텔방의창문을통해내다본밤의모스크바는너무어두웠다.
흡사죽은도시같았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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