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기행 4 – 모이세프.
점심식사후다시크레믈린으로갔다.
이번에는그안에들어갔으며무기박물관을관람한다고했다.
지척에[고르바쵸프서기장]의집무실이있는건물이있었다.
우리의청와대보다더쉽게,아무나접근할수있다는사실이놀라웠다.
[페레스트로이카]의정신은그렇게구체적이었다.

무기박물관앞에는이미많은사람들이장사진을이루고있었다.
여행사직원은우리를이끌고제일앞에가서입장객을정리하고있는뚱뚱하고험악하게생긴여자에게
무엇인가를얘기한다.
그러자그여인은고개를한번끄덕이고는장사진을치고있는사람들에게몇마디고함을지른후
우리를먼저입장시켰다.
내막을물어보니[우리나라를찾아온외국인관광객이기때문에우선입장시키는것이니그리알라]는
통고를했다는것이다.
국영여행사가권력기관인것은틀림없었다.

무기박물관은,
한마디로대단했다.
그것은엄청난역사자체를보관하고있는무게를가지고있었다.
특히페르시아와오스만터키제국의옛무기들은한번만보기에는너무신기한것들이었다.
기회만주어진다면특히페르시아무기들은오래동안찬찬히다시보고싶었다.
그리고러시아왕실에서사용했던의상들도전시돼있었는데정말화려했다.
쇠비늘이1-2만개씩연결된갑옷,
역대의짜르들이사용했던엄청난크기의마차들,
그리고금과은으로된찬란한식기들,
수많은보석으로장식된성모자(聖母子)의상.
5개월이눈으로덮이는러시아,21마리의말이끌었다는황제전용의큰썰매도있었다.
그하나하나가모두[혁명]이일어날수밖에없었던이유들을설명하고있는듯했다.
그곳에있는물건들의규모와수량을볼때러시아제국의크기를가늠해볼수있었다.
그러시아의[발틱함대]가동해에서일본의[도고]제독이이끄는일본함대에괴멸됐다는것은
정말역사의수수께끼다.

다음이크레믈린내부의중앙광장,
[성모죽음교회]를중심으로세개의다른교회건물이배치되어있었다.
황금빛의양파돔이파란하늘에떠있는듯한모양은환상적일만큼아주아름다웠다.
오래된벽화는닦아내고색도다시칠한다고했으며[요새-크레믈린]안에는온갖것이다들어와
있었다고한다.
그리고그뜰한쪽에는,
세계에서제일큰200톤짜리거대한종이하나있었다.
주조할때가열된상태에서찬물을잘못부어깨진채거기그대로있다고했으며떨어져나간조각의
무게만도15톤이라고했다.
그거대한깨진종은러시아인들이큰것을좋아한다는것과그우직함을함께상징하고있었다.

그리고이뜰에는[레닌]의동상이있었다.
레닌은10월혁명후이뜰을즐겨산책했다고한다.
그의동상밑엔빨간튜립꽃이아름답게피어있었다.
우리가다아는대로[레닌]은사색하고글을쓰는인간이었다.
그는선동적인공산주의자가아니라자기나름의이론이정연한사회주의자였다.
나는그뜰을걸어보면서비록동의할수없는그의의견이지만자기신념에충실했던한인간을
생각해봤다.
멕시코에서스탈린이보낸자객의도끼에쓰러진[트로츠키]와함께러시아의역사를바꾼인물인
것이다.

호텔에돌아가기위해밖으로나와버스오기를기다리고있었는데아이들과행상들의집요함은
또하나의집시였다.
그들의남루는사회주의이데올르기의허구성을그대로드러내고있었다.
일단호텔로돌아와서둘러저녁식사를한후,
다시크레믈린으로돌아갔다.
근처에식당이있었다면이런시간낭비와수고는없었을것이아닌가.
크레믈린안의공산당중앙회관.
오늘저녁이곳에서는세계적으로유명한[모이세프무용단]의공연이있고우리는그공연을관람
하기위해이곳에온것이다.
공연장안은사람들로꽉찼고복도와화장실에는담배연기가너무심해호흡하기에곤란할정도였다.
북한을비롯,
사회주의국가들의담배소비량은엄청난것이며그만큼사람들의심성이담배가없으면견딜수없기
때문이다.각종억압때문이다.
소련도마찬가지인것이고[유리]의설명에의하면공산국가는인민들이평소의스트레스를풀수
있도록많은공연장을아주저렴한입장료로운영하고있는데오늘저녁의[모이세프]공연도
그일환이라는것이다.
환산해보니우리돈으로천원이채안되었다.
그리고복도와화장실에서가까이마주친소련인들은정말순수해보였다.
나와눈이마주치면약간수집어하는,그런표정을짓곤했다.
공산당중앙회관안에도무지공산주의자가보이지않는것이다.

1부는[탱고].
한시간동안,오직탱고하나만으로이어져가는프로는황홀할정도의수준이었다.
탱고음악의연주도뛰어났지만개인에서군무(群舞)로이어지는탱고의안무는입이다물어지지
않았다.
서방세계에서는결코볼수없는,슬라브만의예술이거기있었다.
우리부부는잠시동안생각이헷갈렸었다.
해체직전의사회주의국가안에어떻게이런격조높은공연이존재할수있는것인가.
그것은평생을잊을수없는탱고의무대였다.
2부는무쏘르그스키의[마산(魔山)의밤].
역시수준높은음악과안무였다.

이곳에서목도한사실은,
역시소련에도공산귀족(노멘클라트라)이있다는사실이다.
복장과머리모양,그리고장신구에서그들은보통소련사람들이아니었다.
공연은함께관람하되그후의위치는아주다른,다른계급의인간들이확실히존재하고있었다.
한편공연장에서잘살펴보니소련의처녀들(반드시처녀의경우)은아주아름다웠다.
초미니스커트가유행이었으며그들의각선미는유럽에앞서있었다.
지금까지내가가지고있던[스페인처녀들이가장아름답다]는고정관념은깨지고말았다.
알수없는것은그렇게아름다운처녀들이중년만되면예외없이뚱뚱해지고험악해지는점이다.
몸은피곤했지만[모이세프]공연의관람은이번소련여행에서얻은값진추억이될것이다.

버스로호텔과크레믈린을오가면서살펴본모스크바의거리는,
건물들은보통10층이하이고오래동안보수를하지않아아주더럽고낙후돼보였으며
어떤건물은시공자체가너무조악해서위험해보이기까지했다.
거리를오가는차량들은[레닌고속도로]에서봤던차들과별차이없이대부분이아주낡았고
더러웠으며,
상품이전혀없는가게들의진열장에는싸구려조화(造花)와색이바랜낡은그림들이걸려있었다.
그리고거의모든,침울한얼굴을한인민들은가방한두개를꼭들고다녔다.
또전차와트롤버스는페인트가벗겨지거나색깔이바래서흉물스러웠다.
이런모습을보면서생각되는것은,
그동안밖에서알고있던[막강한소련]은군사부문일뿐,모든사회생활은이미그기반이무너진지
오래되었고지금의이상태로는서방을상대한다는것이무리라는판단이그것이었다.

우리부부는오늘,
붉은광장에서일단의북한사람들과조우했었다.
멀리서부터서로를알아봤고,그들은우리옆을눈길도주지않고지나갔다.
할수만있었다면우리는그들과대화하고싶었지만그들은의식적으로우리를피해갔다.
레닌모를깊이눌러쓴,이상하고남루한복장,
가슴에달고있는김일성배지.
여위고까맣게탄,광대뼈가튀어나온몽골리안의얼굴에눈빛에는독이묻어있었다.
분명히동족인데도흡사다른행성에서나타난사람들같았다.
그것은근본적인이질감(異質感)이었다.
그래서더가슴이아팠다.
북한에잠입하는몇사람의[소영웅주의]로는해결될수없는높은벽이실감됐다.
북한체제는스스로가지고있는속성때문에그형태가어떠하든언젠가는붕괴될것이다.
그때남북이보이는체제로는합칠수있다해도반세기동안형성된이이질감은쉽게해소되지
않을것이다.
다시반세기의시간이걸릴것이고통일독일이그사례다.
그들을보는순간그런생각들이떠올랐다.
그골은넓고깊은것이었고거기에의심과불신까지겹쳐져있지않는가.
왜그들은우리를피해갔을까.
또왜우리는그들에게접근하려고했을까.
어느쪽이더자신있는행동이었을까.
그들의입장에서모스크바는자기들의뜰이아닌가.
예를들어우리가워싱턴에서북한사람들을만났어도피했을까.
그렇지는않았을것이다.
실로착찹한마음을금할길이없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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