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기행 7- 조선족.
초루스호텔의식당은같은건물이면서도일단밖으로나가다른입구로들어가는불편한구조였다.
들어가보니,그건순수한의미의식당이아니고쇼도함께하는극장식식당이었는데조명은어둡고
음악은대단히요란했다.
그리고넓기로말하면,좀과장해서운동장같았다.
문제는음식.
저녁식사라기보다는술안주를늘어놓은것같은,낮은식탁이었고지나치게어두운조명때문에
그낯선음식들을제대로구분하기가어려웠다.
그래도여행중에는체력이있어야하기때문에나는이것저것이름도알수없는음식들을골라서
배를채웠다.
그러나아내는손도대지못한다.

일단방으로돌아온후,
나는다시식당에가서뚜껑이있는그릇을빌려뜨거운물을얻어가지고방으로돌아왔다.
컵라면을준비해서아내에게주고나는커피를만들어마셨다.
비행기에서먹었던,그투박하고싱싱하고맛이있었던오이생각이간절했다.
그리고우리는침구가습하고더러웠기때문에할수없이옷을입은채로자기로했다.
잠시FM수신을시도했으나AM도FM도제대로잡히는방송이없었으며겨우잡은차넬도수신상태가나빠들을수가없었다.
결국은포기하고말았지만,21세기를코앞에둔이시기에어떻게수도한복판에서래디오수신
상태가이렇께나쁠수있을까.
우리상식으로는이해할수없는일이었다.

아침에일어나보니호텔바로앞에아주큰돔의건물이보였으며처음에는체육관인줄알았는데
그건시장건물이었다.
그안에는1층에커다란야채시장이있었고그풍경과냄새,그리고사람들이외치는소리는우리가
어렸을때의시장모습그대로였다.
거기는거의가조선족사람들이장사하고있었다.
한중년의조선족아주머니는우리를보고놀라고,반가워했다.
[언제왔소?]
어제밤에도착,오늘밤늦게떠난다고하니,
[어째그리빨리가오,우리집에갑시다.내좋은거를만들어줄끼오.]
가식이없는말이었고,우리가빨리떠나는것을아쉬워했다.
그근처에서장사하는조선족아주머니들,
서울에서온우리를모두가반기고,신기해하고,다른타시겐트사람들에게서울동포를자랑했다.
그중에는눈시울을붉히는아주머니도있었다.
정말피는물보다진한가보다.

아내는그들모두를차례대로포즈를잡게하고사진을찍었고,
주소를적어받았다.
(우리는귀국후한사람,한사람의중판사진을뽑아’행복이가득한집’잡지와함께타시겐트로
보냈다.그리고철자법과문장에틀린곳을많았지만분명한글로또박또박쓴답장을받았다.
생전처음천연색으로나온자기들의사진을보고온시장이떠들석하게구경했으며잡지를보고
비로서한국이어느정도로발전했는지를알았고,지금그책은여러집이돌려가면서구경하고
있다고했다.
그리고우리의서울동포들이사진을보내주겠다는약속을지켜준것이제일자랑스럽다고했으며
다음에타시겐트에올때는날자를넉넉히잡아자기들과지내자고했다.구구절절히순전한정이
넘치는편지였다.)
아내와나는그들이팔고있는맛있는오이,토마토,홍당무,딸기,뻐찌등을샀으며2층으로올라가
우즈베키의건포도등말린견과몇가지도샀다.
물건들은실했으며값은저렴했다.

다음은,
조선족들이침술과뜸으로치료하는자그마한병원을구경하러갔는데여자의사들이많은것이
생소해보였다.
우리눈에는병원처럼보이지않았지만실제로많은조선족들이와서치료를받고있었으며
나름대로’의료기능’을다하고있었다.
의사들의복장중특이했던점은흡사주방의주방장이쓰는것같은둥굴고흰모자였으며
그들은친절했고그행동에품위가있었다.
병원을한바퀴돌아본후넉넉하고꾸민것이없는정원그늘에앉아조선족이라고부르는동포들에
대해생각해봤다.
역사에서우리가얻은것은무엇이고잃은것은무엇인가.
그근처에도조선족시장이있었다.
나는바닥에떡함지를놓고떡을팔고있는한할머니앞에앉았다.
고향에서돌아가신할머니생각이났기때문이었다.
그리고우리를반기는그할머니에게작은세수비누하나를드렸다.
[내어찌이걸거저받을수있겠소,이은혜를어떻게갚아야하겠음.]
오염이안된순수한조선사람이거기있었다.
결국쥐어주는떡을받아들고일어났지만마음은천근무게였다.
나중에그떡을먹어보니,지금은우리가사먹을수없는내가어렸을때먹었던진짜조선떡이었다.

우리를안내하고있는최분순씨는타시겐트에거주하는조선족이지만소련국영여행사의직원이다.
우리는그에게골목안에있는타시겐트주민의가정집을구경할수있도록교섭해보라고했고
생각보다교섭은쉽게이루어져한가정의내부를볼수있었다.
그가정의뜰에는과일나무가있었는데거의모든집의뜰에는과실수가심겨져있다고했다.
집은뜰을중심으로4각형이었고겉보기와는달리깨끗했지만주거하는방,부엌등을살펴보니
아주낙후된생활을하고있다는것을알수있었다.
가구는정말기본적인것들만있었다.
이곳사람들은평생을돈을벌어집을짓는다고했으며아들들은하나하나집을지어주면서
한울타리안에분가(分家)시킨다고했다.
모든부모는꼭자식들에게집을지어주며아이들은근면하고부모에게순종한다고했다.
그집을나온후,
골목어귀그늘에앉아있는노인의모습이퍽인상적이어서카메라고촬영을하려고하자갑자기
몸을움추리면서큰소리로무슨말을하기시작했다.
이유를물어보니,갑자기이상한놈이나타나서기계를갖다대기때문에놀라서[하나님,하나님]
했다는것이다.

이곳에서의외였던점은,
이곳조선족들이지나간70여년이[소련이잠을자고있던시기]라고인식하고있다는것이었다.
결과적으로중공업도,경공업도모두실패한것을그들스스로가인정하고있었으며사회주의
경제체제가국가재정을파멸로이끌었다는것이다.
그러나50년후에는달라질것이라고단언했다.
억센사투리속에숨어있는예리한판단을읽을수있어기뻤다.

다음에간곳이[레닌박물관].
그곳은거의완벽할정도로잘정돈되어있었고아주깨끗했다.
레닌이학생때입었던옷의단추도보관,전시되어있었고그가우수학생으로받았던작은메달도
있었다.
특히[해설]을하는중년의소련부인이보여주는열성은대단했다.
모스크바에서[레닌묘]를보고온우리는이곳에서다시한번그이묘를보는기분이었다.
소련에서레닌은분명새로운우상이었다.
모든시설과운영이낙후된이곳에서이렇게빼어난시스템과효율적인관리,운영이되고있는곳은
정말죽은레닌과관계되는것들뿐이다.
미이라가대접받는그만큼살아있는인민들은소홀해지는것이사회주의국가인데북한도마찬가지다.
(김일성의미이라와그것을안치하고있는거대하고화려한시설을유지하느데드는비용은북한
경제의커다란압박요인일것이다.)

다음에가본곳이[전통공예박물관]
이곳에전시되어있는여러가지직물에는아랍의영향이크게나타나있었다.
이곳이회교지역임을실감할수있었다.
아랍무늬의영향이아주컸으며그만큼신비하고아름답기도했다.
비록낙후된지역이지만이렇게훌륭한전통문화보전시설이있는게놀아웠다.
그러나우즈베키스탄은그엄청난목화재배와수출로주정부살림은넉넉한편이고타시겐트도
소련에서는네번째로큰도시인데전체적인낙후성은우리와비교하는것자체가무의미했다.
아무리살펴봐도회교권인,민족성이강한지역에사회주의시스템은맞지않는것같았다.

이제떠날때가됐으니하는말이지만,
초루스호텔이무너져내리지않는것은그자체가기적일수있을정도로그건축시공은위험했다.
고층호텔자체도약간은기울어져있는것처럼보였다.
그건흡사이집트인들이도로포장을끝낸후황색중앙선을똑바로긋지못하는것과일맥상통하는
[부족함]이었다.
우리부부는이호텔을빠져나오면서솔직히[안도]의숨을쉬었다.
그들의그[부족함]은한두세대안에극복될수있는그런성질의것은아니었다.

모스크바에서타시겐트까지의비행은,
대기,수속,탑승,비행,그리고도착과이동모든과정에서거칠고,사납고,안하무인인중년의
뚱뚱한소련여자들이담당했다.
거기에는[항공사-기업]이라는경제개념이없었으며[손님-서비스]라는개념도물론없었다.
소련은[여자들]이없으면운영이안되는나라다.
그리고그국가운영에[경제mind]가없기때문에지금의체제로는상태가계속나빠질수밖에
없는절박성이있다.
그어떤분야도국제경쟁력을가질수없기때문에결국은해체될수밖에없는운명인것이다.
[군사력]만막강하면서방을이길수있다고믿었던[볼세비키]들은이제비로서그힘만으로는
생존할수없다는현실을이해하기시작했으며[페레스트로이카]는그인식의때늦은처방인
것이다.

[레닌그라드],
그곳은옛러시아의[쌍트페테르스브르그]다.
유럽쪽에가장가까이위치한이도시의모습은혁명을껶으면서어떻게변해있을까.
정말기대가컸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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