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기행 8- 레닌그라드.
밤비행기로[레닌그라드]에가기위해다시타시겐트공항으로나갔다.
정말뜻밖이었던것은소련영내의모든공항의비행스케쥴은모스크바시간을기준하고있다는
사실이었다.
현지시간과항공기이,착륙시간은별개의것인셈인데정말이해하기힘든시스템이었다.
그리고가만히귀를기울이고우즈베키인들의대화하는소리를들어보면그억양들이꼭우리말을
듣는것같았다.
몇번이고귀를기울여들어봐도역시그랬다.
우즈베키스탄의인구중약65%가터키계의우주베키인이며그들은다시터키계유목민과터키화한
몽고인으로형성된다.
따라서,혹시우랄알타이어의영향이아닐까하는생각을해봤다.

야간비행을거쳐레닌그라드공항에도착한것이새벽,
버스가대기하고있지않아상당시간을기다려야했다.
이곳에서우리를안내할국영여행사의직원은[세르게이]라는청년,
공산주의체제에대해내놓고불만을터트리는,우리말이서투른소련의신세대였다.
숙소는[모스크바]호텔.
그런데배정된방의화장실에는뜨거운물이나오지않았으며따라서샤워를할수없었다.
초루스호텔을떠나면서부터레닌그라드에도착하면즉시샤워를해야하겠다는생각은착각이었다.
이곳이모스크바보다사정이더나쁘다는것을몰랐던것이다.
세르게이에게이사정을얘기하자,
[우리는오래동안겨울에도뜨거운물이라는것을모르고산다.찬물도제대로나오지않을때가
있다.]고하면서우리를핀잔하는태도였다.
아침을먹으로내려간식당,
명색이호텔식당의테이블인데사용하는컵이서로달랐다.
컵이부족해서그렇다는것이다.
그리고접시도금이갔거나이빨이빠진것들이었다.
그나마거기에라도음식을담아먹을수있다는게다행이라는생각이들었으며식당에들어서면서
보니입구에서캐비어를팔고있었다.
먹고싶으면사먹으라는뜻이다.(소련에입국한후우리는한번도캐비어를산일도,먹어본일도
없다.우리식성과는전혀만지않았기때문이었고그까만알들은그로데스크하기까지했다.)

레닌그라드.

이곳은한눈에빠리,런던,로마를종합해놓은것같은인상이었다.
모스크바에비해조용하고깨끗했지만도처에[가난]의모습이한눈에들어왔다.
가장아쉬웠던것은식량사정이나빠이유서깊은도시의러시아식당에서음악을들으며식사해
볼수없다는점이었다.
(같은공산국가라도부다페스트에서는그것이가능했었다.바이얼린연주자는우리의우아한식탁
까지와서감미로운음악을연주해줬었다.)
이곳은,
1703년[표르트]대제에의해핀란드만으로흐르는네바강삼각주의습지에건설되었으며1712년
모스크바로부터수도를이곳으로옮기면서[쌍뜨페테르스브르그]라고불렸다.
소련제2의도시이며발트해의무역항으로서[유럽으로열린창]이라고불리기도했다.
그만큼서구적인색채가짙은도시였다.
그리고1917년,[볼세비키]혁명후수도가다시모스크바로옮겨가면서[레닌그라드]로개칭되었다.

아르미타즈(ermitage)미술관.

처음찾아간이미술관(박물관)은,
세계굴지의규모로고고학적발굴품과공예품을포함하여그수집의폭이넓다고한다.
1764년에카테리나2세가설립했으며19세기부터일반에공개됐고10월혁명후국유화됐다.
수장품중에는역대러시아황제가수집한미술품과특히르네상스이후의회화에걸작품이많다.
레오나드다빈치의[마돈나베아노],
렘브란트의[돌아온탕자],
마티스의[춤],그리고피카소의[청색시대]등이그것이다.
우리는입구에서부터그물량에압도되었으며빠른걸음으로걸으면서도그놀라운소장품들의진열
상태가좋지못한점이가슴아팠다.
그것은세계적인카이로박물관에쌓여있는,정리되지못한유물들을연상케했다.
그리고아르미타즈엔카피가없다는것이이곳사람들의자부심이라고세르게이가설명했다.
전부가오리지날이라는것이다.
건물의외양과내부는말할수없이낙후되어있었지만그곳은진정흙속에파묻혀있는아름다운
진주였다.
언젠가는반드시빛을볼날이있을것이다.

성이삭성당,
그내부의아름다움은바티칸과는또다른것이었다.
옛요새들,
예술의광장,벼룩시장.
그모든곳에널려져있는것은현실적인가난이었다.
모스크바와똑같이여기저기에긴줄이서있었으며사람들은큰가방을들고다녔다.
가난은제자리에있어야할것들을없애버리기때문에하나의도시에서[아름다움]을앗아간다.
그아름다운옛도시[쌍트페테르스브르그]는[레닌그라드]가되어아무것도없는가난한도시가
되어있었다.
타시겐트만도못한텅빈도시가된것이다.
어디를가든관광버스에는거지떼가매달려무엇인가를달라고조른다.
그리고레닌그라드시민들은모스크바를좋아하지않는다고했다.
특히스탈린은혁명수도의권위를위해모스크바박물관의소장품중약50%를이곳에서가져갔다는
것이다.
성당건물을개조해[무신론박물관]으로쓰고있는곳도있었다.

다음날은가까이에있는푸시킨시의에카데리나여제의여름궁(夏宮)에갔다.
맑은공기,깨끗한숲.
궁의내부는찬탄이나올정도로아름다웠다.
화재에따른복구공사가계속되고있었으며나무의조각품,금물의칠모두가대단히정교한작업인데
전문가들답게아주섬세하게작업하고있었다.
그러나일부외부의건물은낡아서그냥두면썪어서내려앉을것같았다.
황제들은이곳에서극치의영화를누리면서과연어떤삶을살았을까.
여름궁을구경한후,
가까이에있는자그마한가게에들어가봤다.
규모도작고물건도형편없는것들이었다.
그러나나는무명판화가의[겨울]한점을발견,그것을샀다.
아주마음에드는수준급작품이었다.
판매여직원에게수성볼펜하나를주니얼굴을붉히면서좋아한다.
정말순박한사람들이다.
여직원은내가산판화를어귀도맞지않는누런종이에싸서노끈으로묶어줬다.
(나중에모스크바공항에서출국심사를받을때공항관리는그포장까지열어검열했고웃으면서
다시싸줬다.)
우리는더운물이나오지않는이곳을빨리떠나모스크바로돌아가고싶었다.
코스모스호텔을떠난후로는샤워도못했고잠도제대로자지못했기때문이었다.

밤10시에호텔을떠나레닌그라드의모스크바역에도착했다.
밤11시발[모스크바]행침대차를타게됐는데뜻밖이었던것은다른유럽국가들과마찬가지로
개찰이없었다.
짐을가지고바로역구내풀렛폼으로들어가이미대기하고있는열차에서자기칸을찾아올라가면
되는것이다.
우리의개찰과정이일본의식민지잔재임을생각하니한편부끄럽기까지했다.
우리가타고갈침대차는모스크바까지직행하는[붉은화살호].
배정받은침대칸은4호차량이었다.
이층침대의윗칸은내가쓰고아래칸은아내가쓰기로했다.
세르게이와헤어지면서나는말보로담배여러갑을그에게건네면서그동안의수고에감사했다.
열심하나는알아줘야하는성실한청년이었다.

열차가출발한다음에알게된사실은,
4호차량에전속된나이많은여차장이있다는것과차량입구의넓은공간에석탄을때는대형난로가
붙어있다는점이었다.
그여차장은아주친절한분이었으며열차가출발하자뜨거운러시아차를두컵에가득부어갔다
줬다.
열차창문에쳐저있는레이스가달린흰색의커텐은그대로제정러시아의분위기였으며
소련에입국해서오래간만에기쁜마음을가질수있었다.
뜻밖에낭만적인열차여행이된것이다.
침대는좁았지만깨끗했고,편했으며차가흔들리는진동이느껴지면서밀렸던잠이쉽게왔다.
눈을뜨니새벽3시반,
이미백야의영향으로밖은밝은채였다.
나는컵라면두개를가지고차량입구쪽에가서여차장으로부터난로위에서끓고있는뜨거운물을
얻어부어가지고돌아왔다.
그리고그것을먹기전,여차장의얼굴이떠올라서컵라면하나를가지고다시가서손짓으로먹는법을
가르쳐주고돌아왔다.
우리가컵라면을먹은잠시후,여차장은두컵의따뜻한차를만들어가지고왔으며라면이아주맛이
있었다는의사표시를했다.

러시아의들판,
계속이어지는자작나무의숲들,
비옥해보이는검은땅.
그사이사이다허물어져가는소련농부들의남루한가옥이보였다.
사람만,체제만,정신만올바로된다면,
그땅에오늘의영농기술을더한다면,소련은딴나라가될것이라는생각이들었다.
이번의야간열차여행은지극히인상적이었고놀랄만한일정이었다.
특히아내의기쁨은아주컸다.
러시아의백야,그리고그끝없는자작나무숲의들판은그렇게낭만적이고아름다웠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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