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기행 9- 자고르스크.
정확히8시간후인아침7시.
[붉은화살호]는모스크바역에도착했다.
이곳에서도[집찰]은없었으며,그것은정말뜻밖이었다.
대신열차가운행하는동안차장은계속차내를오가면서열차표를체크했었다.
냄새나고불친절하고거친국내선여객기를타지않은것만으로도열차여행은감사했다.
유라는버스와함께우리를기다리고있었으며코스모스호텔에도착한즉시우선샤워부터했다.
시설은낡았지만뜨거운물이나온다는사실이그저고맙기만했다.

오전10시.
모스크바의[황금고리]중하나인[자고르스크]를향해출발했다.
그곳은지금도러시아정교회의중심지다.
자고르스크로가는길,
마침주말이라많은모스크바주민들이도심을빠져나가고있었는데중간중간고장난차들이
아주많이도로변에서있었다.
소련의자동차들은[윈도우부라쉬]를달고다니는차가거의없다.
비가오면꺼내쓰고비가멎거나차를세워둘때는다시빼서차안에둔다.
그이유는도둑을맞기때문이라고했다.
차의유리창이파손되면두꺼운비닐을테잎으로붙여쓰고있었으며[후엔다]가없는차도자주
볼수있었다.물론[휠카바]도거의없다.
부품부족이어는정도로심각한것인지짐작할수있었다.
그리고모든차들은정말온갖것을다싣고다녔다.
물자부족의정도가피부에닿게느껴졌다.

자고르스크에는[이반4세]에의해축조된[성세르기에프삼위일체교회]가있었으며
특히푸른색의커다란돔은인상적이었다.
우리부부는아름답고유서깊은이교회에서러시아정교회교인들과함께예배를드렸다.
다른나라의정교회예배와마찬가지로의자없이모두가서서신부와회중이나누어부르는
성가가많았다.
그들은진지했으며예배분위기는엄숙했다.
모스크바에서불과70키로밖에떨어져있지않은곳에이런종교적지역이건재하고있다는사실이
조금은놀라웠다.
그러나신학교건물은폐쇠돼있었으며교회의유서깊은건물도보수를하지못한채였다.
점심식사는,
그곳의작은호텔식당을이용했다.
작은단지같은오지그릇에감자와쇠고기등을다져넣고그위에달걀을덮어오븐에익힌음식인데
아주맛이좋았다.
그들은그음식을[기야]라고불렀다.
돌아오는길에잠시굼백화점에들려빨간색순모스웨터를90루불(약2.5불)을주고하나더샀다.

호텔로돌아와서둘러저녁식사를한뒤,
모그크바의[써커스]를관람하기위해다시나갔다.
공연장은규모가컸고내용도좋았다.
가장인상적이었던프로그램은,[호르라기쇼]였다.
두명의도화사-파리아쵸들이단지호르라기로만대화하는장면인데그호르라기소리의강약과
바디랭귀이지는그들의대화내용을충분히관객들에게전달하는높은수준이었다.
아이디어도좋았지만연기력도대단했다.
유라가이미설명했던대로,
소련당국은이런공연장을저렴한입장료로운영,인민들의스트레스를풀어준다는것이다.
좀길기는했지만써커스단원,그리고등장하는모든동물들의기교는놀라운것이었다.
오늘은,
유라씨의부인과어린아들도동행했다.
부인은교양이있었으며아들미샤는아버지를그대로닮고있었다.
소련인가족과함께보낸시간도퍽의미있는일정이었다.
호텔로돌아온것이밤10시.
뜨거운물로샤워한후침대로들어갔다.

오늘모스크바교외를오가면서느낀것은,
옛러시아의아름다운마을과집들이혁명후보수를하지못해퇴락을거듭,어떤가옥은무너지기
직전이었다.
그것은가슴아픈정경이었고가난은사람과똑같이환경까지도파괴한다는것을절감했다.
그래도한가지남아있는,정서를느끼게하는것은그렇게가진것이없으면서도꽃이유통되고있다는
사실이었다.
한송이씩,그들은꽃을팔고사고있었다.
우리도그꽃을샀다.그것이꽃이었기때문에.

다음날아침식당은뷔페식이었다.
우리는간단히식사한후모스크바의유명한[아르바트]거리로나갔다.
이른아침이고일요일이었기때문에사람들은적은편이었다.
산책하며사람,거리,내다놓은그림들을살펴보기는아주좋았다.
이거리에서가장아름다운것은[가로등]이었고시간이있다면오래머무르고싶은거리였다.
그러나초상화가들이그리고있는그림은수준이하였음으로초상화를그리려던생각을바꿨다.

다음에들린곳이[푸시킨박물관].
이곳이층전시실에는우리가반드시봐야하는그림한점이있다.
[고호]가생전에미술을가르치는여교사에게팔았던단한점의[붉은포도밭]이걸려있는것이다.
우리는이층으로직행했고,
깊은감회를안고오랫동안그그림을감상했다.
[붉은포도밭]의원화를직접볼수있다는것은지금과같은냉전시대에서거의기적같은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리스와로마시대의조각품도많았으며세계적인수준의미술관이었다.

이어모스크바대학교에잠시들렸다.
그건물은학교라기보다는성채처럼높이쌓아올린거대한구축물이었다.
공산국가가지향하는목표와의지를담아낸건축물이었으며,캠퍼스에는사람이많지않았지만
특히눈에뜨이는것이여학생들의세련된복장이었다.
그들의복장은색상이아름답고조화로웠으며미인들이었다.
역시캠퍼스는그분위기가달랐다.
유라는자기도모스크바대학교의졸업생이라고했다.

다음에들린곳이러시아가낳은문호[톨스토이]의집이었다.
그는귀족이었지만목조의작은집에살았고,지금그집은많이낡아있었다.
그는아주검소하게살았다고했으며러시아인들은그집을[짧고좁은복도와작은창문의집]
이라고불렀다고한다.
그의응접실,침실과서재,그리고아이들의방도아주검소했다.
1908년에녹음된그의육성과피아노음악을들을수있었다.
그가산책했던뒷뜰에는아주큰나무가있었으며부드러운잔디가깔려있었다.
우리는그산책로를따라걸으면서우리세기의위대한스승에대해깊이생각해봤다.
[톨스토이집]을관리하는소련여인들,
그위압적인태도와쇳소리나는거친음성은참으로소련을위해보통문제가아니었다.
도대체무엇이이나라의중년여자들을그렇게사납게만든것일까.
대답은아무데도없었다.

호텔로돌아와점심식사.
그리고2시30분경,귀국을위해공항을향해출발했다.
그때,우리는호텔앞쓰레기통을뒤지는소련소년들을봤다.
그들은무엇인가를찾아먹고있었다.
정말가슴아픈정경이었고,우리의6.25시절이파노라마처럼지나갔다.
버스가공항에도착하기전,우리부부는휴대용헝겁가방에남아있는모든물건을옮겨담았다.
쓰던볼펜,치약,비누등그무엇이든그들에게는절실하게필요한일용품들이기때문이었다.
나는입고있던상의(코트)까지벗어서잘접은후그가방에넣었다.
유라에게그옷은절실하게필요한것임을내가알고있었기때문이었다.
우리는유라와깊은악수를나눴고나는남아있던달러를그의손에쥐어줬다.
그리고버스에있는헝겁가방을잊지말고부인에게갖다주라고일렀다.
그는소련젊은이로서사려깊은지식인이었으며,
우리는이데올르기를넘어인간적으로가까워졌었고짧은시간이지만정이들었었다.
그도우리와헤어지는것을아쉬워했다.
출국심사는이상하게도부다페스트공항과그절차가비슷했다.
그리고입국때보다출국장이더깨끗해보였지만우리기준으로는축사를좀면한정도였다.
소련은언제쯤이낙후를극복할것인가.

탑승구는17번게이트.
보세구역에나와취리히에서경유지인모스크바공항에도착,대기하고있는KAL을보니반은
서울에간것같이반가웠다.
국적기는소련비행기들에비해우선깨끗했다.
10일간의짧은여행이었지만모든것이낙후되고열악한땅,모든것이부족하고가난한나라,
침울한얼굴에거친여인들,그리고우리와다른,가장비효율적이고반인간적인체제.
그모든조건들은우리에게더있고싶은마음을가질수없게했다.
그러나한편으로는,
바로이때,거대한소련이해체되고있는시기에이곳을둘러볼수있었다는것은하나의행운이었다.
정말그것은[역사의현장]을볼수있는기회였다.

우리는빠른걸음과동작으로국적기에탑승했다.
기내의깨끗함.
편안한좌석,여승무원들의미소와친절,정말딴나라같았다.
거친땅에서부드러운땅으로들어선것이다.
좌석은많이비어있었고그만큼귀국길은편했다.
특히타시겐트의초루스호텔에서겪었던악몽같은불편은잊을수없었다.
여승무원들이갖다주는청결하고부드럽고따뜻한타올,그건익숙한감촉으로전달되는우리것이었다.
그리고기내식,
우리는,음식을먹기전에한참동안그깨끗하고정갈하고풍부한쟁반을내려다봤다.
그자본주의쟁반은사회주의쟁반이결코넘을수없는[경제의힘]을상징하고있었다.
그엄청난차이는겪어보지않으면결코알수없는것이다.

흡족한마음으로식사를마친후의자깊숙히등을기대고천천히커피를마시면서생각해봤다.
[이데올르기]란무엇인가.
같은인간인데어떻게그토록다른[생각]을해내는것일까.
그리고그피해는얼마나참혹하고가혹한것인가.
그러나그것은내가개인적으로대답할수있는문제는아니었다.(계속)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