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내게묻는다.
-문잘잠궜어?
-그럼.
-다시한번확인해봐.
-아니우리집에훔쳐갈게뭐가있다고그래.
-내붓.
이한마디는아내의모든것을설명하는키워드다.
도대체어떤도둑이다낡아빠진,오래된그림붓을훔쳐가겠는가.
그러나아내에겐손에익은,오래동안함께그림을그려온그낡은붓들이가장소중한것이다.
다이아도밍크도현찰도아닌[붓]이다.
그럴때면나도속으로점검해본다.
[음반,책,낚시대와릴.]
내게도가장소중한것들이바로그것이다.
그래서우리는가치관에서마음이딱맞는다.
우리는남에게보이기위해서가지고있는것은아무것도없다.
내게필요한것,내가써야하는것만가지고있다.
우리집을취재한여성월간지기자가[그집엔가구가없다.]라고쓴기사는그래서정말이다.
벽마다걸려있는아름다운수채화들도,
두개의벽을천정까지가득채우고있는책들도,
낚시장에진열된족보가있는낚시대들과수십개의릴들도,
천개가넘는음반과테잎들도,
책장옆에세워놓은첼로와목관클라리넷도사실가구는아니기때문이다.
예를들어길을걷다가비를만나도,
가지고나간우산이입고있는옷과색깔이맞지않으면그냥비를맞는게내아내다.
색의조화에민감하기때문이다.
화가이기이전에색감이뛰어나고물건을고르는안목이아주높은편이다.
우리집구두장설합들은아내의손수건,장갑들로가득차있다.
외출할때,구두까지신고난다음설합을열고자기의차림과가장잘맞는손수건과장갑을고르기
때문이다.
이순서는지치는법이없다.
얼마전갈색의순모롱코트를하나구입했는데,그것을입고나선아내가갈색의긴부츠를신고
있는게아닌가.나는처음보는구두였다.
여래해전,구두가맘에들어사놨는데그동안갈색코트가없어서안신었다는것이다.
가만히살펴보면아내의옷들은많은편은아니지만세계적인브랜드가많다.
오래동안하나하나모은것이다.
그래서오래입을수있고,언제나멋이살아있다.
격조높은패션감각을가지고있는게틀림없다.
내가하는말이아니라남들이그렇게말한다.
옷을입을줄아는여자인것이다.
믿기어렵겠지만,
아내는처녀때의치마를지금도그대로입는다.
남매를낳아기르고손녀까지있는나이에체격과체중은처녀때그대로다.
체질에도이유는있겠지만내가보기에그건운동의결과다.
테니스,수영,자전거타기,걷기,등산그리고지금까지빠지지않고아침이면에어로빅을하러간다.
딸나이의젊은이들이자기를따라오지못한다고한다.
도대체몸에살이붙을겨를이없을만큼강도높은운동으로자기몸을관리하고있는것이다.
아내가하는말이있다.
[비만은어떤경우에도전적으로본인의책임이다.]
체격이이러니옷만제대로맞춰입고나서면언제나스타일리스트다.
아내는TV를보지않는다.
어느정도냐하면전혀보지않는다.(우리는각자자기의TV를가지고있다.)
그래서가끔친구들모임에나가면그들의화제에끼어들수가없다고한다.
연속극을본일이없으니그건당연하다.
정확히말하면아내는TV를못본다.
시간이없기때문이다.
[그림그리는작업]은거의밖에서이루어지고집에돌아와서도마감손질등[집중]하지않으면
안되는강도를요구하기때문이다.
게다가나라도TV를자주보면잠깐이라도볼기회가있겠지만나역시축구나야구,그리고
다큐멘타리만보기때문에지상파3사의방송은거의보지않는다.
나역시그만한시간을낼수없기때문이다.
아마도우리집TV세트는그수명에서장수할것은틀림없다.
사람이살고있는집은크게두가지가있다.
남에게보이기위한집이있고,자기가살기위한집이그것이다.
우리는,우리가살고있는공간을완전히우리가편리하도록활용한다.
그하나가실내장식인데그건아내의몫이다.
작은꽃한송이,아니면산에서가져온나목의가지까지도아내의손을거치면아름다운장식이된다.
가지고있는물건들을활용하는재주는천부적이다.
그래서즐거운게바로나다.
그변화무쌍한장식들을보는것은얼마나즐거운일인가.
그것은정말생산적인작업이다.
우리부부가가장강조하는것이바로[생산적인삶]이다.
그한가지형태가계속해서하는[공부]다.
나는늘블로그에글을올려야하기때문에학생때보다더열심히공부해야한다.
아내의영어공부도끝이없다.
그향학열은멈출줄모른다.
없는시간을쪼개어늘영문소설을읽는다.
지금은이미읽은영국작가RosamundePilcher의[WinterSolstice]를번역하고있는중이다.
교정은내가봐주고블로그에올릴계획이다.
한가지확실한것은,
사람은[공부]를계속하면사고방식에서늙지않는다는점이다.
책은인간을[젊은사람]으로지켜준다.
공부하는머리는늙을짬이없다.
지금아내는나보다운전을더잘한다.
아내의운전은섬세하고침착하다.
그런운전실력이외국에서의자동차여행도가능하게했던것이다.
그러나1974년으로거슬러올라가면얘기는달라진다.
그해4월,
아내는첫번째운전면허시험에서낙방했다.
집에돌아와현관에서서울었지만나는모른체했다.
운전은생사가걸리는중요한일이기때문에한번쯤낙방하는것도나쁠게없다.
그러나시험은합격해야하기때문에운전연습은과외를하게했다.
다음시험에는합격했고,우리는곧하얀색의[브리사]를구입했다.
아내는그차를[나의백조]로명명했고우리네식구는그차를타고안간데가없다.
그때만해도여성운전자가거의없던때이고,고속도로에서불법회차를해도떼가통하던시절이다.
그동안아내가그차를가지고일으킨크고작은사고들은한가지설명이면충분하다.
우리가다른차를사기위해그차를팔았을때,
그차가출고될때의남은부분은지붕뿐이었다.
나머지부분은전부바꾼것이다.그게바로온갖사고의흔적들이었다.
트럭과버스사이에끼어서도살아났으니그게바로기적이다.
지금은일곱번째로바꾼차를타고있는데,아내는비,안개,밤운전에강하다.
그만큼많은풍상을겪은결과다.
어떤때,
아내는지는해를보고[달]이라고한다.
그렇게보인다는것이다.해를몰라서하는소리가아니다.
그래서,아내는그림을그리는것이다.
그림의[회화성]은그런눈에서나오기때문이다.
아내는[현장]이아니면그림을그리지않는다.
철저한현장파다.
그추운겨울,눈밭에서몇시간씩버티는것을보면가히초인적이다.
그래서아내의그림은생동감이있고충실하다.
붓에힘이있기때문에남자가그린것으로아는분들이많다.
그림을그리는한아내의생각,마음은늙지않을것이다.
아내는늘새로운것을추구하고,변화를꾀한다.
한곳에안주하는것을단연코거부한다.
그것이한인간이발전하는원동력일것이다.
아침운동을하러갈때,
자전거를타러나갈때,
그림을그리러나갈때,
시장에갈때,
나와함께외출할때,
동창회에나갈때,
정장을하고교회에갈때아내는놀라운변신을한다.
전혀딴여자가되는것이다.
그래서아내는정말[멈추지않는여자]다.
나는그런아내를깊이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