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성.
집안에손질할데가있어가까이에있는인테리어가게에들렸다.
가게안은어둠침침했으며잡다한물건들이널려있어몹씨산만했다.
게다가어른은없고중학생인듯한남자애가가게를지키고있었는데포도를먹으면서
컴퓨터게임에열중,손님이들어선것도모르고있었다.
‘어른은안계신가.’하고내가큰소리로물으니눈은게임에서떼지않은채’그렇다.’고
건성으로대답한다.
할수없어,그렇다면가게명함을한장달라고하니한참동안게임을한후마지못해일어나
반대편에있는탁자로달려가통안에들어있는명함을꺼내주고는바삐컴퓨터로돌아
간다.
명함을보니’종합인테리어’가업종이다.
그가게는인테리어와연결될만한어떤정서적인분위기도없는잡화상같았으며
가게를보는아들은자기집이무슨장사를하는지도모르는것같았다.
어른이없을때아들에게가게를보게하려면거기에합당한기초교육이있어야한다.
손님을응대하는법,질문에답변하는요령,명함을주면서연락을주시던가다시
찾아달라는등’장사’가살아있게해야한다.
그게’전문성’이다.

이태리의로마,
우리일행이임대한대형관광버스는최신형의고급차량이었으며차안에는냉장고와
화장실까지갖추고있었다.
생각보다버스가일찍호텔에도착했기에버스안팎을찬찬히구경할수있었다.
그때젊은이하나가그버스의안팎을구석구석땀을흘려가면서닦고있었다.
건성으로하는일이아니라최선을다해버스를손보고있었다.
시간이되어기사가도착했고우리일행은목적지를향해출발했다.
그이후며칠동안가만히관찰해보니그젊은이는온갖궂은일을도맡아했으며
운전기사는흡사노예부리듯젊은이를부려먹는게아닌가.
여행을마치고로마에돌아온후알게된사실은그젊은이가바로버스기사의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버스는운전기사의개인소유였으며(그는이버스외에도여러대의버스를가지고있는
기업의사장이다.)아들은장차아버지의가업을이어받아야하기때문에가장궂은일
부터배우고있는중이라고했다.
특히버스에동승,모든여행지를함께다니며이를숙지하고버스를운행하는모든
노하우를온몸으로실습을통해배우는중이라고했다.
그렇게하지않으면아버지가이룩한가업을이어갈자격이없다는얘기였다.
말하자면혹독한전문성훈련인것이다.
버스가호텔에도착한후그아들은작업복을벗고깨끗하고세련된평상복으로갈아입은후
번쩍거리는벤츠,자기차를몰고집으로갔다.
아버지는만족한표정으로아들의뒷모습을바라보고있었다.

두가지에피소드의차이는작은것같지만그근본에서전혀다른의미를가진다.
자본주의시장경제의핵심은언제어디서나’경쟁’이다.
선진사회의모든향상은경쟁의결과들이고승자만이살아남는다.
국가간의국제환경에서도마찬가지다.
이발사가바둑을두느라고손님을기다리게하고,
식당종업원이텔리비젼의연속극을보느라손님이부르는소리를못듣고,
가게주인이친구와수다를떠느라잔돈주는걸잊어버리고,
버스운전자가손님생각은안하고제좋아하는래디오의소리를크레틀어놓고,
사무실에서근무중컴퓨터로자기일을보는것은모두가비전문적인행태들이다.
우리사회가자본주의시장경제를채택한지오래됐지만’전문성’이정착되지못하고
있는이유가거기에있다.
‘전문성’은그게무슨일이든자기가하고있는일에최선을다하는자세다.
거기에더해남보다그일을더능율적이고효율적으로해내는노하우다.
따라서’전문성’을가지기위해서는먼저자기일에대한자부심과직업정신이살아
있어야한다.
전문성이부족한가장큰이유가일에대한자부심이없기때문이다.
그러니나오는게불평,불만뿐이다.
거기에무슨경쟁력과향상이있겠는가.

국제선대합실한쪽귀퉁이에구두닦기코너가있다.
구두약과솔,여러가지도구들은같은데거기서구두를닦으면유난히반짝거리고
그광택이오래간다.
한번은구두를닦으면서가만히관찰해보니그나이많은구두닦이가반드시검지와
중지로직접구두에약을발랐다.
나는손가락을쓰지말고솔로약을발라도되지않느냐고말했다.
대답은뜻밖의것이었다.
‘약은손가락으로직접발라야가죽에깊이스며들고그래야광택이잘나고오래간다.’
는것이었다.
자기일에대한자부심이없이는나올수없는전문가의대답이다.
실제로그는자기일을즐겁게,성의를가지고했으며종업원을따로고용할만큼
손님이줄을잇고있었다.
언제어디서나전문성은손님이먼저알아본다.
우리가새아파트로이사왔을때,
나는원정바다낚시에가지고가기위해새로문을연빵집에내가원하는빵이있는지
전화로문의했다.
전부10개가필요하니확보해두면가지러가겠다고했다.
그런데새로문을연그빵집의주인은꼭자기가갖다드리고싶으니동,호수를알려
달라는것이다.
결국그분은빵10개를들고우리집까지왔고,그후우리는그집단골이됐다.
지금그빵집은번창일로에있다.
그러나주인은처음의그겸손하고부지런한태도에어떤변함도없다.
‘전문성’이유지되고있는것이다.

전문성은책임감에서나온다.
자기가맡은일에책임을지는마음가짐없이전문성은생기지않는다.
일류회사와삼류회사의차이도결국은책임감의문제다.
어떤회사에전화를걸었을경우,용건에대한대화가끝난후전화받은사람의이름을
물어본다.
정확히자기부서와직함을말하는회사가있고,’여기서일하는사람’이라고만
얼버무리는경우가있다.
한쪽이책임소재를분명히한다면다른쪽은책임의회피인것이다.
그런회사가어찌발전할수있겠는가.
전문성자체는현업에종사하면서배우고,숙련될수있지만전문성을담는그릇인
책임감은교육으로학습시켜야한다.
가정과학교교육의중요성이거기에있다.
이중요한덕목교육들이입시공부에밀려시행되지못하고있는한우리는그바탕에서
내용적인발전을할수가없다.
전문성이부족해서’경쟁력’을가질수가없기때문이다.

요르단의’아카바’항에가기위해시나이반도타바에서출발하는고속페리의승선권을
카이로에서예매했다.
출발시간은12시정각,
서둘러호렙산을다녀온후출발1시간전인정각11시에타바에도착했다.
그러나배는이미떠나고없었다.
대답은,’손님이다찼기때문에떠났다.’는것이다.
할수없이예매한승선권을내밀고환불을요청하자그건카이로에가서받으라는것이다.
같은선박회사에서어떻게이런일이있을수있는가.
그게이집트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