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리고로 가는길.
구약성경신명기6:4-5절은’너희는들으라’의뜻인Shema(쉐마)로시작되며
이는이스라엘의대표적인신앙고백이다.
한편,복음서의원형인마가복음은12:28-34절에서이내용을다루고있다.
가장큰계명은마음과목숨을다해하나님을사랑하라는것이며
둘째가는계명은네이웃을네몸과같이사랑하라는유명한구절이다.
마가에서,
이내용에대해슬기롭게대답하는율법학자를향해주께서는
‘네가하나님나라에가까이와있다.’고말씀하셨다.

그러나누가의병행구는같은내용에대해아주다른입장을보인다.
성경학자들은누가의병행구인10:25-27절에대해누가는마가의기록에대해
거부반응을나타냈으며슬기로로운대답을한유대인대신’선한사마리아인’의
유명한예화를통해고통당하는이웃을피해가는,전혀다른유대인을등장시키고
있다는것이다.
내용을살펴보면전혀틀린주장이아니라는것을알수있다.
누가가묘사하는유대인(율법교사)은
‘자기가옳다는것을드러내려고누가내이웃입니까’하고질문한다.
말하자면선한사마리아인이등장하는계기를제시하는것이며당시하나님앞에서
온전하다고자부하는유대인대신불가촉천민인사마리아인을통해유대인들의
위선을고발하고있다.
지금의신약학자들은마가와누가의서로다른입장들은그복음서를읽는독자들이
서로달랐기때문에생긴차이임을밝혀내고있다.

하나님을사랑하는것과이웃을자기몸처럼사랑하는것은유대교와기독교신앙의
핵심요체다.
그보다더큰계명은없다고했다.
이제누가가소개하는사마리아인을통해누가내이웃인지를살펴보자.
예루살렘에서여리고로내려가던사람이강도를만나가진것을다빼았기고거의
죽을지경으로맞아크게다쳤다.
이오래된두도시는그표고때문에실제로상당한경사면을가지고떨어져있고,
지금도이유명한내리막길은그대로남아있으며사람들이이용하고있다.
물을한짐지고아침에예루살렘을출발,여리고로가는길을따라걸어서늦은오후에
도착하면물은한방울도남기지않고다마셨는데도소변을보지않을만큼덥고
건조한길이다.
그러나그길은걷는감회는아주특별한것이다.

여리고는’달의성읍’이란뜻이며,
해면보다약240미터낮은열대성기후의오아시스다.
세계에서가장오래된도시이며여호수아에의해점령된후베냐민지파에게할당되었다.
지금은팔레스타인의관할구역이며맛좋은열대과일의집산지이기도하다.
이곳에서제철오랜지를먹을수있다면그건큰행운이다.
예루살렘은성경에나타나는도시들중제1의도시이며살렘,모리아,여부스,시온,
다윗성으로불리기도한다.
이스라엘인들은예루살렘을세계중심에선도시로생각했다.
여부스사람들이살던때다윗이이곳을점령했으며’하나님의궤’를옮겨성막을지었고
아들솔로몬이성전을지었다.
주후70년로마의10군단(티토의지휘)에의해파괴되었으며,
주후673년이슬람에의해점령,이후이곳은유대교,기독교,이슬람의성도가되었다.
예루살렘은3000년동안계속사람이살아온고대도시이기도하다.

누가의본문에는그강도만난사람의종족이나신분에대한기록이없다.
누구나,언제나당할수있는일이기때문이다.
누가의첫번째의도적인지적은,
제사장,레위인,즉정통유대인들은그강도만난사람을보고길의반대쪽으로
그를피해서지나갔다는것이다.
이는마가의기록에대한누가의가장구체적인거부의표현이다.
입으로쉐마를부르짖고가르치는그들이실제로는고통당하는이웃을외면한
위선을고발하고있는것이다.

본문에등장하는사마리아인에게있어그강도만난사람은생면부지의타인이다.
누가가전하려고하는내용의핵심이바로이점이다.
전혀,아무관계도없는,게다가가장불리한조건에있는타인에대한접근을통해
Shema가무엇인지를보여주려고하는것이다.
‘가엾은마음’은좁은의미의사랑이다.
더넓고큰의미의사랑은’관심’이다.
타인에대한관심이야말로이웃에대한가장기본이되는마음가짐이다.
사마리아인에게는우선타인에대한’관심’이살아있었던것이다.
상처에기름과포도주를붓고싸매는것은말하자면옛날식치료법이다.
우선깊은상처에대한응급처치를한것이다.
그리고는자기의나귀에태워여관에데려갔으며그를간호했다.
전혀알지도못하는사람을위해자발적으로자기것을내어돕고있는것이다.
쉐마의둘째뜻이그것이다.
조건없이,내가가진것으로이웃을구체적으로돕는,그의생명을구하는행위가
그것이다.

그사마리아인이나귀를타고여행했다는것은먼거리를오가는장사꾼일
가능성이크다.
일단위급한상태를수습한그는자기의일,여행을계속하기위해떠나기전
여관주인을만난다.
부상당한사람을위해필요한비용을그에게맡기면서환자를잘돌보아줄것을
부탁한후초과되는비용은돌아오는길에들려갚겠다고한다.
‘뒷처리’까지책임지는것은결코쉬운일이아니다.
그강도만난사람에대해끝까지도움을주겠다는의지가있기에가능한일이다.
예화를마치신주께서’내이웃이누구냐’고질문했던율법교사를향해,
‘자그러면이세사람(제사장,레위인,사마리아인)중에서강도를만난사람의이웃이
되어준사람은누구였다고생각하느냐’고물으셨다.
율법교사는’사랑을베푼사람’이라고대답한다.
그대답을들으신주께서는,
‘너도가서그렇게하라’고말씀하셨다.

이단락에서우리가주의깊게읽어야할대목은,
‘이웃이되어준사람’과’사랑을베풀었다’는부분이다.
타인에대해’이웃이되어주는일’은적극적이고자발적인행동이며그접촉의내용은
‘베푸는사랑-아가페’다.
선한사마리아사람의행동을통해설명된내용이그것이다.
이예화를통해짐작해볼수있는것은위선적인유대인에대한주님의생각은누가와
비슷한것이아니었을까하는것이다.
때때로주께서는격렬한말씀으로위선적인유대인들을질타하시지않았는가.

오늘을사는모든크리스챤들은,
‘이웃’을가질수있는조건과환경을상실하기쉬운사회적구조속에서살고있다.
이점이모든크리스챤들의진정한위기이기도하다.
이웃이없으면이웃이되어줄수없고,사람을베풀수있는기회도없게된다.
쉐마는하나님과이웃의사랑을신앙의핵심으로설명하고있다.
특히이웃이무엇인지배우지못하고이웃없이자라난세대에게이웃은처음부터없는
존재가될수도있다.
신앙생활에서이보다더한위험은없다.
사람이자기혼자살지않고여러사람들과함께사회공동체의삶을산다는것은반드시
다른사람들과의유,무형의관계속에산다는의미다.
종교가사회안에서기능하는부분은인간소외의극복과인간관계의회복,그리고
그인간들의긍정적인접촉을가능하게하는중차대한역할이다.
네이웃을네몸같이사랑하라는말씀의내용이바로그것이다.

이각박하고살벌하기까지한세상에서,
모든크리스챤은반드시생면부지의타인들에대해’관심’을가져야한다.
그것이아가페의첫걸음이며사랑의의무이기도하다.
‘그사람입장이돼본다’는말이그뜻이다.
넓은의미에서순수한마음으로가지는’관심’은가장기초적인이타적사랑이다.
다음은내가타인을위해지불해야하는모든것을감당하는신앙적자세가있어야한다.
‘손해’일수도있는사안들에대해오히려기쁘고감사하는마음으로그것을받아
들일수있어야한다.
그건,체험한사람들은다알고있는은밀한기쁨이며감사다.
이세상은그런기쁨과감사를주지못한다.
그래서그기쁨과감사는신비한체험이기도하다.
그런귀한체험을가진크리스챤들은이미’하나님의자녀들’이다.

우리크리스챤들은,
끝까지책임질줄아는성숙한인격이돼야한다.
약속,그이상까지도감내하는지혜와용기와실천력이있어야한다.
그래서세상사람들이우리를믿을수있어야,믿을수있는인격이돼야크리스챤이다.
이웃은,
우리가하나님앞에서온전해질수있는가장중요한조건이다.
이웃이없는신앙은불구의신앙이다.
이웃을사랑하는형태와방법은천차만별일수있다.
그러나그게진심이라면하나님은다아신다.
우리가믿는것이그하나님이아닌가.
어제까지무심히봤던사람이라도오늘부터는관심을가지고다시봐야한다.
그사람이바로내이웃이기때문이다.

내이웃을알아보고,관심하고,내것을내어주고,끝까지책임진다면우리가살고있는
이사회는분명히달라질수밖에없다.
땅위에서’예수그리스도의나라’가그것이다.
우리모두는그나라를위해부르심을받은’에클레시아-교회’가아닌가.
‘자,그러면이세사람중에서강도만난사람의이웃이되어준사람은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대답은벌서우리들마음속에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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