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델란드의역사가로서독자적인방법으로시야가넓은문화사를개척했다.
라이덴대학의교수와학장을역임했으며제2차대전시독일군에감금되어전쟁이
끝나기전에사망했다.
그는’중세의가을’에서토마스아켐피스에대해이렇게쓰고있다.
‘수세기에걸쳐수많은영혼들을위로했을한권의책,’그리스도를본받아’.
이책을쓴토마스아켐피스는부드럽고고독한사람이었다.
그는설교가들처럼교회정치와사교계의생활에분노로흥분하지않았다.
그는모든일에서평화를추구했다.
책과더불어은거지에서그것을발견했다.
‘고독속에앉아침묵한채하나님과이야기하는것은얼마나유익하며얼마나쾌적하며
달콤한가!.
이책은특정문화와특정시대에국한되지않는다.
거기에서그의2000판에걸친발행부수가생겨난다.
‘알려지지않기를좋아하라.’
토마스가이말을했던것은결코헛말이아니었다.’
상대적인비교이기는하지만크리스챤중에는’그리스도를본받아’를읽은사람과
그런책이있는줄도모르는사람이있다.
이책을읽었다고해서구원받았다는뜻은아니다.
그러나믿음의질(質)에서는차이가날수밖에없다.
토마스아켐피스(Thomasakempis-1380경-1471)는독일의신비주의사상가로
분류된다.
그의본명은토마스헤메르켄(ThomasHemerken).
라인강변의퀼른근처켐펜의가난한집에서태어났다.
형과함께데벤터에있는공동생활형제회학교에들어가신비주의운동가라데빈스
(F.Radewyns)에게배웠다.
1399년아우그스티누스수도회에들어갔는데형이그수도원공동설립자겸수도원장
이기도했다.
1406년그는수도서원을했고사제서품을받았다.
그는평생을수도원에서지냈으며설교와저작으로생애를마쳤다.
기독교의입문서로꼽히는’그리스도를본받아’는처음에라틴어로쓰여졌으며
1447년불어판이나온후전세계방언으로번역되어신,구교를막론하고지금까지
널리읽히는책이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1923년이원모의번역으로’긔독성범’이라는책으로조선예수교
서회가발행한게처음이다.
‘그리스도를본받아’는,
그리스도를본받는엄격한금욕생활과세속으로부터의이탈을권하고신앙에대한
내적충실을주장한다.
책은4부로되어있으며,
1부.영적생활의유익한훈계.
2부.물질보다영적인것에관심을가지라는훈계.
3부.그리스도중심생활에서오는영적위로.
4부.성만찬을통한신앙발전으로구성되어있다.
15세기에라틴어로쓰여진책이지금까지읽혀지고있다는것은그책이가지고있는
내용-생명력때문이다.
전세계거의모든방언으로계속번역되어출판되는것은사람들이그책을찾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본받아’는그런책이다.
호이징가의기록대로이책의핵심은,
‘고독속에홀로앉아침묵한채하나님과이야기하는것은유익하고쾌적하고달콤한’
것이다.
‘알려지기를좋아하지말라’는켐피스의말이그뜻이다.
이말은직접그런경지를체험한사람이아니고는할수없으며’그리스도를본받아’가
아직까지사람들에게읽혀지는이유이기도하다.
하나님과대화하기위해서는인간쪽에서해야하는필수적인준비가있다.
그첫번째가’침묵’이다.
내가말하려는것이아니라하나님의말씀을들으려는자세가그러하다.
하나님의말씀은너무나세미하기때문에조용한곳에서의침묵없이는들을수가없다.
다음은조용한환경을만드는일이다.
요가,템풀스테이,피정이모두그런형식들이다.
그것을소홀히하면안된다.
각종인간적인이벤트로가득찬예배당안에서는이미찾을수없는소중한조건이다.
소음에중독된교회가잃어버린값진유산이그것이다.
또한가지는말씀을담고,깨달을수있는’겸손의그릇’을준비해야한다.
하나님이주시는영의말씀을세상의잣대로재단하면안된다.
그래서세속으로부터의이탈이라는요구가생긴것이다.
어떤여류시인한분이이런글을썼다.
‘지금우리사회는어디를가든요란한음악으로가득차있다.
가정도,식당도,카페도,버스안에도,심지어병원의병실까지도그음악-소리-소음으로
가득차있다.그건음악(音樂)이아니라악음(惡音)이다.’
밤이고낮이고조용한곳이없다.
그리고모두가소음에중독되어오히려조용해지면불안해서어쩔줄모른다.
병이깊다는증거다.
종교는,신앙생활은,조용함을필수적인조건으로한다.
그래서종교와명상은뗄수없는관계다.
침묵은영성생활의도입부다.먼저그게이루어져야한다.
소란과소음속에영성의세계는존재할수없다.
정산적인상태라면,
조용한곳,자기혼자침묵하는곳에서인간은정직해진다.
자기자신에대해그리고하나님앞에서정직해진다.
이런순간을체험한분들은이게무슨소린지다알고있다.
그러나그런순간을체험해보지못한사람들은말귀를알아듣지못한다.
사람이정직해지면하나님이들어주시는기도를드릴수가있고그분이하시는말씀을
들을수가있다.
토마스아켐피스가설명한내용이그것이다.
그는그런순간들을수없이체험했고그게얼마나놀라운세계인가를책으로쓴것이다.
‘그리스도를본받아’는그래서다시한번주신묵시록같은책이다.
이세상에2000판을거듭한책은성경을빼고는그책밖에없다.
신앙생활을하는모든이들에게가장두려운것이소음에중독되는것이다.
소음에중독되면명상과침묵의세계를영원히상실한다.
현대인의삶의방식은어쩔수없이소음을동반한다.
결국그소음을차단하는길은자기의지의문제로남는다.
뜻이있는곳에길이있기때문이다.
소음이들리지않고,
소음이무엇인지모르고,
소음으로부터자유하려는의지가없다면이미영적으로는죽은사람이다.
화려하게차려입은몸만교회를오가고있을뿐이다.
토마스아켐피스가우리에게증언하는핵심은침묵속에서,가장조용한환경속에서
하나님과대면하라는것이다.
‘그러므로우리가긍휼하심을받고때를따라돕는은혜를얻기위하여
은혜의보좌앞에담대히나아갈것이라.’히브리4:16.개역.
우리를찾으시는하나님에게인격적으로응답하는것,그분에게나아가는것이신앙이다.
토마스아켐피스는그응답의방법을자기가체험한대로우리들에게알려주고있다.
구원은아무도대신해주지못하는절대적이문제다.
혈육이라해도불가능하다.
그것은전적으로자기자신의문제이며자기가스스로이루어야하는일이다.
‘자기실존’의문제이기때문이다.
오직혼자,절대자앞에나서는일이다.
그분앞에서는세상에서내가가지고있던어떤고리도전혀의미가없다.
그래서’침묵’이요구되는것이다.
모든것을벗어버리고침묵속에서정직하게서있는자기자녀들을긍휼히여기시는분이
그분이시다.
토마스아켐피스는말한다.
‘알려지지않기를좋아하라.’
세상에대해숨는것이하나님에게발견되는길이라는자기체험을들려주는것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