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ama-티끌과 먼지.
말-언어는사상이다.
그래서말은생각이다.
기록된말,언어가중요한것은말을기록한글자안에먼저시대를살았던사람들의
사상-생각이들어있기때문이다.
글자가있기전의모든시대-시간은그래서구체적으로존재하기에는부족한점이
많다.역사이전시대인것이다.
고고학이더듬어가는것은글자가아니라자연에남겨진그시대들의부스러기를찾는
작업이다.
인류가가지고있는글자들은그렇게소중한것이고그글자들로기록된내용은어떤
유산보다더값진것이다.

사람에대한말중에서가장극단적이면서도큰폭의의미를가지는말이’죽음’에
대한것이다.
표현도다양하지만년령에따라달라지는표현양식은문화적이기까기하다.
가장일반적으로쓰이는높임말은’돌아가셨다’이다.
돌아가셨다,왔던곳으로다시갔다는뜻이다.
그렇다면한인간이왔던곳으로돌아간다음남겨진것은무엇인가.
그게시신(屍身)이다.
송장이라고도불리는데그때부터그몸뚱이=육(肉)은구(具)로계수된다.
혼백이떠난물건이된것이다.
그구(具)가가는곳은땅속이다.
그걸매장(埋葬)이라고하는데흙으로돌아가기때문이다.

창세기2장7절은,
인간존재가땅위에나타나는시작을기록하고있다.
‘여호와하나님이흙으로사람을지으시고생기를그코에불어넣으시니사람이
생령이된지라.’개역.
본문에서’흙’으로번역된히브리어는adama,즉먼지와티끌이라는뜻이다.
하나님이아다마로빚어지으신인간의모습은어떤것일까.
1장27절에그답이있다.
‘하나님이자기형상,곧하나님의형상대로사람을창조하시되남자와여자를
창조하시고….’개역.
여기서형상은image다.
인간에게하나님과교통,교감할수있는하나님의부분이주어진것이다.
신앙을가진자가그분을’아버지하나님’이라고부를수있는근거가거기에있다.
그주체(主體),
하나님과교통하는생령이떠나면남는것은adama-먼지,티끌이다.

이기록은히브리인들이이해한인간에대한생각-사상이다.
우리식으로표현하면’흙으로돌아가는인생’인것이다.
개똥밭에굴러도이승이좋다는표현은그만큼저승은나쁘다는의미다.
정상적인사람이라면죽음을좋아할리가만무하다.
‘목숨만은살려달라.’는게그얘기다.
인간이종교를가진다는것은,
자기의근본이먼지-티끌임을인정하는것이고똑같이하나님에게돌아가는자기가
있다는것을깨닫고믿는것이다.
먼지와티끌은흙이되어세상에남지만그분이생기를불어넣어만드신생령은
그분에게로돌아간다.
바울사도께서는그생명을’영의몸-somapneumatikon’이라고표현했다.

자기가하나님의자녀임을믿는사람에게는땅위에서의’몸-육체’는두고떠나야
하는하나의구(具)가된다.
때문에그구(具)에집착하는생활은비신앙적이다.
자기의구원을묻는부자청년을향해
‘네가가진것을다팔아가난한자들에게나누어주고그후에나를따르라’는
말씀은바로그구(具)에대한접착을끊어버리라는의미가아니겠는가.
이세상에서건전하고검소하게신앙을가지고사는것과세상을탐(貪)하는것의
차이는그래서근원적인것이다.
구(具)를위해사는사람들은adama-먼지,티끌로끝나게된다.
그것은하나님에게돌아가야할생령이구(具)안에갇혀있기때문이다.
성경은그상태를죄(罪)라고규정한다.
하나님에대해적대적인세력-악(惡)이그구(具)를장악하고있기때문이다.

종교를가진사람이이문제에대해생각할줄모른다면그건온전한신앙이아니다.
고등종교와미신이갈라지는기준도여기에있다.
모든미신은탐(貪)을위해존재하는양식(樣式)이며인간이원하는것을얻기위한
수단이다.
때문에미신에는’사랑’이없다.
산사람을죽여바치는잔인함까지있다.
따라서고등종교가가장크게훼손되고변질되는것은미신적인요소가그안에
들어오는경우다.
한번미신화되면걷잡지못하는게그런사례들이다.
그러나미신은구(具)로끝난다.
그게샤마니즘의한계다.
그안에는인간을구원하는기능이없다.
모든미신에’경전’이없는이유가그것이다.
처음부터주어진’말씀’이없기때문이다.

한인간이진정으로자기가adama-먼지,티끌임을알고인정한다면그삶의방법이
달라지는것은필연적이다.
성경은그것을’거듭난생활’이라고했다.
한번난상태가구(具)의생활이라면거듭난생활은그구(具)를극복한삶이다.
영성의세계가그것이다.
종교를가졌다해도보통사람이수사(修士)나스님들처럼살수는없다.
그러나종교가없는사람들과는분명히다르게살아야하고살수있어야한다.
적어도거기에서는근본적인차이를확실히하고살아야한다.
가장대표적인차별성이무엇일까.
그건탐(貪)의차이다.
세상것에대한집착에서아주분명한차이를보일수있어야한다.
정상적인욕심은발전을가져오지만탐욕은파멸을부른다는사실을깨닫고사는게
그런삶이다.
많은종교의서로다른창시자들이지만그들의가르침에는아주큰공통점이있다.
그것은’탐욕을버리라’는가르침이다.

현대인들은모두가똑같이물신(物神)의시대를살고있다.
황금만능주의가그것이며물량주의가그것이다.
소비가미덕이고소유가행복인줄아는시대가지금이다.
세상풍조를비켜서기는결코쉬운일이아니다.
거기에는그렇게할수있는자기확신이아주분명해야가능하다.
평생살림을해온주부한분이이런말을했다.
‘가지고있는그릇도다쓰지못하고죽을텐데새그릇은왜사.’
그래도또새그릇을사는게우리들이다.
탐(貪)은그렇게무섭다.
빌립보교회가바울사도에게보낸선물에대해그는감사의글을남기고있다.
‘내처지가어려워서이런말을하는것은아닙니다.
나는어떤처지에서도자족(自足)하는법을배웠읍니다.
비천하게살줄도알고풍족하게살줄도압니다.
배부르거나배고프거나넉넉하거나궁핍하거나그어떤경우에도적응할수있는
비결을알고있읍니다.’빌립보4;11-12.공동.

바울사도의말씀은,구(具)의탐욕을극복한삶의모습이다.
사도께서가졌던그비결은무엇일까.
아마도그것은세상을초월하는힘이었을것이다.
그능력은자기가adama인것을아는자만이가질수있는비밀이기도하다.
사도의그놀라운능력은믿음에서비롯되었음은더말할것도없다.
그리스도를만난자의삶이그러하다.
우리가이세상에서자족(自足)할줄모르고온갖것을탐하는것은결국그탐을
극복할수있는믿음이없기때문이다.
사실다른이유는하나도없다.
자기신앙을자기가평가할수있는방법은하나뿐이다.
지금자기가무엇에집착하고있는가를묻도정직하게대답할수있다면가능하다.
그게정답이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