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김치.
영화’선생김봉두’를보면,
봉투좋아하다시골분교로좌천된김봉두선생이혼자서라면을끓여먹는데옆에있는
제자에게먹던라면그릇을밀어놓으면서하는말이있다.
‘난죽어도김치없인라면못먹겠다.’
어찌라면뿐이겠는가.
우리의주식인밥은김치없이는먹을수가없는음식이다.
아주가난하게살던시절,
추운겨울을지내려면세가지준비가필수적이었다.
쌀,김치,연탄이그것이다.
이세가지만제대로장만해놓으면정말다리를뻗고살았다.

예전에는김치를지(漬)라고불렀다.
짠지,묵은지할때지가그것이다.
17세기의요리책인주방문(酒方文)에보면김치를침채(沈菜)라고했으며
침채가’딤채’로변했고이것이다시구개음화되어’짐채’가되었고김채,김치가
된것이다.
결국김치란’담근다’는뜻의동명사(動名詞)인셈이다.
처음의김치는재래종배추를소금에절인형태였으며나중에고추의유입에따라
오늘의김치가되었다.
17세기말엽까지는김치에는전혀고추를쓰지않았으며소금에절인김치와동침
(동치미)이있었다.
고추는18세기에서부터김치에사용하기시작했는데소금의품귀현상으로그
대체품으로쓰이기시작,고추소비가촉진된것이다.
한편지금우리가먹고있는배추김치는개량배추를재배하기시작한근대의일이며
그이전에는지금과같은배추김치는없었다.
이제김치는우리뿐만이아니라외국에수출까지하고있는세계적인식품이되었다.
야채에대한저장방법은물론그높은영양가가제대로평가됐기때문이다.

김치에관한한,
나처럼여러집에서담근여러가지김치를맛본사람도드물것이다.
배추김치,물김치,갓김치,오이소박이.깎두기,열무김치,백김치,총각김치등
그종류도다양하다.
그건전적으로아내의덕이다.
참으로알다모를일은,
아내와사귀는대부분의주부들은자기들이담근김치를아내에게나누어준다.
-집은김치담글줄모를거야그렇지?
-그림을그리시는선생님이어떻게제대로김치를담그겠어.
-그림만잘그리면되지김치까지잘담그면어떻게해.
-김치담궈본일없으시지?
말하자면그분들의눈에는아내는김치와는인연이없는여자로보인다는얘기다.
그누구에게도김치를달라는말을해본일이없는데도그들은아내에게김치를
나누어주고싶어한다.

사실아내는결혼후두아이를기르는동안손수김치를만들었으며김장김치도
스스로담궜다.
김치와인연이없는주부가아니라오랫동안김치를만든주부다.
그런데도사람들은아내에게김치를주고싶어하고김치와는인연이없는여자로
보는것은정말알수없는일이다.
왜그들은아내를그렇게보는것일까.
왜아내는김치를못담그는여자로보이는것일까.
본인도나도그설명은할수가없다.
한때우리부부는공사장인부들이식사하는소위’함바’에자주갔었다.
‘맛있는밥집’이라는소박한간판을보고한번들어가본것인데컨테이너하우스의
그간이식당은음식맛은최고였다.
식당을경영하는아주머니의음식솜씨가그랬다.
백반한상에4.000원,
밥값이문제가아니라음식맛때문에거의2년을드나들었다.
얼마전그식당은문을닫았고그후우리는식당을경영하던아주머니의집을찾아가
맛있는점심까지얻어먹었다.
그며칠후,아주머니에게서전화가왔다.
‘물김치를해놓고전화할테니가지러오라’는것이다.
이미전에도서너번맛좋은물김치를해줘서잘먹은일이있다.
그런데다시그물김치를가져가라는전갈이다.

우리가걷기운동을하는수로길옆에아주오래된옛집한채가있고거기엔주변밭들을
정갈하게가꾸는할머니한분이혼자살고있다.
지나다니면서자연스레인사를나누게됐고할머니가농사지은몇가지콩과고추가루를
사면서더친해졌다.
그런데그생면부지의할머니도아내에게김치를주는것이아닌가.
그김치는이제는쉽게맛볼수없는옛시골의구수한,그러나정갈한김치였다.
뿐만아니라김장김치도자기와같이장만하자고제안했다.
자기밭의배추와무우로담근다는것이다.
-두사람먹을것이니한열포기하면되겠지.
아내는한술더뜬다.
-할머니,우리집엔김장김치둘곳이없으니할머니네독에함께묻어두고필요할때
조금씩꺼내갈께요.
이번가을의김장걱정은끝난것이고땅에묻은독까지예약됐으니겨울내내싱싱한
시골김치를먹게된것이다.
김치가아내를따라다니는것인지,아내가김치를따라다니는것인지도무지갈피를
잡을수가없다.
심지어는동창회에참석한아내에게까지친구들이김치를싸주는것은물론어떤
동창은자기가담근김치를들고우리집까지오기도한다.

그게어느곳이든,
만나는사람이누구든조금만친해지면김치를주고싶어하니미상불보통일은아니다.
김치를잘담그는주부들이아내에게김치를주고싶어하는데는몇가지이유가있을
것이다.
그하나가아내가다른사람들에게주는인상때문일것이다.
아내는체구가아담하게작고게다가동안(童顔)이다.
또성격이명랑하고친화적이기때문에쉽게친해질수있고풍기는분위기가전업주부가
아닌것처럼보인다는점이다.
그래서그들은김치도담글줄모르는아내에게측은지심(惻隱之心-측은히여기는마음)
을발휘,자기들의김치를나누어주는것이다.
다른하나는아내가화가이기에가지는푸리미엄이다.
그림그리기도바쁜데언제김치까지담그겠는가.
그림만열심히잘그리면되고김치는우리가해주겠다는뜻도있을것이다.
그모두가선의(善意)임은말할것도없다.

그런데,
사실아내는김치를거의먹지않는다.
별로좋아하지않기때문이다.
그러니김치덕을보는것은김치가없으면밥을못먹는내차지다.
처복(妻福)이라는말이있지않는가.
앞으로도사람들은불쌍한아내에게측은지심을발휘,계속김치를줄것이다.
이런처복이쉽겠는가.
그래서나는김치예찬론자다.
김치여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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