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호이징가가쓴’중세의가을’에이런내용이있다.
‘교회의종소리가사람들의모든일상을지배했다.’
교회의종소리는그당시시계이자하늘의소리였다.
지금유럽지역에남아있는민간축제의대부분은본래교회력에근거를두고있는종교적
행사들이었다.
말하자면중세는교회가그중심에있는기독교의전제시대였다.
때문에문화사에서는그때를오히려’암흑시대’라고부른다.
인간의이성(理性)이설자리가없었던것이다.

그렇다면기독교의초기,우리가보통초대교회라고부르는그때의교회는어떤모습으로
어떤위치에있었을까.
하나의예로사도행전17장을주의깊게읽어보면당시(주후1세기)아테네의우상숭배가
어느정도였는지알수있다.
아레오파고에서아테네사람들을향해연설한바울의얘기를들어보자.
‘아테네시민여러분,
내가보기에여러분은여러모로강한신앙심을가지고계십니다.
내가아테네시를돌아다니며여러분이예배하는곳을살펴보았더니’알지못하는신에게’
라고새겨진제단까지있었읍니다.’17:22-23.공동.

‘알지못하는신’은,
자기들이미처알아내지못한우상에대한담보인것이다.
과학이전의모든시대에서사람들이수도없는우상을섬긴것은동서양에다름이없다.
사우디아라비아의서쪽,
헤자즈지방의주도(州都)가’메카-Mecca’다.
전세계의모든이슬람모스크는반드시메카를향하도록건축되고모든무슬림은메카를
향해하루다섯번기도한다.
그메카에있는이슬람의신전이’카바-Kaba-정방형이란뜻’이다.
그리고모든무슬림의신앙고백은’알라외에다른신은없도다’이다.
그러나예언자무함마드가태어나기이전,
메카의초라한카바안과그주변에는360개의우상이섬겨지고있었다.
카바안에는성모마리아와예수의상(像)도들어있었다.

기독교의초기교회도상황은다르지않았다.
유대교분파의새종교는기존의우상숭배종교세력들로부터배척과탄압을받았으며
제국로마의입장도다르지않았다.
선교여행에서바울이겪었던모든고초와고통은그것만으로도초대교회의형편을
알기에충분하다.
‘나는그들보다수고를더많이했고
감옥에도더많이갇혔고매도수없이맞았고죽을뻔한일도여러번있었읍니다.
유다인들에게사십에하나를감한매를다섯번이나맞았고몽둥이로맞은것이세번,
파선을당한것이세번이고,밤낮하루를꼬박바다에서표류한일도있었읍니다.
자주여행을하면서강물의위험,강도의위험,광야의위험,바다의위험,가짜교우의
위험을다겪었읍니다.
그리고노동과고역에시달렸고수없는밤을뜬눈으로세웠고주리고목말랐으며
여러번굶고추위에떨며헐벗은일도있었읍니다.
이런일을제쳐놓고라도나는매일같이여러교회들에대한걱정에짓눌려서고통을
당하고있읍니다.’고린도후서11:23-28.공동.

복음이걸었던가시밭길이그랬다.
한가지생각해야하는것은,
이모든고초와고통도바울을멈추게할수는없었다는점이다.
박해속의교회는더단단해졌으며그내용을다져나갔다.
예수의가르침은이시기를통해수집되고,정리되고,해석되고,가르쳐졌다.
외부의탄압과압박은교회를더뚜렸한형태로발전하게했으며더분명한
자기정체성을가지게했다.

중세의교회를가장명료하게설명하는사건이1517년부터시작된’종교개혁’이다.
로마카톨릭교회의면죄부(免罪符-신자에게죄를사하는대가로금품을받고발행한
증명서)와성직매매는교회가부패한정도를말해주는것이며
11세기말에서13세기에걸쳐치러진8번의십자군전쟁은교권(敎權)이세속화된
수준을알게해준다.
그어리석은전쟁의후유증은너무나큰것이었으며아직까지도이슬람과기독교
사이에보이지않는담으로남아있을정도다.

이탈리아피사태생의물리학자이며천문학자인갈리레오갈릴레이(1564-1642)의
지동설(地動設)은1616년교황청에의해금지되었으며그가쓴책’천문대화’의
간행은종교재판으로발전,그를피렌체교외에연금하기까지했다.
인간의이성과과학이종교에의해단죄된것도중세교회의전제성을알게해준다.
정말교회의종소리는사람들의모든일상뿐아니라생각까지도지배했던것이다.

20세기는,
인간이그이성(理性)으로성경에접근한시대다.
그것은르네쌍스의영향이었으며과학시대를사는인간들의요청이기도했다.
대표적인신학의방법이성경의비신화화(非神話化)다.
독일의신학자불트만의실존적신약해석방법론이그것인바,
신약의기록들이,
과학이전시대의사람들에의해기록된것임으로과학과이성의시대를사는현대인들
에게는이해하기어려운것이다.
특히케리그마에접근하기가어렵다.
때문에신약성경의신화적인표현과형식을제거,비신화화해야한다는학문적인
주장이그것이다.
다른하나는,
1968년콜롬비아의메덜린에서개최된제2차라틴아메리카주교회의에서구체화된
‘해방신학’으로서,
하나님은억압받는자들과함께계시고고난받는자들의해방을위해함께투쟁하고
계심을선언했으며,
지금의구조악에서인간을해방하는것이예수그리스도의사역임을주장한다.
‘검은그리스도’가그상징이라할수있다.
우리의경우,
1970년대중반,군사독재정권하에서의인권운동과맞물려형성되고발전된
‘민중신학’은한국인신학자들에의한’한국의신학’이라는특징을가진다.
민중신학은역사중심적서술방식이며신학적사변의결과가아니라그리스도의
십자가고난을민중운동의정신으로파악하는실천이론이라고볼수있다.

비신화하도,해방신학도,민중신학도사람이중심이되어성경을해석한다는동일한
입장을가지고있다.
성경이중심이되어사람을해석하던시대와는정반대의상황이된것이다.
21세기인지금,
한국의개신교회에는’종소리’가없다.
성급하고무분별하게대체한’차임벨’이소음으로규정,폐지된후’종소리’를복원하지
못했기때문이다.
이제성경과신앙은’인간의소도구’로변해가고있는중이다.
읽혀지고연구되는성경이아니라성경이가지는경전으로서의종교적위치와가치를
자기성취의유용한도구로사용하는것이다.
따라서그요구에부응하는성경귀절들을골라집중적으로활용한다.
‘삼박자축복’이그하나의사례다.

초대교회도,중세교회도,근대의교회도그신앙의중심은성경에있었다.
성경에대한해석의방법에서차이를보이고그차이를극복하지못해갈라서기까지
했어도그중심에는언제나성경이있었다.
그러나지금은성경의자리에사람이있는시대다.
이제성경은기복(祈福)의도구로전락해가고있다.
교회는인간이요구하고탐하는복을나누어주는배급소가되고있고그물량화는
결정적인내용의변질로이어졌다
그렇다면내일의교회는어떤것일까.
한가지확실한것은’그리스도없는기독교’가되는것이다.
세계2차대전당시에이미신학자들이예고한그대로다.
지금같은변질이계속되면그마지막은하나밖에없다.
간판만교회일뿐교회가아닌교회가되는것이다.
이미강단은스테이지로바뀌고있고그위에서는비트음악이경건한종교음악을대체
하고있다.
‘경건’이사라지면그건이미예배가아니다.
종교는경건하기때문에종교다.

교회의어제와오늘,그리고내일을조망해보는것은,
지금의’자리’를제대로보기위한방법이다.
산을내려오다길을잃으면다시꼭대기로올라가는이치와같은것이다.
역사의기능이그것이며교회사도예외는아니다.
지금의자리가제대로만파악된다면,그리고그것을정직한마음으로인정하고
회개한다면구원의길은언제나열려있다.
문제는,
지금그누구도이역사적맥락에서의지금의위치에대해제대로인식하지못하고
있다는데있다.
역사는,교회사도마찬가지지만아날로그의양식(樣式)이다.
때문에디지털화한인간은그양식을읽어내지못한다.
역사문맹(歷史文盲)이그것이다.

문화사적으로는종교도문화의산물인만큼한시대생활문화의영향을받지않을수가
없다.
군대식의총동원주일,
지극히세속적인황금만능주의와기복신앙,
천민자본주의의천박성과그물량주의,
자기밖에모르는배타적인이기주의와이웃이없는신앙,
온갖새치기들과그미신화.
이모든부정적요인에대해그것을정화해야할교회가그기능상실로역세속화된것이
오늘의현주소다.

‘내가율법이나선지자나폐하러온줄로생각하지말라.
폐하러온것이아니오완전하게하려함이로라.
진실로너희에게이르노니천지가없어지기전에는율법의일점일획이라도반드시
없어지지아니하고다이루리가.’마태5:17-18.개역.
교회사를공부해보면모든시대에는언제나두개의줄기가흐르고있다.
하나는하나님의줄기,다른하나는인간의줄기다.
참된교회옆에는늘거짓교회가있었다.
2000년교회사를통해명멸한온갖사이비와이단이그것들이다.
똑같이오늘여기에서도,
그리스도의참된교회는언제나그문을우리앞에열어놓고있다.
하나님의말씀이이루어지기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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