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惡) 의 모습.
얼마전할인매장의주차장에서있었던일이다.
마침주말이라빈자리가없어몇바퀴를돌다가막빠져나가는차를발견,그빈자리에
주차하려고하는순간잽싸게우리차를앞지른차가급정거를한후급하게후진,그
자리에들어가버리는것이다.
접촉사고가날정도로아주위험했고새치기와끼어들기를합한그행동이놀라왔다.
나는차를약간앞으로몰아그차앞에세운후운전석을살펴봤다.
아주젊은여자였는데그얼굴에는미안해하는표정은전혀없었다.
오히려나를쳐다보는그눈은흡사독사의눈처럼차가왔고그독한시선은유리창도
뚫을수있을정도였다.
그건지금까지도지워지지않는악의모습이었다.
아내의얘기로는그런일은이제흔한편이고거의대부분젊은여자들이그렇다는것이다.
정말무서운세상이다.
나는지금도그때의일을생각하면마음의상처가아파온다.
사람이그렇게살아서는안되기때문이다.
그악은,사실은그당사자까지도망치는무서운힘이다.

악(惡)은선(善)과함께신비에속한다는것이지금까지연구된학문적결론이다.
결국인간은선과함께악에대해서도그궁극적인대답을할수없다는의미다.
악(惡)의사전적의미는,
바르지못하고착하지않음이다.
양심을쫒지않고도덕을어기는일도포함된다.
한편한자(漢字)의惡은두마음을품는것,처음에가졌던마음이변한것이다.
한편신학적(神學的)인설명은,
악은선에대립되는개념이다.
선은착하고올바른것이며도덕적생활의최고이상(最高理想)이기도하다.
악은인간의생명과삶에직,간접적으로화(禍)와해(害)를주는유,무형의부정적
실재들을통칭해서부르는이름이다.
성경은그악이인간의타락에서시작되었다고설명한다.
타락(墮落)이무엇인가.
유혹에넘어가나쁜길로빠지는것이다.
뱀의유혹과선악과(善惡果)의에피소드는놀라운유비(類比)가아닐수없다.

감옥에갇혀있는수인(囚人)에는두가지가있다.
그하나가확신범(確信犯)이다.
일본의입장에서안중근은살인범이다.
그러나우리의입장에서안중근은의사(義士)다.
그는조국의독립을위한자기의행동에대해그것이정당하다는신념을가지고
있었으며그의연한태도는사형이집행되는순간까지가까이에서그를지켜본
일본인들을감동시켰다.
안중근은살인에대해서는죄인이지만,결코악한인간이아닌,악과는무관한
확신범인것이다.

여기에비해대다수의수인들은파렴치범(破廉恥犯)들이다.
강도,사기,공갈,횡령,강간,마약거래등의비도덕적인범죄를저지른악한인간들이
그들이다.
파렴치범들의공통된특징은그들대부분이회개하지않는점이다.
출소후의재범율을보면알수있는일이다.
악이다시악을부르는악순환이그것이다.
인간이악하다는것,
우리의이웃에악한인간이함께살고있다는것,
그리고우리들이그악때문에깊은상처를입을수있다는것은그모두가설명하기
어려운슬프고어두운일상들이다.

인간은그근본에서악한존재인가아니면선한존재인가.
이질문에대한대표적인논쟁이성선설(性善說)과성악설(性惡說)이다.
먼저성선설은인간의본성은선하다고하는주장으로서맹자(孟子)가공자(孔子)의
길을밝히기위해그근거를인격(人格)에두고한말이다.
인간에게는악을부끄럽게여기는마음이있다.
따라서인간의본성은선이고악은그본성인선이욕망때문에가려저서생긴다는
주장이다.
이에비해성악설은인간의본성은악하다는주장이며순자(筍子)가맹자의성선설을
반박한설이다.
인간의타고난능력에는성(性)과위(僞)가있는데성은천성이어서인간의힘으로는
변화시키지못하는능력이고위는노력과학습으로향상시킬수있는능력이다.
인간이성에따라행동하면악이되고위에따르면사회에평화를이룰수있는것임으로
인간의성은악이고위는선이라는설명이다.

‘그러므로내가한법을깨달았노니선을행하기원하는나에게악이함께있는것이로다.
내속사람으로는하나님의법을즐거워하되내지체속에는한다른법이내마음의법과
싸워내지체속에있는죄의법아래로나를사로잡아오는것을보는도다.
오호라나는곤고한사람이로다이사망의몸에서누가나를건져내랴.’롬7:21-24.개역.
바울사도의이장탄식은인간과선악의문제에대한하나의대표적인설명이될것이다.
기독교신앙에서인간은’구원’의대상이다.
즉죄에갇혀있다는전제다.
거의모든죄는악한속성을가지기때문에하나님앞에서의인간은반드시구원받아야
하는존재가된다.
악에대한성경의말씀은단호하다.
‘범사에헤아려좋은것을취하고악은모든모양이라도버리라.’살전5:22.개역.
악과의접촉자체를차단하라는이강력한표현은악이인간에게미치는나쁜영향이
얼마나큰것인가를알게해준다.
젊은여자의아름다워야할눈이독사의무서운눈으로변할수있는게악의힘이다.

성경의실락원(失樂園)이야기는,
선하게창조된인간이악에오염되는경위를설명하고있다.
말하자면성경이설명하는인간은선과악을함께가지고있는존재가되었으며환경과
조건에따라선한인간일수도,악한인간일수도있다는풀이다.
바울사도의장탄식이바로그얘기다.
천사와악마의두얼굴을함께가지고있는것이땅위에살고있는인간의모습이다.
이제성경이묘사하고있는악한인간의모습을보자.
‘그러나악한사람들은,
아무도손으로움켜쥘수없는가시덤불같아서쇠꼬챙이나창자루가없이는만질수도
없는것,불에살라태울수밖에없는것들이다.’삼하23:6-7.표준새번역.
정상적으로는접근조차할수없는가시덤불,
인간적접촉자체가안되는대상이다.
팔레스타인에는이런가시덤불이흔하다.
때문에농사를시작하기전미리불태워그재를비료로쓰기도한다.
가장무가치한,농사에는장애만되는,그래서불에태워없애야하는존재가바로
악한인간인것이다.

이웃과더불어일상을사는우리들은그이웃에게어떤모습으로보이고있을까.
우리모두는이웃의눈을통해하나님의평가를받게될것이다.
믿음의생활은하나님과이웃을사랑하는것이기때문이다.
‘사랑엔거짓이없나니악을미워하고선에속하라.’롬12:9.개역.
악을미워하는가장큰길이내가악하게되지않는것이다.
그리고선에속한다는것은내가이웃에게선한사람으로평가받는것이다.
나는지금도할인점주차장에서겪었던일을생각하면마음의상처가도진다.
어떻게젊은여자가그렇게까지포악해질수있는것일까.
사람을나쁘게기억하는것이아니라’악’의모습을똑똑히기억하고있는것이다.
어떤인간이라해도악에잡히면그런모습이될것이다.
선한모습도,악한모습도모두가우리들의의지적인선택이다.
따라서그결과에대해서도우리스스로가책임을지게된다.
악은그모양이라도버리고선에속하라는말씀은그래서우리를구원하는말씀이다.
선에속하기위해서는무엇이선한것인지를분명하게알아야한다.
착하고올바른것이선이며예수의마음을닮고그가르치심대로사는것이다.
그리고그선은반드시이웃과의관계에서나타나야하는선이다.

우리들이남들과더불어살고있는오늘에서
제일무섭고두려운존재가바로인간들이다.
각박하고살벌하기까지하다.
팽배한물질주의와이기적인행동양식은사람과사람사이의모든인간적관계를갈기
갈기찢어놓고있다.
아주작은빛이라도어두움이짙을땐크게빛나는법이다.
지금은이어두움을쫒아내는작은빛들이절실하게요청되는시대다.
그작은빛들이선을지향하는크리스챤들이다.
‘너희는세상의빛이라.’
주께서주신이말씀의깊은뜻을깨닫고실천하는것이오늘우리들의책무가
아니겠는가.
악을악으로갚지않고선으로이기는길이그길이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