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못말려.
외출했다가비가오는경우,
가지고나간우산과입고있는옷의색깔이맞지않으면그냥비를맞는쪽을택하는게
아내다.
아내에게있어색깔의조화는아름다움이상의의미를가진다.
외출할때아내는,
현관신발장설합들에가득넣어둔손수건,장갑,시계중자기가입고있는옷과가장
어울리는것을골라착용한다.
때로는여기에모자와머플러까지포함된다.
잠시음식쓰레기를버리러나갈때도집에서입는옷차림그대로나가는법이없다.
가볍지만,완전한조화를이루는날렵한복장으로나간다.
그매치(match)가타의추종을불허하는수준임을나는인정한다.
아내가화가여서가아니라타고난색감이있기에가능한일이다.
해외여행을하면서도그곳특유의토산품을골라내는안목을보면알수있는일이다.
색감과그조화는그래서타고나는것이라고나는결론짓는다.

똑같이내복식에대해서도상당한간섭을받지만그실력을인정하기때문에대부분
동의한다.
내가착용하는넥타이중그무늬의독특함이나색상이화려한것들은모두아내가
선택한것들이다.
아내에게있어색의조화는아주중요한삶의한부분이다.
그만큼색의조화에대해서는민감하고결코양보하지않는다.

밖에나간아내로부터전화가온다.
‘나지금교보에있어.’
그러면그것으로끝이다.
이제부터몇시간동안은책속에파묻혀있을것이니기다리지말라는것과식사도스스로
준비,혼자먹으라는신호다.
아내가가지고있는물건중제일많은게책이다.
아뜰리에로도사용하는거실의벽하나가책으로가득차있다.
(이사올때반정도는버리고도그렇다.)
책에대한아내의애착은내가보기엔태생적인것같다.
한번책방에들어가면몇시간이고책들을섭렵하고고르고골라한두권사들고
돌아온다.
지금도아내는내가책을사줄때와차에기름을넣어줄때가장기뻐한다.
한번은다이앤애커먼(DianeAckerman)이쓴감각의박물학(Anaturalhistory
ofthesenses))을내가먼저읽고아내에게건넸는데얼마나감명깊게읽었던지
결국미국에주문,원서를구입하기까지했으며애커먼의홈페이지를찾아작가에
대한공부까지했다.
책에대한아내의사랑은앞으로도변하지않을것이다.
책은아내에게일용하는양식과같은것이다.

아내는영어공부에대해대단한애착을가지고있다.
손녀까지있는나이가되면대부분의경우학문을접는것이보통이지만아내는그렇지
않다.
영어사전도여러종류를가지고있지만원서를읽는일에게으름이없다.
특히RosamundePilcher의’WinterSolstice’에대해큰애착을가지고있다.
이미두번이나읽었고지금은454페이지중약3분의1을번역했다.
영문소설을읽고그것을혼자서번역하는일자체가학문에대한열정이없이는
불가능한일이다.
나는아내의그런집념이어디에서나오는것인지도무지알수가없다.
지금봐서는영어공부를그만둘조짐은전혀보이지않는다.

우리집에는고양이과동물들의봉제완구가많다.
손녀를주기위한것이아니라아내가그것들을좋아하기때문이다.
그나이에봉제완구라,
아내는그봉제품에옷도만들어입히고집안여기저기에데코레이션으로쓰기도한다.
아내의그런취향에대해설명하기는어렵지만그건동심(童心)이살아있다는
증거가아닐까생각된다.
아내가그림을그리는것은그런동심이아직도마음속에있기때문에가능한것이
아닐까.
어른이동심을가지고있다는것은순수한마음을간직하고있다는의미도있다.
아내는이런순수한마음을가지고있기때문에다른사람들에대해매우친화적이다.
사람들을쉽게사귀고가까이지낸다.
그누구라도차별을하지않는다.
그래서아내의주변에는늘사람들이많다.
야채노점상을하는할머니한분은우리도모르게푸성귀를문앞에두고간다.
‘우리는친구’라는신호다.

아내는가끔하루이틀집을떠나친구들이나친정가족들과지낼때가있다.
아니면아침일찍나갔다늦은저녁시간에돌아올때도있다.
일단장시간집을떠났다돌아오면거의비슷한반응을보인다.
그건내가만들어주는,자기입에맞는음식을평소보다더많이먹는것이다.
아내가즐겨먹는야채샐러드,오븐에서막구워낸바게뜨,껍질을잘라낸,
삼각형으로등분한구운식빵,자기가즐겨먹는형태로후라이한달걀,
그리고무우청과큰멸치,된장으로만드는찌개,모두가아내가즐기는음식이다.
아내는매식을좋아하지않는다.
입에서만맛이있는,온갖화학조미료가넘치도록첨가된그무서운음식들을기피하기
때문이다.
그러니일단밖에나가면충분한양의식사를못한다는얘기다.
때문에그보충을집에돌아와서하는것이다.
요식업소들의불결한위생과한번냈던반찬을다시상에올리는일에대해병적일만큼
거부반응을가지기때문에매식에대한부정적태도는거의변하지않을것이다.
때문에그만큼집에서만들어먹는음식들이충실해야한다.

얼마전장모님이입원해계시던병실에서막내처남이물었다.
‘누나,지금허리사이즈가얼마야.’
아내의대답은,
‘처녀때와똑같다.’였다.
그건사실이다.
처녀때입던치마와바지를지금도그대로입는다.
두아이를낳아기른주부로서는아주드문일이다.
체중자체도별로변함이없이날렵하다.
아내의자기몸관리는어떤철학이있는것같다.
‘자기몸에대해서는자기가책임져야한다.’는게아내의생각이다.
특히후천적비만에대해서는더욱그렇다고주장한다.
다음이의지(意志)의문제다.
아내의운동량은보통사람이감당하기에는어려운수준이며그초지일관은
겨룰여자가없을것이다.
아내는그렇게무서울정도로운동을한다.
몸에살이붙을겨를이없을정도다.
아내는앞으로도변함없이자기몸관리에최선을다할것이다.

초겨울,
우리부부가걷는수로가에는온갖풀들이누렇게색이변해있다.
아내는전정가위를가지고나갔다돌아오는길에그풀들과나목의가지들을잘라온다.
그래서우리집베란다는수많은겨울풀들과나목의가지들이화병,병,단지에꽂혀있다.
베란다문을열면시골의짚냄새가가득풍겨온다.
아내는그잎사귀가다떨어진들풀들의줄기와나목의가지들을아주세심하게
살펴본다.
아내의설명은,
잎사귀가떨어진줄기와가지들에대해확실하게알고기억하는것이나중에나무와
풀을그릴때바탕이된다는것이다.
이해가가는얘기다.
잎사귀에가려져있지만줄기나가지들은또그대로의자기속성이있는것이아니겠는가.
그것을안다는것은잎사귀들의배열이그만큼자연스러워진다는뜻일것이다.
한편아내는나목의가지들을가지고놀라울정도의기지로집안을장식하기도한다.

아내는일단그림을그리기시작하면완전히거기에몰입한다.
어떤때는거의하루종일이젤을떠나지않는다.
정말대단한끈기가아닐수없다.
눈밭에서몇시간씩버티는것을보면그림에대한아내의집착은상상을초월하는것이다.
은퇴후,내가식사준비를하게된동기가그랬다.
그냥앉아있으면밥굶기는분명한것이니자구책으로시작한것이이제는상당한
레파토리를가지는수준이됐다.
물론여기에는아내를사랑하는마음이먼저인것은말한것도없다.
내가가장잘하는게밥이다.
밥에도맛이있을까,사실은밥이맛이있어야반찬도더맛이있다.
내가깨달은게그것이다.
국,찌개류,밑반찬도스스로만들고깎두기도담글줄안다.
특히아내가좋아하는메뉴는옛날짱궤가만들어주던맛그대로의짜장면과스파게티
봉골래다.
가끔점심시간에만들어주는바게뜨샌드위치도아내가즐기는음식이다.
아내의표현에의하면,
‘자기는손맛이있어.’다.
이게칭찬인지아니면부려먹으려고하는소린지는좀더두고보면알게될터이다.

장거리드라이브에서돌아올때,
일몰을만날때가있다.
지평선에걸려있는붉고아름다운해를보면서아내가말한다.
‘저달좀봐,얼마나아름다워.’
아내가해와달을구별하지못할리가없다.
그런데지는해를보고달이라고한다.
이럴때나는가만히있는다.
해도,아름다운달로볼수있기때문에그림을그리는것이아닐까.
그게화가의눈이아닐까.
그림은과학이아니기때문이다.
해를달이라고하는여자를누가당할수있겠는가.
정말아내는못말리는여자다.
그래서나는더욱아내를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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