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사람이사는사회에서격리된,범죄자로서비인격적존재들이기때문이다.
반대로그누구도우리를주민등록번호로부르지는않는다.
반드시이름을부른다.
정상적인인격적존재이기때문이다.
사람에게있어이름-성명(姓名)은그렇게중요하다.
어떤인물이역사적으로그이름이남아있다는것은그이름의인격이지금도우리와
함께있다는깊은의미가있다.
대표적인예가’충무공이순신’이다.
성명(姓名)은,성(姓)과이름이다.
성이있고이름이없을수는있지만(옛사대부집의부인들도이씨나김씨로만불렸다.)
이름만있고성이없을수는없다.
누구에게나부모가있고姓은부계(父系)를따르기때문이다.
姓은한줄기의혈통(血統)끼리가지는칭호로하나의혈족,가문을이루는근거다.
전통적으로한혈족이가지는배타성은같은姓氏의혈통을보존하려는집단적
정서라고볼수있다.
같은성씨일경우라도본관(本貫)을물어보는게하나의예다.
본관은관향(貫鄕)으로그성씨의시조(始祖)가난땅이다.
따라서본관이같으면시조가같은동성동본(同姓同本)이되는것이다.
몇사람만모여도나이를물어서열을정하고통성명(通姓名)으로편을가르는게
우리의생활습관이다.
수많은분열의뿌리가거기에있다.
한사람이정상적으로사회생활을하는데있어’이름’은그렇게중요하다.
프랑스버젼(뤽베송)의’니키타’를보면,
니키타가킬러로훈련받는과정에서’화장’을배우는대목이있다.
이때화장법을가르치는중년부인이니키타에게이런말을해준다.
‘여자는,남자의파트너가되기전,그중간단계로먼저여자가돼야한다.’
이때의여자는여성자신이다.
아직미혼의,여자로서는가장아름답고성숙한단계에있을때다.
적어도이때까지는집안에서,긴학교생활에서,그리고조직이나직장,사회생활에서
자기의이름으로불려진다.
그리고그게한여자가자기의이름으로불려지는마지막때일것이다.
근자에는상당한변화가있기는해도아직은미미한수준이다.
일단결혼하면’새댁’으로불린다.
출산하면그때부터는’ㅇㅇ엄마’가된다.
나이가좀들어아낙이되면주변에서출신지의이름으로대신한다.
‘서산댁,충주댁’이그것이다.
가족들이모이면한개인으로서의여자가아니라가족관계로서의호칭이붙는다.
이모,고모,큰엄마,작은엄마,형수님,제수님,동서,아우님등.
그리고시부모님의사랑이듬뿍담긴호칭도’아가’다.
가장가까운사이인남편도’여보’아니면’당신’이고애들은언제나엄마라고부른다.
한여자의이름이사라져버린것이다.
그나마그이름이남아있는곳은’동창회’이며취미생활을같이하는모임정도다.
한국의여성은결혼해도남편의성씨를따르지않는다.
선진사회인서구에서결혼한여자가남편의성씨를따르는것과는대조적이다.
내막을잘모르는그들은한국여성들이개성이강하기때문에그렇다고부러워한다.
같은할머니,할아버지인데,
그냥할머니,할아버지와외할머니,외할아버지가있다.
이때’외’는’外’다.
인칭명사앞에붙여밖,바깥사람이라는의미를분명히하는표현이다.
혈족사회인가문을기준할때며느리는外다.
그외인,바깥사람에게혈족,가문의성씨를줄수는없는것이다.
칠거지악(七去之惡)으로며느리를쫓아내던시대이기에그랬다.
시집가는딸에게,
‘죽어도그집귀신이되라’는다짐은이外에대한저항의반증이다.
대가족제도안에서’가족관계’를기준하는호칭이발달한그만큼사회적대인관계의
인칭대명사(人稱代名詞)가부족해지고발전못한게우리사회다.
요식업소같은데서종업원이나주인을부를때’저기요.’하는게대표적인사례다.
마땅히부를이름이없기때문이다.
요지음은여자종업원들을’언니’라고부르는경우가많지만말도안되는소리다.
여기에비해서구사회는이름으로사람을부르는관습이정착돼있다.
애들이자기부모를’you’라고부르면서자란다.
조금크면부모의이름을아무렇지도않게부른다.
언니,오빠,형,동생같은단어는거의쓰지않는다.
가족,형제자매간에도직접이름을부른다.
사람마다부르기좋은애칭을가지고있는게이런관계가일반적이라는증거다.
예를들어’김미애’씨하고자기의이름으로불렸을때와.
ㅇㅇ엄마,여보,새댁,서산댁,동서,형님,아우님,아가하고불렸을때인간의
정서적반응은같을수가없다.
사람은불려지는호칭대로정의(定義)된다.
127번,하면수인이라는뜻이다.
박일병,하면쫄병이되는것이고,
김장군,하면지휘관이된다.
파파할머니도’아줌마’로불리면그만큼젊어보이는게호칭이다.
‘아저씨’와’교수님’의차이는두말할것도없다.
구입한상품에문제가있어제조회사에전화를걸었을때,
‘네,ㅇㅇ에근무하는김ㅇㅇ입니다.무엇을도와드릴까요?.’
이건되는회사다.
그회사가발전하는것은너무나당연하다.
반대로,전화를걸어이름을물어보면,
‘저여기근무하는사람’이라고만말할뿐결코자기이름을알려주지않는경우도있다.
그런회사가망하는것은시간문제다.
자기의이름을정확히말한다는것은책임을지겠다는뜻이며이를얼버무리는것은
회피하겠다는의미다.
제법사람들이붐비는식당을예약할때,
전화로예약한후그대로끊는경우와예약을받은종업원의이름을묻고이를적어놓는
것은아주큰차이가있다.
식당에도착했을때예약된자리가준비안된경우예약받은종업원의이름을모르면
그책임을추궁할수가없다.
그러나이름을가지고있으면얘기는달라진다.
전화로예약을받은직원은자기이름에대해책임을지기때문이다.
이름은그런것이다.
이제우리도’엄마’들에게,여자들에게그들의이름을돌려줘야한다.
반드시돌려줘야한다.
대명사가아닌그들의’이름’으로불려져야한다.
우리사회가건전하고,건강하고,창의적으로발전하려면’엄마’들이자기이름을
되찾아야한다.
그들이자기들의아름다운이름으로불려질때세상은충분히달라질수있다.
이름에는책임이따르기때문이다.
과거찬란한문화를가졌던아랍세계가지금크게뒤떨어진것은인구의절반인
여성들을팽개쳐둔것이큰원인중하나가될것이다.
여성거의가문맹이고남자들에게종속된삶을산다.
카이로공항에도착할때마다.
전통복장에히자브를머리에쓰고컴퓨터앞에앉아있는여성을보면숨이막힌다.
인구의절반인여성을활용하지못하면아랍의발전은사실상요원하다.
어느나라도국민의절반은여자다.
그들이자기이름으로불려지는나라와그렇지못한나라가있을뿐이다.
여자들이당당하게자기의이름을밝힐수있고그이름으로불려질때그사회는전혀
다른것이될수밖에없다.
국가적으로책임감과창의력의총량(總量)이늘어나기때문이다.
이건정말보통일이아니다.
나는연애시절부터손녀가있는지금까지아내를아내의이름으로부른다.
아내의이름은유애저(劉愛姐),정말예쁜이름이다.
그래서나는언제어디서나아내를’애저’라고부른다.
가족들이놀래고,
동창생들이놀래고,
주변이놀래도개의치않고아내의이름을부른다.
내개있어아내는언제나내가사랑하난한여자,유애저이기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