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들어모든약(藥)에는병을낫게하는작용과함께몸에해로운작용도함께있는데
이를약의부작용이라고한다.
진통제는통증자체는완화해주지만대신식욕부진이라는부작용을일으킨다.
또어떤일에곁들여생기는바람직하지못한일도부작용이라고한다.
의사가자기집식구들에게약을잘안주는이유도거기에있다.
부작용을알기때문이다.
비행기나자동차를설계하는사람들은비행기가자동차이용을꺼린다.
이는그것들이가지고있는구조적약점-부작용을알기때문이다.
똑같이내용을알면부작용을상당부분막을수있고대처할수도있다.
그러나부작용을모르면그나쁜영향에서벗어날수없다.
그대로당하는것이다.
작가전중권은’호모코레아니쿠스’에서,
지금의우리사회를압축성장에짓눌린사회라고하면서
‘한몸속에전(前)근대와근대,그리고탈(脫)그대라는세지층이공존하는그로데스크
한실체’라고정의한다.
근대는지나간지얼마안되는가까운시대로서조선조후기가여기에해당된다.
전근대는따라서조선조초기가되는것이며현대적이지못한낡은사고방식과생활
양식을뜻하기도한다.
근대를대한제국이일본의식민지가되고서양의문물이들어오기시작한개화기라고
한다면탈근대는그것을벗어나려는현대의삶이라고할수있다.
부분적으로는’지금’을벗어나앞으로나아가려는지향성이라고말할수도있다.
세가지지층(地層)이공존한다는것은,
서로다른기반이우리사회를지탱하고있다는뜻이다.
따라서그런사회는크로데스크한실체가된다.
지반이다르면표면도달라질수밖에없고그서로다른표면의심한요철(凹凸)현상은
우리의삶을크게불편하게한다.
그로데스크하다는말은,
프랑스어grotesque로서괴기하고끔찍스럽고엽기적이라는뜻이다.
괴기는괴상하고기이한것이며엽기는그괴상하고기이한일에흥미를가진다는의미다.
따라서지금의우리사회는그기반이서로다른바탕에세워져있으며그것들의노출이
괴상하고기이한현상으로나타나고있는끔찍스러운사회라는얘기다.
전적으로동의할수는없지만그날카로운안목은평가할만하다.
부분적으로그건사실이기때문이다.
이미언급한얘기이긴하지만,
나는어렸을때할머니의손을잡고할머니가가시는곳을잘따라다녔다.
그런데우리집골목으로들어서는어귀에는주막이하나있었는데거기에는늘화려한
옷을입은작부가마루에앉아있었다.
그런데그작부의겉옷은아주화려한색깔이었지만그녀가움직일때마다내보이는
속옷은아주더러웠다.
나는할머니에게그이유를묻곤했다.
그때마다할머니의대답은,
‘그건작부이기때문에그렇다’는것이다.
할머니나어머니,고모는겉옷도속옷도언제나깨끗했다.
때문에그더러운작부의속옷이어린눈에도기이하게보였던것이다.
유비적으로표현하자면,
지금의우리사회가그렇다.
겉은화려하고첨단의시대를달리고있지만그속은빈강정이나다름이없다.
속이빈통이더요란한소리를내면서굴러가는것과똑같은현상이다.
어떤시인의표현처럼깃털처럼가벼운사회가됐다.
우리가그근본에서나빠서가아니라’압축성장’을했기때문이며그부작용이
그로테스크한사회로나타난것뿐이다.
그때그때소화하고지나가야하는성장과발전의’과정들’을건너뛰었기때문에
지금그외상값을치르느라고몸살을앓고있는것이다.
세상에는공짜가없기때문이다.
압축성장의그늘,그부작용이지금우리사회의구석구석에서기능하기때문에여러
가지혼란과위기가끊임없이나타나고있다.
가장대표적인부작용이무엇일까.
그대상은우리사회를움직이는실질적인주체인사람들의’수준’이다.
모든근본적인원인은언제나’사람’에게있으며이는사회현상전반이’사람’에의해
조성되기때문이다.
압축성장이배출한대표적인인간성향이’극단적인이기주의’다.
지금의그로데스크한사회는이키워드하나로다설명할수있다.
극단적인개인들의이기주의가파괴하는것이사회의공공재(公共財)이기때문이다.
옛날에는쌀,김치,연탄만있으면느긋하게긴겨울을지낼수있었다.
여기에텔리비젼이나냉장고,전화기까지있으면그건부자였다.
말하자면이때는개인들이개별적으로가지는재화가삶의질을결정했다.
그러나지금은전혀다른사회가됐다.
이제는사람들의삶의질이공공재에의해결정된다.
교육,교통,주택,환경,휴식공간,사회질서가그런것들이다.
그리고이러한공공재들은개개인에게큰영향을끼치면서도개개인의개인적노력
으로는해결할수없는’벽’과같은실체들이다.
평준화라는이름의퇴행성교육,
널뛰는주택정책과투기때문에치솟는집값,
러시아워가따로없는교통쳇증,
그정도를더해가는각종환경오염,
온갖소음으로가득찬,조용한곳이따로없는생활공간,
후진국수준의무질서와범법,탈법등나열하자면끝도없는그로데스크한현상들이다.
불이난곳에기름을뿌리는행위가극단적이기주의다.
내아이만생각하는이기주의가사교육시장을키웠고그건그대로공교육의황폐화를
가져왔다.
차선을바꾸겠다고신호등을켜면오히려더방해를하고,온갖끼어들기는대형교통
사고로이어지고있다.
부동산투기가만들어낸악순환은긴설명이필요없을것이다.
각가정에서무분별하게,이기적으로쓰고있는각종세제의합이국토를어느정도로
오염시키고있는지는알려고도하지않는다.
밭에널려있는각종폐비닐과농약병들의피해는대(代)를있는재앙이라는사실도
알려고안한다.
사람들이모이는모든공공장소의소음은(주로TV)인간의사고기능을앗아가는
것이기때문에국가적인손실임을알아야한다.
새치기는대표적인사회악이다.
새치기가파괴하는질서는하나의사회를나락으로끌고갈수있다.
겉으로볼때,
우리나라는세계적인산업화의성공적인모델이될수있다.
조만간GNP3만불도달성될것이다.
그러나이대로라면소득은올라가지만삶의질은반비례로떨어지는국가가된다.
공공재가훼손되고있기때문이다.
지금을기준한다면공공재의질은매일매일나빠지고있다.
개인들이가지는극단적인이기주의는이렇게무서운사회악이다.
결국우리의삶의질을높이기위해서는우선’삶의질’이무엇인지제대로알고인식
하지않으면안된다.
그게얼마낮좋은것인지를알아야한다.
다음은,
공공재의질을높여야하는이유를인정하고그방법을모색해야한다.
이미가지고있는것을제대로누리며살기위해서그것은필수적이다.
‘극단적이기주의’의극복은두가지길밖에없다.
그하나가’교육’이고다른하나가’종교’다.다른길은없다.
아주어려서부터,가정에서부터기본교육이제대로돼야하고그연장선상에서제도
교육이이를감당해야한다.
여기서중요한것이커리큘럼이다.
지금처럼인간성을함양시키는과목들이입시과목에밀려제대로학습되지못한다면
가망은없다.
똑같이지금처럼변질된’종교적기능’으로는이문제를풀수없다.
종교가우선달라져야한다.
종교본래의순기능이살아나서모든신도들의도덕적수준이함양돼야한다.
우리처럼종교인구가많은나라가도덕적수준이기준치에미달하고있는것은종교의
역기능이순기능보다크기때문이다.
제일큰이유는성(聖)이속(俗)이되었기때문이다.
이세상에부작용이없는사회는없다.
정도의차이가있을뿐이다.
지금의우리사회는최하위권에머무르고있다.
이수준을끌어올리는것은우리모두의책무다.
결코다른누군가가해주는일이아니다.
말하자면민족적역량이걸린문제다.
우수한민족이거나열등한민족중하나로판가름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