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에이르는문은크고또그길이넓어서그리고가는사람이많지만
생명에이르는문은좁고또그길이험해서찾아드는사람이적다.’
마태7:13-14.공동.
우리들이이세상을살아가면서체험적으로알게되는사실은귀하고좋은것은얻기가
어렵다는점이다.
귀하고좋은것은결코쉽게얻어지지않는다.
언제나쉽게얻는것은쉽게잃는다.
싼게비지떡이기때문이다.
큰문과넓은길에는사람들이많이몰린다.
우선쉽기때문이다.
그러나좁은문과험한길은기피한다.
어렵기때문이다.
좁은문을통과하기위해서는가진것을다버려야하며험한길을가기위해서는고통을
감내해야한다.
좁은문과험한길을찾는이가적은것도그때문이다.
세상의기준으로볼때그선택은인간적이고일상적이다.
누가일부러어려운쪽을택하겠는가.
진실된의미에서,
크리스챤은좁은문험한길을자발적으로선택한사람들이다.
그길이험한줄알면서도그것을선택한사람이그리스도인이다.
그래서크리스챤은,
그리스도라하는분을따르기위해그가가신험하고어려운길을선택한사람들이다.
크리스챤을정의하는기준으로이보다더명확한것은없을것이다.
세상에는큰문을향해넓은길을가면서자기가크리스챤인줄로착각하고있는사람들이
많다.
대개의경우넓은문과좁은문,쉬운길과험한길의의미와차이에대해모르기때문이다.
종교에접근하는자세에서진지함과고민이없었기에그렇다.
다른경우는종교를수단화,도구화하기때문이며종교와신앙을이해관계의안목으로
보기때문이다.
진실된의미의크리스챤은,
자기가좁은문험한길을택한이유에대해분명한대답을가지고있는사람들이다.
그대답이준비되기까지는긴사색과번민,의심과믿음사이를오가는마음의고통과
갈등을겪게된다.
그힘든과정을거치지않고는온전한대답은얻기어렵다.
그리고그대답의핵심은단지하나뿐이다.
‘예수를사랑하기때문이다.’가그것이다.
복음서를읽으면서인간예수를만나고,
그분의말씀을읽으면서감동받고,
그의미를되새김하면서진리가무엇인지알아지게되고,
왜예수를그리스도라부르는지이해해야예수를사랑할수있다.
때문에좁은문험한길을선택한그리스도인은자기가성경을읽은사람들이다.
‘내가주께대하여듣기만하였삽더니이제는눈으로주를뵈옵나이다.’
욥기41:5.개역.
예수와조우하지않고는,
좁고험하길을선택할수없다.
그분을사랑하는것은그분과만났기때문이다.
진실된크리스챤이라면,
자기가좁은문과험한길을선택한분명한근거를가지고있는사람들이다.
큰문과넓은길은쉽게갈수있지만그끝이멸망이라는것과,
좁은문험한길은힘들고어렵지만그끝이구원임을확신하는것이다.
그확신이곧근거다.
바라는것들의실상인것이다.
이확신은,
일상생활에서예수의마음을닮고그마음으로살게해준다.
예수를믿는다는것은,
그분의마음을품고그마음으로세상을사는삶이다.
여기서한가지분명히해야하는점은,
크리스챤은보통사람들과그보이는모습에서같아야한다.
하나님은사람을외모로보시지않기때문이다.
달라야하는것은그내면이며말과행동이다.
특히행동에서분명한선을긋고완전히다를수있어야한다.
가는목표가서로다르기때문이다.
반면겉을다르게꾸미는것은속에든것이없기때문에생기는위선이다.
진실된의미에서의크리스챤이라면,
좁은문험한길을가면서도감사하고기뻐하는사람들이다.
이역설이곧신앙의세계다.
이신비한영역은이미하나님의나라다.
좁은문험한길을스스로선택한사람들만이들어설수있는영역이다.
그들은그영역이가지는가치와의미를충분히알기때문에감사하고기뻐하는것이다.
그들의일상적인삶이다른사람들과질적으로차이가나는것은당연하다.
주께서말씀하신빛과소금이그들이다.
아무리그숫자가적다해도빛은빛이고소금은소금이다.
왜어떤사람들은좁고험한길을택하고또다른사람들은크고넓은길을택하는
것일까.
인간은그대답을할수없기때문에종교에귀의한다.
그건전적으로섭리의세계이기때문이다.
한쪽이선택받았다면한쪽은버림받은것이다.
그래서선이신비라면악도신비라는명제는하나의단초가될수있다.
종교가과학이아닌이상섭리의세계는논리적설명이불가능하다.
단지사람이사는모습을통해그차이를구분해볼수는있다.
먹고마시고즐기는생활에만족한부류가있다.
인간으로서는최하위삶의형태다.
그리고가장확실하게버림받은계층이다.
다음이먹고마시고즐기되’인생’에대해질문하는철학의세계가있다.
사유하는인간들이그들이며인류가받은위대한유산은그사변적인정신들이남긴
결실이다.
마지막으로철학의세계를지나더근본적인물음에접근하는사람들이있다.
넓게는종교를가진사람들이고,좁히면크리스챤들이다.
진정한의미의크리스챤-그리스도인은,
섭리를통해근본에접근하고있는선택된사람들이다.
크리스챤이라해도왜내가선택되었는지는알수도,설명할수도없다.
그선택을설명하는가장적절한단어가’은총’이다.
특별한사랑을받았다는의미다.
왜내가특별한사랑을받았는지를설명할수있는인간은없다.
그건하나님의고유한영역이기때문이다.
‘여러분은하나님아버지께서미리세우신계획에따라뽑혀서성령으로거룩하게
되어예수그리스도에게복종하게되었으며그분의피로죄가씻겨진사람들이다.
벧전1:2.공동.
하나님께서인류의얼마를구원하시기로하신영원한목적을’예정론(豫定論)이라고
한다.
대신학자아우구스티누스(354-430)는,
하나님의의지적인선택에의해구원받을자와못받을자가정해졌다고주장했다.
개혁자칼빈(1509-1564)은이이론에대해구원과멸망이모두예정된것이라는
이중예정론을주장한다.
‘하나님의선택을받고안받는것은인간의의지나노력에달려있는것이아니라
오직하나님의자비에달려있는것입니다.’로마서9:16.공동.
그러나예정론은,
운명론과달리인격적하나님의선택을전제하고믿는자는구원을얻는다는인간의
자유의지를내포하고있다는점에서운명론과는다르다.
‘하나님이아들을세상에보내신것은세상을단죄하려는것이아니라아들을시켜
구원하려는것이다.
그를믿는사람은죄인으로판결받지않으나믿지않는사람들은이미죄인으로
판결받았다.하나님의외아들을믿지않았기때문이다.’요한3:16.공동.
자기가어떤크리스챤인지를진단하는방법은뜻밖에간단하다.
큰문을향해넓은길을쉽게가고있는가.
아니면좁고험한길을스스로택해어렵게가고있는가.
신앙과구원의세계에서’중간’은없다.
이는한쪽에대한분명한선택만있을뿐이다.
좁은문험한길을택했다면감사하고겸손한마음으로그길을묵묵히가면된다.
그끝에주께서기다리고계시기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