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면문화, 남 때문에 산다.
남부끄럽다.
남보기에창피하다.
남들이보고있다.
남의이목이있는데,
남들이뭐라고하겠는가.
이말들의핵심은’나’에대한남들의’평가’다.
즉,내가사는것은개성적인내가나를위해사는것이아니라남에게보여지고평가
받는내가기준이되는것이다.

이타적으로남을위해사는것이아니라나를평가하는남때문에사는게된다.
체면문화(體面文化)의속성이그러하다.
체면은남을대하는번듯한면모를이르는말이며면모는얼굴의생김새다.
내가남에게어떻게보이는가.
남들이나를보고어떻게평가하는가.
이런생각으로살기때문에속보다는겉을꾸미는일에더비중을두는체면문화가
발달한게우리사회다.
체면문화는명분을우선하기때문에그명분을살리기위해서는실리까지버린다.
실속을차리지못하는병폐가그래서생겨났다.

결혼식이끝나면전세집에들어가야하지만남의이목때문에혼수는모두장만한다.
그혼수들은전세집몇번옯겨다니면다망가져도상관안한다.
그돈아껴서집장만할때보태야하는실속은명분앞에서설자리가없다.
체면문화의또다를표현이외화내빈(外華內貧)이다.
겉은화려해도그속엔아무것도없는속빈강정이다.
우리의민족성을표현하는항목중하나가바로그외화내빈이다.

지금우리사회저변에깔려있는생활정서중가장큰영향력을가지고있는게유교일
것이다.
특히관혼상제(冠婚喪祭)에서그렇다.
유교는공자(孔子,BC552-479)를시조로하며그중심사상은인(仁)이다.
우리나라에크게영향을끼친경전은삼강오륜(三綱五倫)이며
이는임금과신하,부모와자식,부부사이의도리와군신,부자,부부,장유,붕우관계
에서사람이지켜야하는다섯가지도리를근간으로하고있다.

그도리(道理-사람이마땅히지켜야할바른길)의중심은남을대하는태도이며
거기엔자기가받는평가때문에자기를감추고삼가는마음이우선한다.
말하자면자기의생각이나마음을먼저드러내는것을억제하는정서가있다.
부모앞에서아내나어린자식에대한애정표현까지도삼가야하는삶의형식이그런
것이다.
임금,부모,남편,어르신,친구사이에서내가받게되는평가가우선이된다.
그러기위해서는나를억제하는,나를드러내지않는심성이있어야한다.
그러나모든일에는양면이있듯이,
삼강오륜의정신도생활양식의변화와함께크게변질되어나를삼가는긍정적인
기능은사라지고남의’평가’만취하는하위개념으로바뀌고말았다.

체면치례라는말이있다.
체면이서도록꾸미는일이다.
예를들어딸을시집보낼때가진것이없어도남의이목때문에빚을내서라도혼수는
장만해야한다.
그후그빚때문에받는고통을알면서도그렇게하는것이다.
우리사회의이런오래된관행은하루이틀에정착된것은아니다.
실로그뿌리는깊은곳에있다.
예를들어가족중한명이큰수술을받았을때이렇게말한다.
‘이번에김박사가직접집도했다.’
이럴경우김박사는명분이다.
그렇게의학박사라는학위에비중을둔다.
그러나더중요한것은김박사가아니라수술부위에대한’전문의’다.
전문의가실속인것이다.

친지중중년부부의가정이큰어려움을겪고있다.
그들이하던장사가(그들은그걸사업이라고부른다.)잘안돼살던집까지날리고
지금은친척집에얹혀살고있다.
그들의고생을지켜보는가족들은지금그들이아무것도가진것없이시작할수있는
것은봉어빵이나호떡장사밖에없다고진단한다.
그렇게라도시작하면밥은먹을수있다는것을알기때문이다.
그러나그들은,자기들은사업가이기때문에그런장사는할수없다는것이다.
남부끄럽게호떡장사는할수없다는체면-명분때문이다.
체면분화는그렇게무서운것이다.
눈앞에보이는분명한실리를버릴정도로무섭다.

동서양사람들이편지봉투를쓰는방법을살펴보면그근본적인차이에서양쪽의
사고방식을읽을수있다.
예를들어우리들은,
서울특별시가먼저고그다음이사는동네와번지수다.
그리고이름도성(姓)이먼저고자기이름은제일나중에쓴다.
셩양사람들은완전히우리와는반대다.
자기이름을제일먼저쓰고그다음이성(姓)이다.
번지수를먼저쓰고다음이동네이름이다.
국적을써야할때는나라이름을제일나중에쓴다.
우리는서울특별시가먼저고그들은’내’가먼저다.
우리는명분이먼저고그들은실리가먼저다.
이차이가아무것도아닌것같지만절대그렇지않다.
우리가내가속한’소속’이먼저라면,
그들은’내’가먼저고소속은나중이다.
소속이먼저인문화는’나’보다나를평가는실체들이먼저지만실리를찾는문화는
‘나-개성적인자기’가언제나먼저다.
한쪽이남을의식하고산다면다른쪽은전혀상관하지않는다.

지금우리사회에서대학입시는모든삶의중심이고고3이있는가정은전투부대다.
왜그런가.
학력(學歷)이사람을살리고죽이기때문이다.
개인이가지고있는천부와실력,전문성이문제가아니라일류대학졸업이라는
간판-명분이실리를압도하기때문이다.
남들이알아주기때문이다.
출세가보장된다고믿기때문이다.
그게성공이라고판단하기때문이다.

사람이사회생활을하는이상,
남을의식해하는것은당연하다.
남을생각하고배려해야자기도그만큼의혜택을받는법이다.
그러나남을해치는일이아니라면남은,나와는직접적인상관이없는타인이다.
지나치게남을의식할필요가없는이유가그렇다.
남이나를어떻게보든,
남이나를어떻게평가하든,
내행위가악한것이아니라면개성적으로살아야하는게현대인이다.
필요이상으로남을의식할이유가없다.
내가생긴그대로,
내가가지고있는것으로,
내스타일에따라살수있어야한다.
뜨거운한낮,두사람이함께보도를걷고있는데한사람은반팔옷이고다른사람은
겨울털옷을입고있다.
그렇다고그들을이상하게쳐다보는사람도없다.
그냥자기편한대로옷을입고있을뿐이다.
외국의거리에서직접목격한사례가그랬다.

사람이남을의식하지않고자기스타일대로살려면속에가지고있는게단단해야한다.
교육,돈,철학이그것들이다.
결국남의눈치를보며산다는것은’자신’이없기때문이다.
아무리가진게많아도자기철학이없으면개성적으로살기는거의불가능하다.
개성이곧자기철학이기때문이다.
역사는개성적인사람들이많은사회가발전한다는법칙을기록하고있다.
개성적인사람만이창의력을발휘할수있다.
그래서괴짜가많아야한다.
그괴짜들을이상하게보는사회가사실은이상한것이다.
왜모두가똑같이남의이목에잡혀살아야하는가.
우리처럼명분을찾는민족성도많지는않을것이다.
그래서놓친실리가얼마나많은가.
이제는한(恨)의문화와함께체면문화도버릴때가됐다.
지금쓰기에그것들은너무낡은틀이기때문이다.
그건씨족이모여사는’마을문화’에서쓰던옛틀이다.

예를들어달걀을사고팔때,
우리는달걀10개에2000원이라고한다.
이때중요한것은10개라는숫자와2000원이라는가격이다.
달걀의크기는상관안한다.
그런데,
중국사람들은그달걀을저울에올려놓고무게로거래한다.
우리가명분이라면중국은실리다.
그들의그방법이현대산업사회에맞기때문에중국이발전하고있는것이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