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남아야 하는 교회.
근자기업하는사람들입에서자주회자되는말이있다.
‘살아남기위해서는변신해야한다.’가그것이다.
치열한경쟁에서살아남기위해서는피나는노력을해야한다는뜻이다.
선발업체끼리도경쟁해야하지만후발업체들의추격도만만치않은것은물론,
외국업체들과의경쟁도이제는부인할수없는현실이된세상이다.
이제이경쟁은사람들에게도큰압력이되고있다.
같은직장안에서도도태되지않고승진,승급하기위해서는정말피나는경쟁을해야
하며특히IMF사태이후이런풍속도는더두드러지고있다.
학교에서의경쟁은더말할것도없다.
사교육시장의공룡화가그것을증명하고있다.

어떤의미에선,
경쟁은발전의원동력이되기도한다.
동네에빵가게가하나만있을때와하나가더생겨둘이경쟁할때그품질과서비스는
눈에보이게달라진다.
한노선을운수회가하나가독점했을때의횡포는다른운수회사버스들이투입되면
누가말하지않아도저절도해결된다.
자본주의시장경제에서독점과독과점이죄악시되는것이바로그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의존재가그것을말해주고있다.
결국사람이경영하는모든일에는경쟁이필수적이며이인간적인원칙을왜곡하고
외면한사회주의국가들의비참한몰락은경쟁을배격했기때문에생긴뼈아픈
자업자득이다.

이제이유행어는,
이름만들어도알만한개신교지도자들의입에서도거침없이말해지고있다.
‘교회도살아남기위해서는변신해야한다.’가그것이다.
그의미와충정은충분히이해할수있지만이런표현은반교회적이고비신학적이며
성경에대한무지에서비롯된것이다.
거의평생을목회한사람들이아직까지도’교회’가무엇인지를정확히모르기때문에
이런망발을하는것이다.

다른한가지는,
이런목회자들은지금까지교회를기업처럼운영해왔다는얘기다.
기업의속성은이윤추구이며이를극대화하기위해서는계속물량적으로성장해야한다.
지금거의모든개신교교회들은바로이러한기업의속성을그안에가지고물량주의로
치달은게변명할수없는사실이다.
더큰예베당,버스로실어나르는교인들,엄청난헌금,돈을물쓰듯하는각종이벤트
모두가기업과하나도다를게없다.
여기에목회자개인의인기와명예까지추가되면교회는그대로하나의기업이다.
그리고모든개척교회들은이기업교회를배우고흉내내기에급급하고있다.
사실교회만한장사가어디에있겠는가.
이미교회도시장에나와있는상품의하나가된지오래다.
교회만전문적으로사고파는중개업자도이제는한둘이아니다.

너희는나를누구라고생각하느냐,하는주님의질문에대해베드로가대답했다.
‘선생님은살아계신하나님의아들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자주께서는,
‘시몬바요나,너에게그것을알려주신분은사람이아니라하늘에계신내아버지시니
너는복이있다.
잘들어라너는베드로(반석)다.
내가이반석위에내교회를세울터인즉죽음의힘도감히그것을누르지못할것이다.’
마태16:16-17.공동.

여기에서’죽음의힘’은,
‘죽음의문’이다.
pulehades,죽음의문,죽음이들어오는곳이다.
죽음의힘이그것을누르지못한다는것은,
thegatesofHadeswillnotovercomeit.이다.-NIV.
하데스는70인역헬라어성경에서히브리어’스올’을’하데스’로번역한데서
그명칭이유래했다.
‘스올’은죽은영혼들이가는곳으로구약적인이름이다.
복음서에서이용어가가장분명하게쓰인곳이누가복음16장의부자와거지나사로에
대한주님의말씀이다.
23절에보면죽어서땅에묻힌부자는’죽음의세계’에서고통받다가아브라함의품에
있는거지나사로를보게된다.
그죽음의세계가바로하데스,스올이다.

‘살아계신하나님의아들그리스도’라는신앙고백에대해,
주께서는그것이인간이아닌,하나님이알게해주신것이라고설명하신다.
인간에의한철학적사변으로얻은답이아니라하나님의감동으로알게된신앙의지혜
라는뜻이다.
더정확히는그고백은땅의것이아니라하늘의것이라는의미다.
‘죽음의힘도감히그것을누르지못한다.’는말씀은,
교회는죽을수있는존재가아니라는설명이다.
죽음과무관한,영원한존재가교회다.
더쉽게말해,
교회는살아남기위해변신해야하는땅에속한존재가아닌것이다.
이것이성경이분명하게정의하는교회의속성이다.
교회를통해우리가구원받는역사(役事)가그래서가능하다.
교회는죽음을극복하고능가하기때문이다.
교회를’살아계신그리스도의몸’이라고부르는연유가그러하다.
그것이성경말씀이며신학이내린결론이다.

‘살아남아야하는교회’는,
죽을수도있는,’인간들의교회’다.
기업이망할수있는것처럼기업화된교회는죽을수도있다.
또죽어야한다.
‘전도관’이그하나의예가될것이다.
하늘을찌를듯하던그광란의사악한세력은지금흔적도없다.
그리스도의몸된교회가아니라사악한인간집단이었기때문이다.
지금우리눈에보이고있는수많은대형교회들은그상당수가기업화된땅의교회들이다.
그리고’교회도살아남기위해변신해야한다.’고말하는목회자들은신학적으로
무지한,세상의기업들과경쟁해야하는기업교회의사장목사들이다.
단한번이라도성경을제대로읽었다면,그뜻을정확히알고있었다면
그런반성경적이고비신앙적인발언은할수가없다.
해서도안된다.

교회는어디에서있는가.
‘올바른신앙고백위에서있는게교회다.’
주께서는분명히땅위에집을짓듯교회를세운것이아니라
베드로-petros-peter-반석위에,그신앙고백위에자기의교회를세우시겠다고하셨다.
그리고그신앙고백위에makarios-bless-복을주시겠다고약속하셨다.
이제남은문제는하나다.
지금우리들의’신앙고백’은성경적으로온전한것인가하는것이그것이다.
그신앙고백-신앙내용이올바른것이라면그위에세우신교회는그리스도의몸된
교회이며우리를구원하는교회다.
그신앙고백-신앙내용이잘못된것이라면죽을수도있는땅위의허상이다.
그겉모습이아무리화려해도그것은그리스도의몸된교회가될수없다.
그본질-신앙고백이잘못되었기때문이다.

우리들이크리스챤이라면,
정말성경대로올바른신앙을가진크리스챤이라면구원으로부르심을받은하나님의
자녀들이다.
그만큼올바른신앙이중요하다.
지금은주일하루를온전히교회에서’맡은일’에봉사하는것이하나의유행이되고
있으며가사에지장을주는정도로까지발전하고있다.
한가지분명하게알아야할것은,
그’맡은일’은자기를구원하지못한다는사실이다.
그건기업화된땅위의교회가가지고있는조직의한부분에서’종속적’으로영위되는
무의미한도로일뿐이다.
교세확장을위한,교인들의이탈을방지하는도구화가그것이다.

신앙고백과케리그마가중심인예배에는빠지면안된다.
그러나’맡은일’은그것을하지않았다고해서구원에서제외되는것은아니다.
살아남아야하는교회에서는경쟁에서살아남기위해맡은일이중요하지만하데스가
미칠수없는절대적이고영원한교회에서그것은별의미가없기때문이다.
살아남기위해변신해야하는상대적존재인땅위의교회가어떻게우리들을구원하는
주의몸된교회가될수있겠는가.
정말신중한판단이절실한혼미의시대를살고있는게지금의우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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