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빠진 사람들.
‘빠졌다’는표현은,
우물에빠졌다,늪에빠졌다,주색잡기에빠졌다처럼어떤부정적인현상을설명할때
많이쓰인다.
몰두해있는것은같지만그대상이나쁜경우에도빠졌다고표현한다.
그렇다면,
‘교회에빠졌다’고할때의의미는어떤것일까.
교회에대해열심이라는긍정적인의미도있지만그뉘앙스는부정적인의미가더크다.
정상적인열심이상으로몰두하고집착한다는뜻이더강하다.
가정주부의경우,
그집착은가사를돌보지않거나소홀히하는수준까지나가고있으며식구들의불평에
대해이를무시하는독선적태도로까지발전하고있다.
특히가족전부가교인이아닌경우그부작용은생각보다심각하다.

물리적으로교회에빠진기준은,
주일-일요일의경우온종일교회에묶여있어집에없는경우이며그것이가정주부일때
문제는커질수밖에없다.
자녀들이그럴경우도공부를소홀히할수있는개연성때문에문제가된다.
언제부터인지는정확히알수없지만지금모든교회의일반적형편은비슷하다.
‘봉사’라는명목으로가급적교인들을하루종일교회에묶어두려는의도에서각종
프로그램이운영되고있다.
그프로그램중에는명목이어떠하든교인개인의신앙생활과는무관한,교회의
물량화를위한비교회적인것이사실은더많다.
그리고이런현상은하나의유행이되어비판받지않은채그영역을넓혀가고있다.
그만큼각가정에서제기되는문제의수위는높아지고이로인한후유증은심각할수
밖에없다.

다른한가지는,
‘교회에빠진사람들’의신앙행태다.
그들은교회문을경계로그안과밖의생활에서완전히다른일상을산다.
그이중성은신앙이일상에없기때문이다.
가족들이그들을’광신자’라고부르는데는그런이유가지배적이다.
그래서심한경우’교회에미쳤다’고도한다.

이런부류의사람들을일반적인기준으로분류,분석하기는어렵다.
또개개인의사정과이유가다양할수있기때문에한가지패러다임으로설명하기도
힘들다.
그렇다하더라도강물처럼흐르고있는이부정적현상을그대로덮어둬서도안된다.
그해악이너무크고그것이다시교회의변질을심화시키는악순환이계속되기때문이다.
이제몇개의스팩트럼을통해그저변을살펴보면,
‘신앙적봉사’와’빠졌다’는차이에대한분별력부족이아주큰원인이다.
이는개인의서로다른기질과자의식(自意識)에원인이있다.
인간은그렇게자기와자기의위치를아는일이어렵다.
사실은빠져있는상태인데그것을믿음의봉사로착각하는개인의수준이문제다.
다른하나는,
크게봐서빠져있는사람들은고학력자보다는저학력자가더많다.
판단력과분별력이교육에서비롯되는것이기에이런현상은학력의수준으로설명이
가능하다.
바울사도의서신들을잘읽어보면이미그때에도무지한교인들에의해복음이왜곡된
사례가많았음을알수있다.
그것을바로잡기위해사도께서애쓴흔적은여러곳에서쉽게발견된다.

또한가지는,
빠진사람들은개성적이지못한경우가많다.
자기주장이분명하고,자기생각이뚜렷하고,자기의본분에대해알고있는사람들은
교회에빠지지않는다.
비개성적이라는것은쉽게휩쓸린다는의미가있다.
모두가그렇게하니까따라가는것이다.
그기질이개성적인사람들은자기가해야할일과하지말아야할일에대해거의
본능적으로판단한다.
끝으로지적해야할것은,
맹목적으로교회에빠진사람들은한결같이성경에대해무지하다.
성경을읽지않고신앙생활하기때문에목회자의지시에대해비판없이따라가는
경향성이강하다.
친교와봉사가교회가가지는기본적요소라해도거기에는한계가있다는원칙을
모르는것이다.
가정주부가가사를돌보지않거나소홀히할정도로교회에빠져있다면그건명백한
잘못이다.
이잘못을판단하는근거가성경인데그것을읽지않고신앙생활하기때문에참된
봉사와빠지는것을구분하지못하게된다.

이제는심리적측면에서의설명을시도해보자.
사람은자기가하는일을통해’보람’을느껴야한다.
어떤면에서는보수보다더중요한게보람이다.
아마도심리적으로는그것이가장큰보상일것이다.
교회밖의일상에서그런일을하지못하고있을때,그래서타인들의인정과보람을
느끼지못하고있을때,
교회가그런기회를제공한다면거기에빠지는것은당연하다.
‘맡은일’이무엇이든그것을통해자기존재를확인하고,남들이알아주고,보람을
느낀다면내용적으로는부정적인것이라해도거기에빠질수밖에없는게사람심리다.
여기에직분을주고칭찬까지곁들여지면그수렁에서빠져나올수있는사람은많지
않을것이다.
순진한사람들을그렇게악용하는건전치못한교회는이제부지기수다.
교인들을수단과도구로쓰고있다.
사실악화가양화를구축한지는이미오래전이다.

결혼한주부의경우,
가사가아닌다른일에깊이빠지는이유중에는부부사이의관계가그비중이제일크다.
남편,자식,가정에서만족을얻지못하기때문에대리만족의대상을찾게된다.
나쁜길로들어서기보다는교회에빠지는것이낫겠지만비정상이기는마찬가지다.
여기에는원만치못한부부사이의성생활도큰몫을할수있다.
자기의감정과응어리를풀수있는대상이’봉사’라는명분을통해찾아진다면거기에
몰두하고집착하는것은너무다분명하다.
사실거개의’빠져있는주부들’은비슷한사연을가지고있다고해서크게틀린말은
아닐것이다.

잘못된인간을바로잡아주는곳이교회다.
종교(宗敎)는근본을가르치는곳이기도하다.
동기는서로다르다해도,
가사에소홀할정도의집착을보인다면그들을교육하고깨닫게해서가정으로돌려
보내어정상적인신앙생활을하도록교정해주는게원칙이다.
그런데도거개의교회들이그잘못된집착을악용한다.
그게교세인줄알고그게교회의발전인줄알고있다.
물량화를지향하기때문이다.

지난설은주일과겹쳤었다.
대단히드문경우다.
그날우리부부가출석하고있는교회의담임목사께서는설교를통해
‘오늘은민족고유의명절인설이기때문에설교도짧게하겠다.
그러니예배마치는대로빨리집으로돌아가서가족들을만나즐거운시간을가지기
바란다.특히오래간만에만나는친척들에게마음을열고지내기바란다.’는요지의
말씀이있었다.
예배를마친우리는집안어른이계신큰댁으로갔고거의모든가족들이모여어른에게
세배하고즐겁게설음식을나누었다.
그런데,
교회권사인며느리가하나가보이지않았다.
교회에서’맡은일’때문에오지못했다는것이다.
평소그남편은아내를’광신자’라고부른다.
며느리본인도,그를붙잡고있는교회도뭔가그근본에서잘못된것이다.
다른식구들도모두크리스챤이지만1부예배를드린후모였다.
그게정상이다.

왜그렇게못하는가.
안하기때문이다.
그리고그런자기의태도가옳다고생각하기때문이다.
정말무서운신앙적독선이다.
주께서도못고치시는병이그런병이다.
지금한국의개신교교회에는그런불치의환자들로넘쳐나고있다.
‘어리석도다갈라디아사람들아,
너희가이같이어리석으냐성령으로시작하였다가이제는육체로마치겠는냐.’
갈라디아3:1,3.개역.
바울사도의장탄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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