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실안에서도별도로격리된작은방병상에누워있었는데몸에여러개의주사
바늘을꽂고있을정도로위험했었다.
물론치료는잘됐고,지금까지재발없이건강하게잘지내고있다.
그때나는처음으로오랫동안생소한중환자실의여러가지풍경을구경할수있었고
밖에서는잘모르는또다른인생들이그안에있다는사실을목격했었다.
정말그곳은또다른인생들의막장이었다.
특히환자가족들이겪는고통에대해새롭게깨닫게되었으며그후가족이중환자실에
입원해있는가정들에대해깊은관심을가지고살펴봤으며그런가정들이겪는고통이
우리의생각보다훨씬심각하고깊은것임도알게되었다.
어떤환자들은그곳에서위기를넘겨소생하고다른환자들은이미죽었지만여러가지
의료보조장치를달고동물적연명(延命)을하고있었다.
그들대부분은뇌사(腦死)상태이기때문에이미인격적인간은아니라는것을현장감
있게체험할수있었다.
의료보조장치들의발명이없었다면이미장례를치렀을사람들이산사람과죽은사람
중간상태로병상에얹혀있었다.
어쩌며그자체가’과학’이만들어낸비극이었다.
제한된잛은시간안에위생복을입고병상을찾는가족들은하나같이지치고지쳐
쇠잔한얼굴들이었고환자의회복이아니라운명(殞命)을기다리는장례식장의행열
같이보였다.
가족중한사람이중환자실에있다는것은의료보험이있다해도엄청난경제적부담이
되는것이고그상태가장기화되면한가정이파산하는것은시간문제다.
돈뿐아니라환자의가정전체가정상적인삶의리듬을잃게되고그파장은가족모두
에게부정적으로미치게된다.
중환자실의비극은그고통스러운상황에대해누구도입을열어결정적인말을할수
없다는윤리적문제에있다.
특히노인환자들의경우가더그렇다.
의료보조장치만떼면운명하는것을알기때문이다.
스스로의힘이아닌보조장치-기계의힘으로숨을쉬고있는’식물인간’이가지는
현실적인문제점이바로그것이다.
알지만,결단을내릴수없는천륜(天倫)의문제가되기때문이다.
특히이런경우,
그노인환자를직접적으로부양하고있는식구들보다는이미출가한딸들이더강경한
입장을가지고있는게일반적인현상이다.
그들에게는직접적인피해는없다.
그러면서도명분에는강한게그들이다.
거기에는엄격히말해환자에대한애착-사랑보다는그런기회에자기의입지를
극대화하려는나쁜저의가깔려있음을우리모두가잘알고있다.
그래서그것은중환자실의비극이되는것이다.
일부스칸디나비아나라들은,
오랜토론과언론의검증,검토를거친후선별적으로안락사(安樂死)을공식적으로
인정,이를허용하고있다.
단,본인의희망,가족들의동의,그리고전문의의의학적판단이객관적으로확보되는
조건을달고있다.
그들은’중환자실의비극’이환자개인에게인격적으로침해되는요소가있다는것과
가족이겪는고통,경제적부담등에대해정직한태도로임한것이다.
명분보다는실리를택한지혜로운결정일수도있다.
세계적인추세로보아앞으로안락사를인정하는나라들은계속늘어날전망이다.
어떤외국영화에이런내용이있었다.
대형관광버스가언덕밑으로굴러떨어져많은사상자가발생했다.
중환자중에휴가여행중인외과의사한사람이있었는데그는병원으로후송된후
수술실에들어가기전,자기가원해중요한’서류’에자필서명한다.
그서류의내용은,
수술후뇌사상태가되었을경우의료보조장치의부착을거부한다는것이다.
‘식물인간’이되는것을거부하는그는체험적으로중환자실의비극을알고있기때문
이었을것이다.
부인도자기남편이’식물인간’의비극을알기때문에그서류에서명했을것이라고
설명한다.
그외과의사는수술후사망한다.
여기에서우리가알수있는것은,
이미선진국에는그런’서류’가있다는것과그서류에서명하는깬사람들이있다는
점이다.
비극은장소를,때를가리지않는다.
단지그비극을비극으로받아들이는관습과그것을거부하는인간의차이가있을뿐이다.
이것은선과악의문제가아니라관습의차이,문화적차이다.
문제는그문화,관습이인간에게끼치는영향의차이이며,그것을받아들이는
사람들의생각의차이인것이다.
옛날에는성문법보다관습법이우선이었다.
그것은인간공동체가오랜동안체험적으로알게된지혜의집대성이었으며그기준이
사람과사람사이의원만한관계를규정지어주었기때문이다.
그러나우리가한가지간과해서는안되는핵심은관습법은인간의삶이아주단순했을
때만들어졌다는사실이다.
지금처럼복잡하고다양한삶의형태는관습법으로규정지을수없는수많은변수들로
가득차있다.
그리고그러한삶의형식과내용적변화는그속도가빠르기때문에도저히관습법으로
는해결하기가어렵다.
‘안락사’규정이그하나의예가될수있다.
그것은과학앞에서인간의존엄성을지키는결정이며고통으로부터그가족을지키는
결정이기도하다.
어떤질병은큰대가를치르고도치료될수있다.
또그래야한다.
그러나어떤질병,특히노인환자들의경우는아무리큰대가를치러도회복이어려운
경우가더많다.
의하적으로는이미죽은것이다.
단지,발달된의료장비때문에동물적인호흡기능만이유지되는것이라면이미
‘살아있는인간-인격’은아니다.
병상에누워있는중환자는자기의상태조차도깨닫지못하고있는식물적존재일뿐이다.
‘중환자실의비극’을극복해야하는첫번째이유는’인간존엄성’때문이다.
인간은인격적존재이기때문에그탄생도,죽음도경건해야한다.
장례절차가엄격하고엄숙한이유가그것이다.
이미죽은인격을몸뚱이만살려놓고’치료’라는명분을세운다면그건자칫인간생명에
대한모독일수도있다.
생명이흙으로돌아가는것은관습에앞서는섭리라는점을깨달아야한다.
주검이위엄을갖추어야하는이유다.
다음은가족들의자심한고통이다.
가족들이가지고있는규칙적인삶의리듬이깨지면생활전체가혼란스럽게된다.
모든일들은제때에맞추어이루어져야정상이다.
그게깨지면그때를맞출수없기때문에일탈현상이생기고그결과는’소외’다.
이소외현상은가족모두에게파급되고시채말로’쑥대밭’이되는것이다.
직장,학교,취미생활,운동,모임등에서의소외가그것이다.
다음이가족사이에생기는불화의문제다.
중환자실의의료비용은상대적으로높을수밖에없다.
입원이장기화되면더더욱그렇다.
경제적능력의유무와관계없이그부담은가족간의갈등을만드는소지가되며
돈이없는경우문제는더심각해진다.
기약도없이치료비를부담해야하는상황에서가족들은비록혈육간이라해도
이기적이되지않을수없다.
소득의분배보다부담의분배가본래더어려운것이고치료비라고예외는아니다.
더이상의치료가별의미가없다는판단이내려지면병원측은퇴원을결정한다.
타이밍으로봐서그때는한가족이경제적으로결딴난다음일경우가많다.
그파산은,중년이상의나이에생기는경우가많기때문에회복이어렵다.
벌써내려져야했던결정이피차의책임회피와관습으로인해’때"를놓쳐생긴결과다.
어찌이런가정이한둘이겠는가.
중환자실의비극은그만큼골이깊다.
이제모두가함께깊이생각해야할점은,
생명에대한존엄성의문제다.
생명이귀한것은더말할것도없다.
그러나’생명’을무엇이라고정의하는가하는것은별개의문제다.
인격적반응이가능한생명은끝까지치료해야한다.
그러나인격적반응이불가능한,뇌사상태의식물인간도’인격적생명’의범주로분류
해야하는가하는것은이미’법의학’의문제다.
시대적으로이문제는외면할수없는현실이며’중환자실의비극’은모든가정에서
일어날수있는현실이기도하다.
결코강건너불구경이될수없다.
거론자체를죄악시하는사고방식부터바뀌어야한다.
심각한문제인만큼계속거론해야하고토론하고검토해서긍정적인해법을찾아야한다.
교통사고로중상을입고병원으로후송된후,
수술실에들어가면서,최악의경우의료보조장치의부착을거부하는서류에서명한,
그외과의사는스스로자기의’인간생명의존엄성’을지킨깨어있는정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