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인간은누구나거의본능적으로행복을추구한다.
아무도불행하게살기를원치않기때문이다.
그렇게행복은우리들의삶에서아주중요한요소이며그행복을얻기위한인간의노력
역시치열하기까지하다.
그렇다면우리가그렇게얻기를원하는행복이란무엇인가.
‘생활에서충분한만족과기쁨을느껴흐믓해하는상태’가행복이다.
또는’복된운수’라고도표현하는데운수(運數)는인간의능력을초월하는천운(天運)
과기수(氣數)를뜻한다.
이두가지사전적인설명을합쳐보면하늘이도와느끼는만족과기쁨의마음상태가
행복임을알수있다.
인간의행복을위한노력도중요하지만운(運)도따라야한다는뜻이된다.
또한가지,
행복은만족과기쁨을’느끼는’feeling이라는사실이다.
그건,그래서주관적이된다.
행복은무엇보다먼저’주관적느낌’이라는사실에유의해야한다.

행복의조건과기준은동성양에따라,시대에따라조금씩은다른게사실이다.
삶의환경과역사가다르기때문이다.
사마천의사기(史記)송미자세가(宋微子世家)에오복(五福)이라는말이나온다.
수명(壽),재산(富),강녕(康寧),덕을좋아하는것(攸好德),제명에죽는것(考終命)
이그것이다.
이오복은우리선조들이’행복’의조건으로삼았던대표적인동양적기준이기도하다.
오래살고,재산이넉넉하고,건강하며,덕스러운삶을영위하고,객사하지않고
제집에서제명에죽을수있다면그게복-행복인것이다.
사기에는오복조다음에육극(六極)이나온다.
흉하게일찍주는것(凶短折),질병(病),근심(憂),가난(貧),악(惡),약함(弱)이
그것이다.
오복과육극의대조는행복과불행의대비를통해그상반되는개념을분명히하고있다.
오복과육극이비록전세대의설명이라해도그근본적인의미에서는달라지지않는다.

행복(또는불행)의가장큰속성은,
그것이계량화(計量化),계수와(計數化)될수없다는점이다.
예를들어어떤음식물의’맛’은상대적인느낌이기때문에객관적인계량화,계수화가
불가능하다.
행복도마찬가지다.
그조건은계량화,계수화할수있지만개인이주관적으로가지는’흐믓한느낌’feeling
은그렇게할수가없다.
1억원이라는돈의액수는계수화할수있는행복의’조건’이지만그조건에대해느끼는
인간의마음은사안에따라크게다를수있기때문에계수화할수가없다.
1억원은기쁨일수도있지만고통일수도있다.
여기에서분명해지는것이’소유’가곧행복은아니라는오래된진실이다.
참으로많은사람들이’소유’가곧행복인줄알고있지만그건오해일뿐이다.
소유는’편리’다.
소유는사람이사는수단의하나이지목표가될수없는이유가그렇다.
편리한것은좋은것이지만그것이곧행복은아니다.

지난3월4일,
서울성북동소재길상사에서학승법정은동안거(冬安居)해제법문에서이런얘기를
했다.
‘오래전인도를성지순례하면서밤기차를타게됐는데객차의통로까지사람이넘쳐나
빈자리를찾을수가없었다.
겨우빈자리하나를찾은게변소옆이었다.
밤이되자사람들이쉬지않고변소를드나들었고그때마다용변보는소리와지독한
냄새때문에견딜수가없었다.
그러나자정무렵이되자생각이바뀌었다.
그옛날구법자(求法者)들은이런기차도없이오로지자기의두발로험악한열사(熱沙)
를걸어오지않았던가.
생각이여기에미치자정신이번쩍들었고,불평은사라지고성지여행중가장큰선열
(禪悅),즉신앙적인기쁨을마음껏누릴수있었다.
그변소옆이바로내도량(道場-불도를공부하고수행하는곳)이었다.’
학승법정의사례를예로든것은인간이가지는행복중종교적희열이최고수준의것이기
때문이며인간이도달할수있는정점이거기이기때문이다.

많은사람들이’돈’이많으면행복할수있다고생각한다.
그런데체험적으로알게된것은,
돈이많아지면’정상적인일상’을살기가어려워진다는사실이다.
돈은사람의마음을바꾸게하고,생각하는방법을바꿔놓으며특히그육체는버릇이
아주고약하게달라진다.
돈을많이쓸수있다는것은결과적으로’쾌락’의추구로이어지기때문이다.
그래서일상을벗어나기시작하고나중에는돈에끌려다니는다른사람이되고만다.
다른한가지는,
돈은혈육끼리도싸우게하는사악한물건이다.
부부간,부자간,형제간이벌이는법정싸움은봐주기가민망할정도이며심한경우감옥
안에서까지그싸움은계속된다.
우리가많이봐온재벌가의쟁투가그런것들이다.
돈은너무없어도고통이지만너무많아도고통을주는요사스러운물건임에틀림이없다.
그래서돈은’적당히’가지고있는게행복해지는조건이다.

서양의정신사에서,
‘유토피아’-utopia는그들이설정하는,행복을설명하는하나의키워드다.
유토피아는본래두단어의합성어다.
희랍어에서’u’는없다(ou)는뜻과좋다(eu)는뜻을같이가지고있다.
topia는장소를의미한다.
따라서유토피아는이세상에’없는곳’이면서동시에’좋은곳’이라는뜻을함께가지고
있다.
outopia는없는곳이고,
eutopia는좋은곳이다.
말하자면’가장이상적인곳’,그유토피아는이세상에존재하지않는다.
그러나그좋은곳은인간이추구해야하는’이상향’인것이다.

행복자체는물건처럼존재하지않는다.
그건물건을통해인간이가지는느낌이다.
그느낌이’주관적’이기때문에상대적기준이나설명은전혀의미가없다.
악취가진동하는변소옆에앉아행복의극치인선열(禪悅)을느낄수있는게인간이며,
그런인간만이참행복을만날수있다.
행복은그런것이다.
그래서행복은비교되지않는다.

서울복지재단과학술원은,
서울을비롯,뉴욕,토론토,런던,빠리,베를린,밀라노,도꾜,베이징,스톨홀름등세계
10대도시별로시민각1000여명을대상으로행복도와시민만족도를조사한후
지난1월18일에그결과를발표했다.
100점만점에서울은63.6점으로최하위였다.
행복도,복지,문화,교육,생태환경,생활환경,시행정,공동체생활,자부심등모든
항목에서꼴찌였다.

한편,
영국의’신경제학재단’은2006년에
삶의만족도,평균수명,생존에필요한면적,에너지소비량등을바탕으로나라별행복
지수를조사한바한국은102위였으며,
영국’레스터대학’은,
건간상태,GDP,평균수명,교육여건등을바탕으로나라별행복지수를조사한바한국은
똑같이102위였다.
이조사들은행복자체가아니라행복의조건과기준을조사,계량,계수화한것이며
이는그자체로서큰참고자료가될수있다.

한국은지난20년간1인당소득에서10배의증가를보인경제대국이지만국민들이
느끼는’행복지수’에서는아직하위권에머므르고있다.
그만큼지금우리들의생활조건과환경은행복감을느끼기에크게미흡하다는뜻이다.
그이유를한마디로다설명할수는없다.
그러나분명한것은소득이10배늘었다해서그자체가행복의절대조건은안된다는
결론적사실이다.
물량화(物量化)가곧행복은아니기때문이다.
선대들이남긴좋은이야기가있다.
‘매화(梅花)를찾아세상을두루다니다찾지못하고집에돌아오니제집뜰에매화꽃이
피어있더라.’는게그것이다.

행복은’흐믓하게느끼는마음의상태’다.
feeling인것이다.
그래서행복은내안에서찾아지는것이지어디다른곳에놓여있는물건이아니다.
내가느껴행복하면그게바로행복이다.
그렇게행복은아주가까이에있다.
발견하지못하고있을뿐이다.

눈보라치는추운겨울밤,
편한마음으로따뜻한잠자리에들수있다면행복이다.
아침에건강한몸으로눈을뜨고맛있게아침을먹을수있다면행복이다.
직장이있고,
사랑하는가족과화목하게살고,
식구들이건강하고,
음악을듣고,책을읽고,매일매일즐거운마음으로운동하고
여행을다닐수있다면그게행복이다.
이일상을행복으로느낄수있는조건은오직하나뿐이다.
‘감사’가그것이다.
감사는인간으로하여금제분수를깨달아지키게하고탐욕에서벗어나게하며작은일에
최선을다하는정직한인간이되게한다.
그리고감사는감사하는사람에게’행복’을선물하는섭리의세계이기도하다.
이제창문을열고내집뜰에피어있는매화를내다보자.
행복이거기그렇게있는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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