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교육정도,문화수준,재산,취미,종교등모든것이그거처안에흔적을가지고
있기때문이다.
말하자면그공간은그곳에서살고있는인간을정의(定義)해준다.
반지하의단칸셋방에서온가족이함께사는열악한공간으로부터넓직한자기방에
온갖것을갖추고사는공간까지인간의거처는다양하고계층적이다.
한편,
같은크기의공간이라해도거기에거처하는사람에따라그모양과내용은천차만별이다.
모두가자기식대로살기때문이다.
그중가장개성적인공간의하나가서재-書齋다.
서재의역사는문자의발명과인쇄술에따라함께발전해온,정신사의한부분이다.
책이있음으로해서그책이보관되고읽혀지는공간이생겼기때문이다.
대량의필사본을소유했던수도원을제외하면일반적인개인의서재는1437년
구텐베르크의인쇄기가책을찍어낸이후에생겼다고보는것이옳다.
그이전에는비싼책값과책의희귀성때문에개인이장서를가진다는것은거의불가능
했으며또대부분의사람들이문맹이었던시대이기도하다.
역사적으로볼때,
위대한인간의정신문화는책을매개로발전했으며그것은글자가있었기에가능했다.
중국과아랍세계의앞섰던문명,문화는책의보급이제한적인시대의것이었기에
보편적인가치인정을받지못했다.
종이,화약,나침판을먼저만든것은중국이었지만그것을활용한것은서구였다.
구텐베그크의인쇄기는,
말하자면정신문화사에서하나의혁명이었다.
비로서지식은보편화될수있었고모든사람들에게전달될수있었던것이다.
그것은지금의인터넷과맞먹는세기적인사건이었다.
예를들어인쇄술이악보를찍어낼수있었기에귀중한음악들이기록으로보관되었고
지금우리는그악보를통해음악을연주하고감상할수있게된것이다.
서재도그런놀라운혜택의산물임은말할것도없다.
동서양과남여를불문하고,
한인간이자기의서재를가진다는것은그삶의내용에서최고의수준과위치에있음을
뜻한다.
그공간에서섭렵(涉獵)되는모든것은인류가남긴위대한유산들이기때문이다.
신학,천문학,수사학,수학,산문과시,희곡,철학,그리고음악과미술등글자와기록을
통해남겨진온갖지식과지혜가장서로쌓여있는곳이바로서재다.
서재의위대함과소중함은아무리설명해도그가지고있는의미와가치를다얘기할수가
없을정도다.
인간의위대한정신들이불꽃처럼타오른역사가곧서재의역사다.
이세상에존재하는모든개성적인공간중서재보다더뛰어난것은없다.
모든공간들은부분적특징을가지고있지만서재는그모든것의총화(總和)다.
가장위대한인간의정신작업은모두가서재에서이루어졌다.
인간의정신행활에서서재는그렇게중요하다.
그의미와중요성은앞으로도달라지지않을것이다.
서재는스스로자기의가치를가지고있기때문이다.
우리들의전통가옥구조에서는별도의서재가없다.
보통’사랑방’이라고부르는사랑(舍廊)은집의안채와는떨어져있는,바깥주인의거처
로서손님을접대하던공간이기도했다.
객당,또는외당이라고도불렸으며거기에는문방사우(文房四友:종이,붓,먹,벼루)와
함께약간의서책이있었다.
그사랑은엄격한의미에서의서재는아니었다.
말하자면전통적인의미에서의서재는우리일상에는없었다고볼수있다.
같은시기,
사구사회에서는현대적의미의서재가존재했다.
부르주아계층은경쟁적으로서재를가졌으며그것은가옥구조에서한부분으로정착했다.
영어에서서재를astudy,alibrary라고부르는것만봐도그공간의학구적용도는
분명해진다.
그유형에서서재는두가지로나눌수있다.
그하나가남에게보이기위한과시형이다.
가장큰특징은거의모든장서가한질(帙)로출판된고급장정의전집류들이며서가는
대부분유리창문을달고있다.
수시로꺼내보는책이없다는뜻이다.
그책중에는표지만인쇄된채속은백지인장식용도많다.
서재로사람을기만함은문맹이나무지보다몇배그죄질이나쁘다.
교활하기까지하다.
물론그런사기에속아넘어가는사말들도생각보다는많다.
같은부류이기때문이다.
서재주인의손때묻은책들로가득찬서가에는유리문이없고,한질로구입한책은
백과사전정도다.
특히다양한분야의사전류가많은것은그서재가공부하는공간임을알게해준다.
장르별로정리된음반이가득차있고한옆에는서재의주인이가지고있는취미를위한
물건들이소박한진열장에검소하게담겨져있다.
책상옆에나란히놓여있는컴퓨터는혹사된흔적을가지고있으며책상위에는글을쓰고
있는원고지가놓여있다.
음향기기와악기가그서재에있다는것은서재주인의격조높은생활을얘기해주고
있으며천정까지쌓여있는책들은그장르가너무나다양해그서재에서의종횡무진한
작업이어느정도인지를가늠하게해준다.
이런서재는돈으로일시에장만할수없는연륜이쌓여있기때문에더귀중하다.
예를들어,
가정주부인엄마가,아내가자기의책상을가지고있다면대접이달라진다.
그게앉은뱅이책상이나쓰지않는소반이라해도그위에시집한권만놓여있어도마찬
가지다.
그게서재의시작이다.
집이좁아서재가없다는것은자기의정신이죽었다는고백이나다름없다.
소파와TV가놓일자리는있는데서재가없다는것은그래서구차한핑계일뿐이다.
넓은집에도서재가없기는마찬가지다.
그필요성을모르고살기때문이다.
서재없이도잘살고있다고믿고있기때문이다.
한가정에서재가있는것과없는것은질적인차이가있다.
그두가정은전혀다른삶을사는것이다.
서재는인간을바꾼다.
다른사람,다른삶을사는인간이되게한다.
그래서서재가있는사람과없는사람은정신적으로서로다른인종이다.
아무리좁은집이라도정신이깨어있는사람은반드시서재라는공간을만들어낸다.
그러나아무리넓은집에살아도먹고,마시고,즐기는일만생각하는머리로는서재는
만들지못한다.
서재는돈으로살수있는물건이아니기때문이다.
그필요를아는사람만이만들어낼수있는공간이다.
지금모언론사의캠페인으로거실에서소파와TV를치우고서재를만드는작업이
시작됐다.
만시지탄은있지만정말좋은일이다.
한가정의거실이서재로바뀐다면그가정,가족의앞날은희망적이다.
그들은지금까지와는아주다른가정,가족으로바뀔것이다.
삶의내용과함께개인,가족관계가바뀐다.
껍데기만있었는데이제그안에내용이차기시작하는것이다.
TV에빼았겼던정신을찾을수있고그것이앗아갔던시간들을도로찾을수있다.
그리고그귀중한시간들은전혀다른기능으로서재가보상해줄것이다.
서재가있는가정은그래서정신적인귀족이다.
격조높은정신생활이기다리고있다.
소파와TV는바꾸기어려운,뿌리깊은습관의하나다.
그만큼개혁은어려울수밖에없다.
여기에서필요한것이’결단’이고그건’용기’의문제이기도하다.
오른쪽에놓여있던가구하나를왼쪽으로만옮겨도집안이달라진다.
그런변화가필요한것이우리네생활이다.
거실이서재가된다면그변화는가구하나를바꿔놓는정도가아니라집전체가뒤집히는
개혁이다.
그렇게할수있는가정과할수없는가정이있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