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있는 영혼.
나는수십년동안바다낚시를해왔다.
강원도고성에서남해안의갯바위를거쳐서해의덕적앞바다까지나가봤으니
참으로많은낚시터를돌아다닌셈이다.
크게나누어바다낚시에는세가지방법이있다.
우선모래사장에서의던질낚시가있다.
낚시채비에납을달고릴을단긴대로멀리던지는방법인데이때발끝에서팔을지나
대끝까지전부가활처럼휘어져야한다.
여기에대를들고뛰는속도까지합해져야채비를멀리보낼수있다.
정말운동량이대단한낚시방법이다.
내경우,80미터가최고였다.
100미터를던지는사람도본일이있다.
잔잔한날을기준해도앞에보이는파도의선을두개는넘어야입질이온다.

다음이배낚시,
배를타고수심30-50미터이상의바다까지나간다.
채비에단납이바닥에닿고,다시그것을들었다놓는고패질을계속하게되는데
익숙해지면80미터바닥까지도고패질이가능해진다.
그러나5년이하의경력으로는감도잡지못한다.
배낚시의장점은큰고기를많이잡는데있다.
지금은고기씨가말랐기때문에점점더멀리나가야한다.
배낚시의하일라이트는봄철에하는방어와고등어낚시다.
열개의바늘에5-6마리만물어도그요동은정말대단하다.
새벽4시에서오전11시까지한가마니를잡은일도있다.

다른한가지가갯바위에서의찌낚시다.
남해안에서많이하는방법이다.
바다나민물이나최고의낚시는찌낚시다.
찌를바라보는즐거움은철학에가깝다.
특히갯바위에서의밤낚시는감성돔이올라오는계절에많이하게되는데막장대에
전기찌를달고하게된다.
(지금의갯바위찌낚시는릴을달고밑밥까지주면서하는데그건정도가아니다
그런방법에는찌낚시의철학이없다.)
입질이시작되고전기찌가스물스물물속으로빨려들어갈때,전기찌의빛은화려한
꽃잎처럼환상적으로보인다.
나는밤에갯바위에앉아서하는찌낚시를제일좋아한다.
대를휘두르는간격때문에같이간친구라해도서로멀리떨어져자리잡기때문에
완전히혼자하는낚시가된다.
고기가놀라도망가기때문에불을켤수가없고,그만큼최고의낚시기술을요한다.

밤바다에의갯바위찌낚시는,
세상의모든것이’차단’되는신비한시간이다.
들리는것도,보이는것도없다.
그래서내가나를볼수있다.
내가내게이야기하는시간이다.
밤바다에서갯바위의찌낚시를해본사람은이게무슨소린지너무나잘알것이다.
들리는것이없고보이는것이없기때문에그만큼낚시에더집중할수있고낚시의
재미도만끽할수있다.
비로서,
내가평소에얼마나많은것을보고,얼마나많은것을들으면서살았는지를알게된다.
조용함으로서깨닫게되는성찰의시간이다.
낚시초보시절엔고기잡기에급급해서몰랐던세계가그것이다.
갯바위에홀로앉아밤하늘의별들을쳐다보고물위에서넘실거리는찌를보고있노
라면그게누구라도’근본’에대해생각하지않을수없을것이다.

지난15일,서울성북동소재길상사에서는봄정기법회가있었고학승(學僧)법정
(法頂)의말씀이있었다.
내가법정을존경하는것은그가가지고있는’종교’에대한생각이바르기때문이다.
그는성경도깊이연구하고있으며종교의근본에서차이점보다는같은점이많다는
‘상식’에접근해있는분이기때문이다.
‘이풍진세상과세태에떠내려가지않고제대로살려면보다단순하고간소하게
살아야한다.적게보고,적게듣고,꼭할말만하고자신의내면을들여다보면서
삶의의미를거듭거듭물어야한다.’
정말법정다운말씀이다.
특히그는인터넷에대한경고도잊지않았다.
인터넷의접속이인간의냄새가없고간접적이며일방적이고과다한정보들은인간의
자리를대체하고영혼의메아리가없는것이기에분명한공해라고도했다.
기다릴줄도,참을줄도모르는충동적인인간을양산한다는의미다.

풍진세상은바람과먼지로가득찬우리들의일상이다.
모두가그일상속에서하루하루를뛰면서살고있다.
지금의풍진세상은옛날의풍진세상과는사뭇다르다.
단순하고간소하게살도록사람을내버려두지않는다.
그어디에가든일부러눈울감기전에는보이는것들이너무나많다.
그볼거리들의대부분이상업주의의선전들이다.
광고의방법도천태만상,사람의눈이쉴수가없는지경에이르렀다.
인간이모여앉는모든곳에대형TV가있어상업주의의현란하고말초적인광고들을
쏟아낸다.
이제는모두가그것들에중독되어볼게없으면안절부절,불안해한다.
지금대한민국은세상천지에조용한곳이없다.
후진국답게전자기기의용도를제대로몰라그게어디든소리를크게해놓는다.
균형감각이없기때문이다.

대표적인것이확성기-라우드스피커의남용이다.
음악이뭔지를모르는젊은이들이죽기아니면살기로이러폰을귀에끼고
그날카로운쇳소리를듣는다.
그소리가청각신경에주는무서운피해를모르기때문이며나이들어난청이된다음
가슴을쳐도소용없다는것을알지못한다.
장동차의소음,온갖원동기의소음,스피커의소음,
귀를막기전에는그어떤사람이라해도온갖소리의공해에서벗어나지못한다.
세태를가장잘반영하는것이’말’이다.
표현이달라지고,목소리가커지고,알을들을수없는발음이나타나고있다.
그리고말하는속도가자꾸빨라지고있다.
‘말씀’은없고재잘거림만남는다.
잔망스럽다는게이런경우다.
지금사람들은쉬지않고지껄인다.
입을다물고있으면소외되지않을까하는불안감때문에말의홍수속에가담한다.
빈통이더요란한게바로이런경우들이다.

모두가경험으로알고있는얘기이긴하지만,
밖에서집안에들어서면우선TV부터켜놓는다.
보지도않으면서그것을켜는것은습관성중독때문이며,
뭔가보이고,소리가들려야안정되기때문이다.
뭔가가보이지않고,들리지않으면자기의내면을봐야하는데그런자기와마주치는
것이겁나기때문에TV를켜놓는다.
대답이준비되어있지않기때문에자신의삶에대한의미를묻지못한다.
TV에얹혀사는,종속적인일상만있지’자기것’이없기때문이다.
내면이무엇인지조차모르고있다.
표피와찰라에사는데익숙해진얄팍한인생에서한치도앞으로나갈수없는막장에
있기때문이다.
그게현대인이다.

우리나라인터넷사용인구는세계최고수준이며,
광속인터넷접속자도최고수준이다.
그런데,
사람들이인터넷으로무엇을하고있는가.
유명한미의회도서관,
대영박물관,루불,뮤제돌세,스미소니안,
그리고,NASA,MIT,WTO에접속하고있는가.
영어를모르기때문에불가능하다.
거의가게임과오락,음란물에매달려살며악플을올리는비열함까지가지고있다.
인터넷인프라는세계최고수준이지만그내용은’우물안개구리’다.
광속으로바뀌는모니터에익숙한만큼기다릴줄도,참을줄도모르는조급한인간만
양산된다.
사각의모니터가’인간성’을앗아갔기때문이다.
인간이인간성을상실하면’여백’을잃어버린다.
어떤기계에도’여백’은없다.
그건인간만의것이고가장인간적인것이기도하다.
‘꽉채우려하지말고여백을남기라.’는법정의말씀이그뜻이다.

마가복음13장32-37절에는,
하나님의나라가도래하는때는천사들도모르기때문에’항상,늘깨어있으라’는
말씀이두번나온다.
33절과37절에나오는’깨어있으라’는단어는우리성경에서는같은말로번역
되었지만그둘은서로다른의미의어휘다.
33절은agrupeno-wakeful,잠을자지않고깨어있는상태를의미하지만,
37절의gregoreo-watch,지켜보다,파수를본다는뜻이다.
결국32-37절의말씀은
‘우리의영혼이잠들지않고깨어있어파수꾼처럼그때를지켜보라’는의미다.
깨어있는영혼만이그나라에들어갈수있기때문이다.
세상으로부터깨어있기위해서는,
덜듣고,덜보고,말은적게하고자기의내면을들여다볼줄알아야한다.
바꾸어말하면도래하는하나님나라에대해깨어있는영혼으로’집중’하라는것이다.
세상의것을차단해야하는이유가그것이다.
정말귀담아들어야할경고의말씀이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