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세 (末世).
말세는정치,도의가어지러워지고쇠퇴해가는세상을이르는말이며하나의국가나
사회공동체가소멸해가는마지막과정을뜻하기도한다.
말세의사회적특징은전통적으로가지고있던정의,가치관,윤리와도덕이크게
허물어지고악으로규정했던온갖사회현상들이기승을부리는것이다.
사람들이우리사회를지탱하고있는옛것을버리고검증되지않은새것에현혹되는
것도같은현상이다.
진보는발전을위해필요한것이지만그것이사회에해악을끼치는것이라면거짓
이다.

말세는선과악,정의와불의,참과거짓에대한사람들의분별력이쇠퇴해지고보다
선동적인흐름에쏠리는현상도함께나타난다.
그래서위험한것이다.
같은용어로서의말세가기독교에서는조금다르게정의된다.
그것은그리스도의승천에서재림할때까지의기간을가리킨다.
이기간은세계가점점진보해황금시대를이루는것이아니라그리스도의재림이다가
올수록큰환란의시대가다가올것임을말하고있다.

구체적으로말세의현상을말씀하는부분이디모데후서3장1-9절의내용이다.
‘사람들이이기주의에흐르고,
돈을사랑하고,뽐내고교만해지고악담을하며
부모에게순종치않고감사할줄모르고경건하지않으며
무정하고무자비하며남을비방하고
무절제하고난폭하며선을좋아하지않고
배신하고앞뒤를가리지않고자만으로부풀어있고
하나님보다는쾌락을더사랑할것이며
겉으로는종교생활을하는듯이보이겠지만종교의힘은부인할것입니다.
이런자들을멀리하시오.’
바울사도의통찰력도놀랍지만더놀라운것은인간의속성이그근본에서예나지금
이나하나도다르지않다는점이다.
본문에나열된부정적인간상은2000여년이지난지금에대입해도크게어긋남이
없는내용들이다.

결국세상이말하는말세든,
교회가말하는말세든그’때’에대한개념은차이가나도인간세상에나타나는
말세의징조는같다.
인간들이더사악해지는것이다.
본문에나타나있는온갖악덕의합(合)이지금의우리사회다.
바울의예측은전부자기시대에서그원형을가지고있는내용들이다.
달라진것이있다면악의본질이아니라그것이나타나는형식과형태에서더발전한
것뿐이며지금은상업주의의현란한옷을입고있는것이옛과다를뿐이다.
8절에보면,
‘정신적부패와믿음의낙오’라는표현이있다.
겉으로는종교생활-신앙생활을하는것처럼보이지만실상은종교-신앙의능력을
부인한다는뜻이다.
그것이위선(僞善)이다.

이세상에서’말세’에대해그것이말세가되지않도록하는’힘’은어디에있을까.
그하나가교육이고다른하나가종교다.
두가지기능은인간을향상시키고구원하기때문이다.
교육은가정과제도적교육기관인학교로이어지고종교는개인의신앙생활을통해
말세적현상을극복하는수준으로나가게한다.
때문에모든시대를통해교육과종교의기능은변함없이자기자리에있어야한다.
이두가지가흔들리면그사회는희망이없다.
그몰락에는가속이붙게되고종당에는파멸하는것이다.
우리세대가격은동구(東歐)의몰락이그런것이다.

종교로서의기독교는그래서말세에대한자기본래의기능에서변함이없어야참된
종교다.
그것은흐르는물을역류하는기능이어야한다.
아닌것은아니라고말하고,
악은악이라고말하고,
잘못된것은잘못되었다고말할수있어야종교다.
그게부르심을받은사람들-에클레시아-교회의변함없는사명이다.
교회를’그리스도의몸’이라고부르는것은그말속에’십자가사건’이포함돼있다.
고난의길이포함된이름이다.
시류를따라함께흘러간다면고난의길은아니다.
십자가없이그리스도없고그리스도없이교회도없다.
교회가세상과함께하나님보다세상의것을더사랑한다면그것을어떻게교회라고
할수있겠는가.
지금은그런사이비들이더요란한소리로자기들만이교회라고외치고있는기만의
시대이기도하다.
악화가양화를구축하고있는것이다.

전단(傳單)이란말이있다.
속칭삐라(bill)라고도하며선전과광고를위해사람들에게돌리거나사람들눈에
잘보이는곳에붙이는선전물들이다.
물론그본래의용도는상업주의에서비롯된광고다.
지금은자극적인문장과색상으로이를제작,아파트각세대의출입문에까지붙여
놓는비열한수준에까지이르렀다.
바로얼마전까지도교회와삐라는서로무관한것이었다.
전단을뿌리는교회도없었고그건종교의영역과는상치되는물건으로알았다.
그런데,
외출했다돌아와보니우리집출입문복판에’행운권-초대권’이붙어있었다.
전형적인삐라였다.
어떤교회에서붙여놓은것인데,말하자면총동원주일에교회에오라는광고였다.
유명가수가와서노래부르고행운권-초대권소지자를위해서는금반지,김치냉장고,
선풍기,압력솥,커피포트등이상으로마련돼있다는것이다.

옛날에도전도주일은있었다.
그리고그때는새신자를많이인도한자기교회교인에게상을주는사례는있었다.
어떤때는친구가상을받게하려고동네사람들이한꺼번에등록하는일도있었다.
물론상을받은후엔썰물처럼빠져나갔다.
지금은,
내놓고’행운의상품이벤트’다.
할인점도아니고,써커스단도아니고,잡상인도아닌교회가행운상품을걸고사람들
을불러모으고있는것이다.
이걸어떻게교회라고할수있는가.
교회가해서는안되는’금기’를깨는이런일은개신교의타락이어디까지가있는지를
알게해주는징표다.
목적을위해서는수단과방법을가리지않는다.
참으로한탄스럽고참담한일이다.
도대체부끄러워할줄을모른다.

교회는사람들의영적생활이영위되는최고의공간이다.
말씀으로감동받고구원받는곳이지행운권을들고나타나김치냉장고를타는데는
아니다.
이세상에는변할수있는것들이대부분이지만끝까지변하면안되는것도존재한다.
그중하나가종교이며좁게는교회다.
교회는교회로서의모습이있고,
교회다운방법이있고,
교회임을드러내는이미지가있어야한다.
그게훼손되거나변질되면아무리외형이커도그리스도의교회는아니다.

‘성경은전부가하나님의계시로이루어진책으로서진리를가르치고잘못을책망
하고허물을고쳐주고올바르게사는훈련을시키는데유익한책입니다.
이책으로하나님의일꾼은모든선한일을할수있는자격과준비를갖추게됩니다.’
딤후3:16-17.공동.
말세의흐름을역류하는교회의참모습이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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