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드 의 노예.
버스를이용하는경우,
나이많은노인들때문에그운행속도에상당한차질이생기는것을자주목격하게
된다.
우선자리에서일어나출구까지오는데시간이걸리고,내릴때도동작이민첩하지
못하기때문에젊은이들에비해두배이상의시간이소요된다.
물론버스를탈때도마찬가지다.
버스운전자와승객들의불만스러운얼굴을보면노인들에대해가지고있는그들의
생각을읽을수있다.
모두가바쁘게움직이는시간에노인들의굼뜬행동은걸림돌이될수밖에없다.
스피디한시대에맞지않는계층인것이다.
그들도젊었을때는민첩했지만나이든지금,빨라진생활의속도에적응하지못하고
있는것이다.
어찌버스뿐이겠는가.
세상은그렇게달라졌다.

1999년마이크로소프트의빌게이츠는’생각의속도’라는책을펴낸일이있다.
그는앞으로다가올10년이과거의50년보다더빠른속도로생활전반에서혁명적인
변화를일으킬것이라고주장한다.
모든사람들이컴퓨터,인터넷,휴대폰을소유하고그것을일상적으로사용하게
됨으로서각종정보소통의속도가빨라지게되고이에따라우리의일상은물론,
사회적변화의속도도것잡을수없게빨라진다는것이다.
말하자면21세기의정보화사회에살고있는사람들은시간-속도와의싸움을치르면서
살수밖에없다는것이다.
빌게이츠의이예측은나름대로근거를가지고있는주장이기도하다.
우리모두가상대적으로전보다는더빨라진일상을이미살고있다.
정보가빠르게소통되고확산되는것은그정보를접한사람까지속도감을가지게
하고실제로아주바쁘게살수밖에없다.
거의쫓기다시피뛰어다니고있다.

가장큰변화의하나는,
과거와의단절이다.
시속300키로이상으로달리는고속열차에서는주변의풍경을제대로볼수가없다.
워낙빨리지나가기때문이다.
다른한가지는미래를향한조급하고무분별한접근이다.
미래의기술에대한성급하고초조한기대는현재,지금을제대로평가하지못하기
때문에과거에대해서나미래에대해그것을제대로평가,분석하는기능을상실하게
된다.
결국과거와미래에서단절,고립된사회는오직현재만을중시하게되며따라서현재
중심적인사회문화가생길수밖에없다.
이런상황에서는개인,가정,사회공동체모두가장기적이고지속적인기초적가치
보다는단기적이고일시적인착시적가치만을추구하는,무게를상실한사회가된다.

지금의우리사회가전통적인가치나관습을멀리하고표지적이고찰라적인쾌락을
더추구하는현상이바로그런것이다.
여기에상업주의까지가세하면상황은더나빠질수밖에없다.
겉으로는모든것이더현란해지고있어도그속의내용이충실치못한’단절된사회’
에우리고살고있다.
디지털만있고아날로그는없다는태도다.
그러나우리가꼭알고있어야할것은인간의세상에는디지털화할수없는아날로그의
세계도있다는것과모든지속적인가치는오히려그아날로그속에있다는사실이다.
모니터의영상이세상의모든것을다보여주는것은아니다.
보여줄수도없다.
종이신문,종이로된책,손으로쓰는편지가존재하는문화적이유가그것이다.
사람들의손목을보라,모두가아날로그식시계를차고있지않은가.
스피도-속도가세상의모든문제를다해결하는것은아니다.
과거,현재,그리고미래는그것이단절이아니라연결될때의미를가지는것이며
인간은그의미안에서사는정신적존재다.
빠르다는것은효율적일수는있지만그것이사람에게반드시이익이되는것은결코
아니다.

스피드-속도는인간을부추기는속성이있다.
경쟁심이바로그것이다.
스피드에서뒤지지않기위해서는정석대로정도를가기보다는편법,손쉬운해결책을
먼저찾게된다.
아름답고균형있는몸매를만들기위해오랜시간꾸준히운동하고식이요법을쓰기
보다는성형수술에매달리고자칫죽을수도있는잘못된다이어트방법을택한다.
당장결과가보이는편법을선호하는것이다.
요가나템풀스테이같은시간과장소가따로필요한방법보다는정신안정제나
향정신성약품을복용,쉽고빠르게심리적안정을찾으려한다.
그것이중독성으로이어진것이’마약의세계’다.
마약이인간을어떻게황폐화시키는지는긴설명이필요없다.
정석,정도가아닌편법은반드시그대가를치르게하는게변하지않는섭리다.
섭리는예로부터지금까지스피드와는무관한,대단히초월적인힘이다.
누가그것을부정하겠는가.

인간은인류가성취한여러가지성공의누적인문화속에서산다.
그누적된모든것은체험되고,검증된가치들이다.
그가치들이인간을인격적존재가되게하는힘이다.
스피드-속도는그가치를폄하하거나과소평가한다.
이잘못된사회풍조는지속성과성실성이생명인인간관계를저해하고인간의뛰어난
기능인창조적활동을우습게본다.
속도경쟁에급급한사람들은흡사케멜레온처럼그표정을바꿔가면서시간이라는
늪에빠져허우적거리고있다.
모든늪은몸을움직일수록더깊이빠지게되며그끝은죽음이다.
인생은단하나의측면만가지고있는단순한것이아니다.
그다양성은놀라운것이다.
그것도모른채오직스피드-속도에만매달려사는동안개인도,가정도,사회도황폐해
질수밖에없다.
지금의우리사회가제정신을가지고살기가어려운게그때문이다.

스피드-속도는전통적으로인간집단의기초단위인가정을파편화한다.
가정을지켜온사랑,결혼,부모와자식의관계가붕괴된다.
대표적인사례가결혼과이혼이정비례하고있는우려할만한현상이다.
선택에서신중하지못했기때문이다.
자식들도일찍컴퓨터에함몰되기때문에조기에부모의영향권을벗어난다.
이런현상은인간이인간답게살기위해전수받아야하는도덕,윤리,규범에대한
학습이이루어지지않아어른이돼서도자기밖에모르는,더불어살수없는굴절된
인간이되게한다.
지금우리사회에는이런부류의인간들이양산되고있다.
그숫자는산술급수가아니라기하급수로늘어날것이다.
속도에대한피해중가정의붕괴는가장두려워해야할현실이다.
가정이파편화되면사회공동체-국가의기반이약해지기때문이다.
노인들이설자리가없는사회는다음세대에같은일이되풀이되는악순환에서벗어
날수없다.

지금과같은첨단의과학시대를살면서,
스피드-속도를부정할수는없다.
부정해서도안된다.
긍정적으로그것은발전의한모습이기도하다.
그러나,
아무리속도에잡혀살아도잠을자지않는육체는없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로진화된모든유전적과정은절대로
변하지않는육체적리듬으로남아있다.
3백만년이상걸린진화의결과다.
어떤스피드도그리듬을거스리지는못한다.
거스리면육체는죽는다.
생명이끊어지는것이다.
그래서필요한것이’지혜로운균형잡기’다.
디지털세계와아날로그의세계에대한인간예지의균형감각이그것이다.

그중하나가’찌’다.
찌를지켜본사람은이게무슨소린지금방알것이다.
찌낚시의묘미는찌를기켜보는것이다.
찌는철학이고,찌는질문이고대답이다.
찌가서있는고요와정체는절대적인아날로그의세계다.
찌를지켜보는인간의정지된긴장은균형의극치다.
낚시장비의기계화는이균형을깨기때문에배격해야한다.
느리다는것,
정지해있다는것.
그리고그속에서또다른대답을들을수있다는것은인간만이가지는놀라운능력
이다.

우리가이무서운속도의세계에살면서도깨지지않는것은균형을잡을줄아는지혜
때문이다.
육체가가지는’규칙성’을거역하면안된다.
모든속도는그리듬안에서소화해야한다.
이세상의모든것을디지털화할수는없다.
디지털은효율이고기능이지만,아날로그는가치다.
가치가기반이될때비로서효율도의미를가질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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