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의 근본.
나는14개월동안카톨릭수지침학교를다니면서대단히소중한체험을했다.
그들과함께미사에참석한것은물론,피정까지같이했다.
사제-신부들의위계가군대이상으로엄격한것도직접봤으며그들이목회자보다는
관리자에가깝다는느낌도받았다.
그들은권위주의적이었으며교인들과는반드시일정한거리를유지했다.
하향식조직으로서의로마카톨릭교회의견고한틀이생각보다더전통적임도알수
있었다.
다른하나의체험은개신교도를대하는천주교인들의경직된태도였다.
드러내놓고차별하는것은아니지만가까이하지않으려했으며아주은밀하게자기들
세계에들어갈수없도록배제했다.
심한경우,자기들과똑같은대우를받으려면’개종’하라는요구를하기도했다.

1517년의종교개혁이후신,구교는서로를원수보듯했으며검증되지않은피상적인
이유들때문에멀어진것이사실이다.
심한경우천주교에대해공개적으로비난하는개신교의목회자도있다.
그런교회의교인들이반천주교적입장을가지는것은당연하다.
카톨릭교회와개신교의해묵은이잘못된감정은양쪽교회지도자들의잘못도크다.
종교개혁이전까지의기독교교회는카톨릭교회-CatholicChurch다.
초대교회로부터그때까지그리스도의몸된교회는글자그대로’보편적인교회’였다.
1517년이후.
한쪽은로마카톨릭교회-RomanCatholicChurch-로,
다른한쪽은프로테스탄트교회-ProtestantChurch-로갈라섰다.
그러나엄격히말하자면로마카톨릭교회교인도,개신교교인도똑같이크리스챤이다.
크리스티아누스가원어인그의미는’그리스도라하는분을따르는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안디옥사람들이붙여준이름이기도하다.

기독교와불교의갈등도오래동안계속됐다.
분명한이유도없으면서서로가적대시해온게사실이다.
불교종단간의적대적관계는문외한에게도기이한것이다.
사찰의주지자리를놓고물리적으로격돌하는모습을보면전혀이해가되지않는다.
같은대상을함께모시고있는같은종교의교인들이빚어내는갈등은종교자체에
문제가있기보다는결국교인-인간들이부족하기때문이다.
종교는가지고있되그근본가르침을모르기때문이다.

유대교,기독교,이슬람은세게3대종교다.
유대교와기독교는야훼로,
이슬람은알라로,같은신의이름을서로다르게부르고있다.
이세종교는똑같이그뿌리가사막에있는고등종교다.
유구한전통과함께차원높은경전도가지고있다.

나치가600만의유대인을학살했을때,
기독교와이슬람은침묵했고외면했다.
같은아리안족인이란은독일에대해적극적으로협조하기까지했다.
전대미문의참극이벌어진현장에서모든이웃의크리스챤과이슬람은모른채했다.
지금의중동은화약고다.
사람이자기몸에폭약을달고사람으로가득찬버스안에서자폭한다.
유대인과무슬림의전쟁은종교의이름으로치러지고있는현대의참극이다.
언제어떻게끝날지는아무도모른다.
9.11테러는,
이슬람세계와기독교문명권의첨예한대립이비져낸비극이다.
수천명의무고한다국적사람들이이유도모른채죽어간것이그테러리즘이다.
아랍과서구문명은지금이슬람과기독교세계라는구도로정착하고있으며전혀
해결의실마리가보이지않는다.
여기에이슬람의낙후와가난이만든열등감과적개심까지감안하면문제는더복잡해
진다.

인도의만신전(萬神殿)에들어가본사람이라면그무지앞에할말을잃을것이다.
그건아무리봐도미신이지고등종교는아니다.
인도에서의힌두와무슬림의충돌은백만단위의인명피해로이어진다.
인도의동고트산맥에위치한산간마을’꾸밀리’,
마침힌두교의축제기간이다.
대형스피커를통해거대한천막에서흘러나오는그소란스러운집회소리는밤새이어
졌고그어떤호텔방도그엄청난소리를막을수없었다.
전혀잠을잘수가없었다.
한달간을그렇게지낸다는것이지배인의설명이다.
그게정말인간을위한종교일까.
종교를빌미로유혈충돌이일어난다는것은인간이그종교의명분을악용하기때문
이다.

종교란무엇인가.
宗敎는’근본을가르친다’는뜻이다.
보이는것에대해더본질적인보이지않는것을,
인간이축생이아닌인격적존재가되기위해,
사람과사람사이의관계가사랑과평화로이어지게하는가르침과훈련을위해,
먹고마시는것을뛰어넘는숭고한정신과영혼의세계에대한깨달음을위해,
피조물인인간이창조주와접촉할수있는통로의제시를위해,
궁극적으로는인간을’구원’하는것이종교의기능이며역할이다.
선과악,지금과다음세계에대한분명한계시가바로그것이다.
서로다른것들을더큰그릇에담아하나되게하는게고등종교다.
미신은그반대다.
미신은가장이기적인심성이바탕하기때문이다.
샤머니즘이무서운게그때문이다.

모든수피(sufi)시인들가운데가장위대한잘랄앗딘루미(Jalalad-DinRumi1273년
에사망)가처음만들어사르다나(Sardana)의대쉐이크인이드리스샤(IdrisShah)가
설명한우화가있다.
페르시아인,터키인,아랍인,그리스인이렇게네사람이먼나라를여행하던중
마지막으로수중에남은동전한닢을어떻게쓸것인가를놓고설전을벌이기시작했다.
네명모두는음식을사자고했지만,
페르시아인은안그르-angur를,
터키인은우줌-uzum을,
아랍인은이납-inab을,
그리고그리스인은스타필-sarfil을먹고싶다고했다.
논쟁은각자가양보하지않고자기주장을계속해내세우면서가열되었다.
그때그들의옆을지나가던한언어학자가그들이싸우는소리를듣게되었다.
학자는말했다.
‘동전을내게가져와보시오.내가당신들모두의희망을충족시켜주도록하겠소.’

동전을받아든학자는곧가까운가게에가서포도네송이를사서네사람에게한
송이씩나눠줬다.
‘이게내가사려고했던안구르야.’페르시아인이외쳤다.
‘하지만우리는이것을우줌이라고불러.’터키인이대답했다.
‘당신은바로나에게이납을갖다줬소.’아랍인이말했다.
‘아니야이것은이납이아니라스타필이라구.’
마지막으로그리스인이말하는순간.
그자리에있던사람들은각자가원했던것이사실은같은것이었음을깨달았다.
다만다른사람에게자신이원하는바를설명하는방법에대해몰랐을뿐이었다.
이언어학자가바로수피이며(sufism-이슬람의매우다양하고복잡한신비주의적
전통을가리키는용어)인류의종교가다른곳에서다른이름으로불리지만실제로는
한대상을지칭한다는사실을가르쳐준다는것이다.

‘성령께서평화의줄로여러분을묶어하나가되게해주신것을그대로보존하도록
노력하십시요.
그리스도의몸도하나이며성령도하나입니다.
이와같이하나님께서여러분을당신의백성으로부르셔서안겨주시는희망도하나
입니다.
주님도한분이시고믿음도하나이고세례도하나이며만민의아버지이신하나님도
한분이십니다.
그분은만물위에계시고만물을꿰뚫어계시며만물안에계십니다.’
에베소서4:3-6.공동.
예를들어카톨릭교인과개신교교인이적대적이라면그들모두가크리스챤은아니다.
하나인것을둘로쪼개고있기때문이다.
신앙,신학이아니라인간의잘못된감정으로그렇게하고있기때문이다.
위의본문은바울이감옥에서에베소교인들의분열을막기위해쓴옥중서신의간곡한
내용이다.
바울이간곡하게당부하는이유는,
‘하나님이불러주신목적에합당하게사는길(1절)’이그것이기때문이다.

세상의모든종교가자기의신을어떻게부르든결국그분은내용적으로는한분
절대자이시다.
상대적인간이믿고의지하는절대자다.
그절대자에게서나오는것이진리다.
진리안에서자유하라는유명한성경구절이바로그설명이다.
진정한의미에서종교를가진사람이라면모두가하나인것을아는사람이다.
깨달았기때문이다.
梵語(범어)는산스크리트(Sanskrit)어다.
고대인도의언어로서그정교한정서적구조는사변적인그리스어를능가한다.
붓다-Buddha는산스크리트어이며우리말로’부처’다.
부처는’깨달은자’라는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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