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자는 알아들으라.
대개의경우,
우리들은’초대교회’에대해생각할때지금의우리들’교회’를기준으로판단한다.
그조직에서,예배형식에서,그리고우리의경전인성경에대해서그렇다.
그러나지금부터2000여년전의초대교회는우리가생각하는’교회’의모습과는전혀
다른소박한공동체였다.
예루살렘을중심으로하는초기공동체는거개가유대인크리스챤들이었고바울이
개척한소아시아의교회들은이방인들로구성되어있었다.
지금의안디옥,데린구유,가파도기아,카타콤에그흔적이남아있는초기교회들은
그규모가아주작고공간적으로도기십명밖에수용할수없는크기다.
특히서신들을통해알수있는것은’가정교회’가많았다는점이다.
그렇다면그들은기독교의경전인성경,특히신약성서를가지고있었을까.
놀랍게도그들은’신양성서’자체를모르고있었다.
왜냐하면그때에는신약성서자체가존재하지않았기때문이다.

찬미와기도,그리고말씀으로예배를드린것은분명하지만그말씀은살아계신주의
가르침을직접들은자들이자기가기억하고있는말씀을전하는수준이었다.
바울자신도임박한주의재림을믿어의심치않았고심지어결혼을금하기까지했다.
바울뿐아니라초대교회는모두가임박한재림을기다리고있었다.
이런환경은주의말씀에대해그것을기록으로남겨야한다는필요자체를없게했다.
그러나재림은지연되었고말씀을직접들은사람들도세상을떠나기시작했다.
‘어록’이나타난배경이그러하다.
복음서가기록되기이전,주의말씀인이어록은예배에서사용되고보존되었다.
지금우리가가지고있는’도마복음’이대표적인어록의하나다.

신약의복음서가형성되기시작했을때도이어록들은가장기본이되는자료의위치에
있었으며서지학적으로’Q자료’로분류된다.
최초의복음서인’마가복음’은이어록과다른자료들로편집된최초의신앙적
‘예수전’이다.
이어마태와누가는마가복음을텍스트로하고자기들이채집한자료들을보태어
다른복음서를편집했다.
우리가공관복음(共觀福音)이라고부르는마태,마가,누가복음은서로다른기독교
공동체가자기들의신앙적입장에따라편집한’예수전’인셈이다.
자료의선택에서,그해석에서그들은분명히서로다른입장을가지고있다.
요한복음은주후1세기경에쓰여진것으로앞의공관복음서들과는상당히다른,
독특한내용을가진다.
그것은그레꼬,로망의세계에대해,헬레니즘문화에대해그리스도를사변적으로
해석하는책이다.

기독교최초의신약성경책은,
율법과믿음이라는첨예한문제에대해믿음의절대적우위를강도높게주장하는
바울의서신인갈라디아서다.
27권의마지막책인요한계시록까지포함해서신약성경이정경으로받아들여진것은
주후397년의카르타고교회회에서였다.
실로신약성경은4세기동안온갖시련과검증,논쟁을거쳐27권으로압축되었다.
정경과외경,위경까지의수도없이많은필사본에서27권을압축하는작업은그렇게
힘들었고논쟁도극심했다.

마태복음이기독교공동체-교회에서읽혀진것은아무리빨라도주후60년전후다.
그런데마태복음안에는(다른책에서도마찬가지지만)우리가눈여겨읽어야할중요
한표현이있다.
24장15절에보면,
‘그러므로너희는예언자다니엘이말한대로황폐의상징인흉측한우상이거룩한
곳에선것을보게될것이다.(독자는알아들으라)’공동.
성경책을직접소유하고,
그것을읽는현대인크리스챤들에겐’독자는알아들으라’는표현이자기를향한
말씀으로이해될수있다.
독자(讀者)는읽는사람이니까.

그러나주후60년대의독자는,
anaginoskon-으로’낭독하는자’이다.
즉,그때공동체에모인크리스챤은거의모두가문맹이었다.
따라서그때의성경은’낭독되는책’이었다.
마태복음필사본도파피루스아니면양피지였을것인데당시그가격은엄청난것이
어서보통사람은소유할수가없었다.
신약학자중에는예수도문맹이었을것으로주장하는이들이있다.
예수의열두제자중회계를맡았던이스가리욧사람유다만이글을읽고쓸수있었다.
나머지는모두문맹이었다.
당시갈릴리어부라면당연한일이다.

이러한현상은예루살렘의마태공동체뿐아니라이방인교회도사정은같았다.
성경각권의필사본은그자연스러운수요때문에생기기시작했고특히바울은
자기의서신을통해편지들을필사해서다른교회에보낼것을당부하고있다.
필사는한사람이낭독하고여럿이받아쓰는작업이었다.
그리고그들대부분은전문가가아니었다.
지금남아있는수천개의필사본중똑같은것이단하나도없는것은한사람의낭독을
듣는사람에따라서로틀리게기록했기때문이다.
특히헬라어코이네가모국어가아닌경우잘못필사되는비율은높아질수밖에없다.

다음으로일어난일이,
필사과정에서생기는가필(加筆)이다.
전혀나쁜의도가아닌,그내용을돋보이게하기위해필사자가해설을덧붙인경우도
부지기수이며같은말씀에대해자기의신학적,시앙적입장으로해석하는일도
비일비재했다.
여기에더해진게셈족(族)의과장법이다.
‘골짜기마다돋우어지며산마다,작은산마다낮아지며고르지않는곳이평탄케되며
험한곳이평지가될것이요야훼의영광이나타나고모든육체가그것을함께보리라’
이사야40:4-5.개역.
하나님의영광과위엄을설명하는방법에서비현실적인과장법을쓰는것이다.
이런표현은너무나일상적인것이었고신약의기록에서도예외는아니다.

‘예수가숨을거두자,
성전휘장이두폭으로찢어지고땅이흔들리며바위가갈라지고무덤이열리면서
잠들었던많은옛성인들이다시살아났다.
그들은무덤에서나와주께서부활하신뒤거룩한도시에들어가많은사람들에게
나타났다.’마태27:45-56부분.공동.
십자가사건의우주적해석인것이다.
우리가한가지이해해야할것은당시이런과장법은일반적인관행이었다는점이다.
성경을문자가아니라의미로읽어야하는가장큰이유가거기에있다.
엄격히말해이러한성경의필사작업은구텐베르그에의해,개량활자에의한
’42행성서카트리콘’이인쇄된1460년대까지계속되었다고봐야한다.
이초판성서한권의지금가격은530만불이다.

성서필사에서가장독특하고,귄위있는필사본은중세수도원에서수사들에의해
만들어졌다.
인류문화사에서수도원이기여한공로는그크기를가늠하기조차어렵다.
전통적으로서구의귀족들은자녀중하나를하나님께수도사로바쳣고수도원운영을
위해막대한헌금을했다.
그수도원을통해인류의정신문화는보전되고기록되고전수된것이다.
그중하나가성경이며전문교육을받은필사직수사들에의해비로서흠정역(欽定譯)
-KingJamesversion-성경의기초가마련될수있었다.
1611년제임스1세에의해표준영어로번역된이성경은장중하고미려한문체와어구
를구사,영어영문학에지대한영향을끼쳤다.
이는루터의성서독일어번역이독문학에끼친영향과같은것이다.
성경의한글번역은우리의문맹퇴치에서결정적인역할을했으며아녀자들의눈과
귀를열어그사회적위상을바꾸기까지했다.
모든초기교회들은신자들이한글성경을읽을수있도록한글공부반을운영했다.
전세대여성들중국민학교보다는교회의한글공부반출신이더많은이유가그것이다.

지금우리들손에들려있는한권의성경,특히신약성서는참으로오래동안수많은
사람들의피와땀을통해우리에게남겨진신앙의유산이다.
그가치와무게는세상에비교할것이없다.
성경은,
가급적이면새번역을읽어야한다.
성경이글자로읽는책이아니라그의미로읽는책이기때문에우리가사용하고있는
오늘의언어로다시번역되고,그것을읽어야그뜻을온전히파악할수가있다.
‘읽는자는알아들으라’
그때는회중앞에서성경을낭독하는사람에게주어진말씀이지만지금은성경을읽는
우리모두에게주시는말씀이다.
주께서도말씀하셨다.
‘귀있는자는알아들으라.’
성경은세상에주어진하늘의책이다.
그래서성경을읽지않고예수를믿는다는것은거짓믿음이다.
아직도서지학적으로는많은문제점이있다해도그의미에서는유일하고절대적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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