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유감.
나는30여년이상바다낚시를했기에전국의유명낚시터는거의다녀봤다.
고기만잘잡힌다면어떻게든짬을내어그곳을다녀오는열성파이기도했다.
뿐만아니라낚시기술을체계적으로익히기위해국내는물론,일본의낚시책까지
정기구독했으며장비의모든부분에대해끊임없이연구하고개선하는일에도
게으르지않았다.
채비만조금바꿔도조과(釣果)는아주큰차이가나는게낚시다.
때문에채비연구에열심이었고줄과바늘도계속바꿔가면서더기술적인낚시를
하려고노력했다.
단골로이용했던낚시배의선장들이내게붙여준별명이두가지였는데,
‘국제신사’와’기술자’가그것이다.
전자는쓰레기를남기지않고주변을정리한데서붙여진것이고후자는대개의
경우일행중가장큰고기와조과에서늘앞섰기때문이다.
내낚시기술이인정받은것이다.

70년대초창원공장에서근무할때,
여수에서조금나가는무인도에감생이가많이붙었다는정보를입수한나는
낚시꾼두명을부추겨승용차를가지고마산을떠났다.
남해고속화도로가끝나고여수가는진입로에들어섰을때나와일행은우리들의
눈을의심했다.
그건아스팔트길이아니라그대로누더기였다.
그렇게낡고못쓰게된도로를처음봤으며아직도우리나라에그런도로가있다는
사실이믿어지지않았다.
그러나그건엄연한사실이었고여수시내를지나우리의목적지인어촌을향해
가는길은비포장이었고전혀손질이안된옛길그대로였다.
주변엔오래간만에보는목화밭들이있었고우리가도착한작은어촌은가난과
낙후,그자체였다.
지금까지동해안,주로경상남북도해안에서봐왔던어촌들과는세대를달리하는
풍경이었다.
같은나라안에서어떻게이런차이가날수있단말인가.

우리가그곳에서낚시하면서겪은인심은결코다른곳에서는체험할수없는순수
하고아름다운것이었다.
그곳을다녀온후비로서나는전라도사람들이가지고있는분노와적개심을이해
할수있었고심정적으로그들편에서게됐다.
그들이군사독재정권에대해가지고있는감정은막연한것이아니라구체적인
사실에뿌리를두고있는현실적인것임도알수있었다.
그들이가지고있는그분노와적개심은김대중이라고하는한정치인을매개로
표출된것은다른길이없었기때문이다.
개인적으로인간김대중을좋아하고안하고가문제가아니라전라도가살기위해
김대중이필요했다.
그김대중이대선에서낙선했을때전라도는울었다.
자식을더많이낳아표를만들지못한것을한탄했다.
그좌절의시절,전라도의분노와적개심은안으로타들어갔다.

그리고김대중은재기했고,대통령이됐다.
전라도는환호했고어깨를폈으며서울한복판에서전라도사투리는더힘을받았
다.
전라도는비로서한(恨)을푼것이다.
그건필요한일이었고반드시통과해야할정치적절차이기도했다.
그후김대중은’일신의영달’에더몰두했지만정치적매개로서의자기의소임은
다한셈이다.

이제다시정치의계절,
후진국답게정치꾼들의이합집산이시작됐다.
우리의비극은아직진정한의미에서의정치인을가지지못한데있다.
정치인과정치꾼은전혀다른개념이다.
정치인은자기의이념(理念)을정치라는수단을통해성취하려는철학을가진
개인이지만정치꾼은정치라는수단을통해개인의이익,영달을꾀하는기생충
들이다.
정치꾼에게국가나민족은없다.
눈앞의이익이전부이기때문에명분은아무의미도없는것이다.

현대정치에서,가장중요한것은언제나유권자-표(票)다.
표는민주주의꽃이며민주정치의핵심적인힘이다.
동시에표는정치의수준이며그잘못된선택의결과는재앙이될수있다.
선,후진국이갈라지는분수령엔언제나이표의질(質)이자리한다.
자기의정치적소신을가지고행사하는표와쏠림현상에따라흘러다니는표는
결코같을수가없다.
혈연,학연,지연이라는후진적인고리에걸려행사되는표는죽은표보다더무섭다.
그결과가얼마나참담한것인지는이제충분히경험했다.

2003년민주당을깨고나간열우당은지난3년동안모든선거에서기록적인참패를
당했다.
그들이국가에끼친재앙은이번대선을통해서도심판받을것이다.
열우당간판으로는전혀승산이없다는것은그들스스로가잘알고있다.
그래서그들은정치적으로살아남기위해다시한번우리들을속이려고변신을꾀하
는중이다.
내달5일,83명의현역의원이옷을바꿔입고새로운정당을만든다는것이다.
사람은그대로이고이름만바꾼다는이잔재주는손바닥으로햇볕을가리는것이지
만’지금은구더기가무서워서장못담글만큼한가한상황이아니다.’라는게그들
의변명이다.
범여권의신당,
원내제2당을만들어대선을치르려는의도는작년여름부터김대중씨가쏟아내는
주문이다.
열우당과민주당지도부,그리고의원들을만날때마다그가강조한내용이그것이다.
대선과관련,자기입지를만들어야하는정치꾼들은한결같이그를방문,눈도장을
찍으려고하는것도사실이다.
왜이런일이일어나는것일까.
단지정권교체를막으려는대승적차원인가아니면정권교체에따라오는위기에
대한대책인가.
언론에보도된대로전직대통령한분은정권이교체되면김대중의죄과는만천하에
드러나게되고그는그것이두려워’발악’하고있다고했다.
때가되면진위는가려질것이다.
또반드시가려져야한다.
문제는임기를마치고은퇴한전직대통령이현실정치에적극적이고구체적으로
간섭하고있는사태의성격이다.

김대중씨의힘은어디에서오는것일까.
그게전라도라는것은삼척동자라도다아는얘기다.
적어도지금까지는그랬다.
특정지역에서특정인과그지지세력에게몰표가나온게전라도의현실이었다.
그러나지금은’그때’가아니다.
그건지나간과거사다.
전라도의적개심은김대중을통해분출됐었고,순화되었으며정리됐다.
그의도가정당한것이아니라면,그책략이나라와민족을위한것이아니라개인의
보신을위한것이라면이제전라도는더이상그의볼모가되어서는안된다.
‘김대중’이라는이름석자가만병통치약처럼통하던시대는지나갔다.
이제는더이상전라도에서그의입김으로몰표가나와서는안된다.

왜전라도사람들의생각이모두똑같아야하는가.
2차대전이끝났을때영국국민들은승전의영웅인처칠을선택하지않았다.
그의시대적사명이끝났기때문이었다.
은퇴한대통령은조용히지내야한다.
그게나라를돕는일이다.
김대중씨가현실정치에서부정적역할을할수있다고판단하는근거는결국전라도
의자기표다.
다시전라도를볼모로하겠다는계산이다.
이사실을모르는대한민국국민은없다.
어찌전라도라고이를모르겠는가.

우리부부는매년벚꽃이질즈음섬진강을찾는다.
꽃이지고새잎이돋아나만드는나무그늘이처연하게아름답기때문이다.
새벽에차로서울을떠나면밝아오는아침에는호남고속도로를달리게된다.
그럴때,
나는아내가운전하는차에느긋하게앉아아침녘의호남땅을그윽한마음으로
구경한다.
정말아름답다.
각이없는완만한능선들과부드러운흙,
봄내음과함께이땅이얼마나정겨운곳인지온몸으로느낀다.
나만그렇게느끼는것은아닐것이다.
그게호남(湖南)땅이다.
그래서그땅에사는사람들도호남사람들이다.

이제그들은시대가요구하는새로운사명앞에부름을받고있다.
이름하나에매달려몰표를쏟아대던시절과결별하기를요구받고있다.
그땅에도다른당을지지하는사람이있어야하고김대중씨가아닌바른정치인을
지지하는분별과선택이있어야한다.
또그렇게할수있는게전라도다.
나는지금도여수에들어서면서봤던그누더기같은도로를똑똑히기억하고있다.
그건불공정하고,불공평한,드러내놓고하는차별이었다.
그래서분노했고심정적으로그들편에서게됐다.
지금도그때의마음은전혀변함이없다.
그래서전라도가옛날의전라도가아니기를기대하는마음도순수하다.
전라도가그판단을바르게한다면우리에게희망은살아있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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