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그리스도-사도들-초대교회로이어져발전한기독교는지금세계에서가장큰
고등종교가됐다.
그렇다면기독교라는종교는영원한것인가.
논리적으로는그렇지가않다.
종교는그자체가신앙의대상이아니기때문이다.
기독교라는종교도야훼하나님과예수그리스도를신앙하는매개이며보이는건물,
예배라는형식,신앙적의식(儀式)을통해신자들이그분들에게접근하는통로일
뿐이다.
따라서그것을필요로하는신자-교인들이없어지면기독교라는종교도없어지는
것이다.
야훼하나님과예수그리스도는영원불변한존재지만신자-교인들은가변적이고
제한적인땅위의존재들이다.
그간판은기독교이지만그안의내용이무당일경우그것역시기독교라는종교는
아니다.
명칭은기독교이지만그내용에서딴것이돼버렸기때문이다.
이집트의나일강변에는룩소라는지역이있고옛테베의이유적지에는세계에서
그규모가가장컸던카르낙(Karnak)신전의잔해가남아있다.
기둥하나의크기와높이만으로도현대인들을완전히압도하는거대한신전이다.
아멘호텝3세파라오를기준해도이신전이그웅장한모습을드러낸것이기원전
14세기다.
이거대한신전의주신(主神)은우주창조자인태양신’아멘라’였다.
태양은지금도그태양이고이집트사람들도그들조상과똑같은이집트인들이다.
그러나’아멘라’의종교는카르낙신전을남긴채사라졌다.
신자-교인이하나도없기때문이다.
국가수호신이며태양신인’아멘라’가자기땅과국민들로부터잊혀진것이다.
지금이집트는알라신을섬기는이슬람의본산이다.
카이로는아랍문화의중심지이며이슬람이라는종교의내용적중심지다.
이집트의종교가완전히바뀐것이다.
회교국가이집트에는카르낙신전대신수많은모스크가작은마을에까지세워져있
으며하루다섯번의기도시간을정확히알리고있다.
기독교가종교로존재하고기능하는데는크게두가지보이는형식을통해서다.
그하나가’세례’다.
한인간이예수를그리스도로고백하고죄사함을받아기독교공동체에입교(入敎)
하는대표적인형식적절차가세례다.
다른하나가유명한’성찬식’이다.
지금은빵과포도주로약식(略式)이된이성찬은본래공동체의모든식구-교인들
이한식탁에앉아하던공동식사였다.
교인수가기십명씩인옛교회에서는아주중요한의식이었다.
배고픈사람들이다른교인들이다모이기도전에미리음식을먹어버려이를지적
받는내용이성경에나타나는이유가그때문이다.
세례와성만찬은지금도교회의두기둥이다.
세례의경우집례자의손끝에묻힌물로시행하는약식세례가있고,
강단뒤,욕조의물에온몸을담그는침례가있다.
침례교의세례의식이그것이다.
아프리카의어떤교회는일몰시간에바다에나가수세자의온몸을바닷물에담그는
세례예식을가지기도한다.
정말장엄한장면이다.
방법은서로다를수있지만세례의본래적인뜻은달라지지않는다.
그것때문에시비하는일도없다.
2005년4월19일오후5시.
바티칸의시스티나성당의육중한오크문안에서박수소리가터져나왔다.
교황선출비밀투표인콘클레베가시작된뒤네번째투표에서제265대교황
베네딕토16세가탄생한것이다.
새교황이된요제프리칭거추기경은,
1927년남부독일의작은마을마르크틀암인에서경찰관의아들로태어났으며
1943년나치포대(砲隊)에근무한전력이있다.
1951년사제서품을받은라칭거추기경은1982년교황요한바오로2세에의해
바티칸의카톨릭교리수장(敎理首長)에임명된다.
교황요한23세에의해소집된제2차바티칸공회의는1962년11월에서1965년12월
까지개최되었으며4차회의까지있었다.
이회의의각종헌장,교령,선언에담긴기본이념은화해와쇄신을통한카톡릭
교회의현대화라할수있으며이회의후에신,구교간대화가활발하게전개된것은
긍정적인일로평가받았다.
이회의에서독일출신의라칭거신부와훗날세계적인신학자가된한스큉신부는
‘카톨릭개혁’의이론을제공한장본인들이다.
그러나1968년서구를강타한신좌파학생운동에충격받은라칭거신부는정통주의
자로변모했고제2차바티칸회의를비판하기시작했다.
때문에그가교황으로선출됐을때카톨릭일각에서는걱정의목소리가있었다.
그우려는지난7월10일,
교황청이발표한16쪽분량의문서를통해현실로나타났다.
이문서를통해나타난교황베네딕토16세의입장은크게세가지다.
1.그리스도는지구상에오직하나의교회를세웠고이는카톨릭교회로존재한다.
2.그리스정교회는교황의권위를인정하지않아결함이있다.
3.기독교등종교개혁으로생겨난기독교공동체들은교황의존재를시인하기를
거부하고성찬식에대한견해를달리하는등올바른의미에서의교회라고볼수
없다.(notproperchurchs)
교황(敎皇)은,pope,라틴어로는papa.
로마카톨릭교회의최고지위에대한호칭이다.
‘아버지’를뜻하는papa에서유래된이칭호는3-5세기의교회에서는모든주교와
대수도원원장들에게’파파’라는칭호로쓰였으나9세기이후서방교회에서는
로마의주교에게만’파파’라는칭호를붙이게되면서점차로마주교에대한칭호로
바뀌었다.
1073년로마공회의에서는로마주교외에는’파파’라는칭호를붙이지못하도록
결정함으로서로마카톨릭교회의수장의칭호로정착됐다.
그러나성경에는그어디에도’교황’이라는명칭은없다.
개신교에서사용하는’목사-목자’라는칭호는성경에근거한것이다.
에베소서4장11절에는’poimenas’라는단어가있는데그뜻은shepherds다.
양을치는목자이며개역성경은이를목사(牧師)로,공동번역은목자(牧者)로
번역했다.
영어성경은pastors로번역했다.
로마카톨릭교회-RomanCatholicChurch-도종교개혁이후에생긴상대적인
명칭이다.
그이전,그리스도의몸된교회는그명칭이보편적인교회-CatholicChurch-였다.
프로테스탄트교회-ProtestantChurch-라고부르는개신교에는교황은없다.
교황은로마카톨릭교회라고하는기독교조직이가지는직위이며개신교도라해도
그시스템과교황의존재에대해서는이를이해하고있어야한다.
인정하고안하고는별개의문제다.
인정을강요해서도안되며강요받아서도안된다.
그건어디까지나로마카톨릭교회자체의문제일뿐이다.
교회의’성찬식’은세례의식과함께그시행근거가성경에명시돼있다.
‘주께서는빵을들어감사기도를올리신다음그것을떼어제자들에게주시며
이것은너희를위하여내주는내몸이다하시고그와같이잔을들어이것은내
피로맺는새로운계약의잔이다나는너희를위하여이피를흘리는것이다.’
하셨다.
그리고’나를기념하여이예식을행하라’고당부하신다.눅22:1423.공동.
공관복음모두에기록돼있는이말씀과성찬예식이초대이방교회에는어떻게
전해지고해석되고어떤의식으로받아들여졌을까.
고린도전서11장23-26절사이에자세히기록돼있다.
이제바울의설명을들어보자.
‘내가여러분에게전해준것은주님께로부터받은것입니다.
곧주예수께서잡히시던날밤에빵을손에드시고감사의기도를드리신다음
빵을떼시고이것은너희를위하여주는내몸이니나를기억하여이예식을
행하여라하고말씀하셨읍니다.
또식후에잔을드시고감사의기도를드리신다음이것은내피로맺는새로운
계약의잔이니마실때마다나를기억하여이예를행하여라하고말씀하셨읍니다.
그러므로여러분은이빵을먹고이잔을마실때마다주님의죽으심을선포하고
이것을주님께서다시오실때까지하십시요.’공동.
바울의이설명은성찬예식이초대이방교회에정착된모습을구체적으로보여주고
있으며그이후지금까지성찬식은같은방법과의미로이어져오고있다.
종교개혁시기를전후해서’성찬논쟁’은그해석을둘러싸고치열했다.
로마카톨릭은1551년의트렌트공회의를통해화체설(化體說)을교의로선포
했으며이는지금까지로마카톨릭의공식입장이됐다.
화체설은성찬시떡과포도주가예수이살과피로변화(變化)한다는주장이다.
그래서성체(聖體)라는표현을쓴다.
이에대해개역자루터는떡과포도주에그리스도께서임재하신다는공재설(共在
說)을주장했으며,쯔빙글리는성찬이그리스도의죽음을상징한다는상징설(象徵
說)을,칼빈은그리스도께서성찬에영적으로임재하신다는영적임재설(靈的臨在
說)을주장했다.
지금개신교일반의해석은기념설(記念說)이다.
주께서’나를기념하여이예를행하라’하셨고바울은주님을기억하는예식으로
정의하고있기때문이다.
오래동안카톨릭교인이신친지한분에게서이런얘기를들었다.
‘환자가성체(떡)를받았는데병세때문에
이를토(吐)하는경우,신부님은바닥에엎드려그토한것을전부핥아서라도
먹어야한다.’
우리부부가출석하는교회에서는정기적으로평신도신앙강좌를가지고있다.
지난주에는한국종교학의태두이신,학술원회원정진홍박사를모셨다.
그날의강의제목이’종교는언제악해지는가’였다.
박사께서는세가지경우로설득력있는설명을했다.
1.나만옳다는독선(獨善).
2.상대를배려하지않는,말-언어의극단적인표현.
3.세상이바뀐것을모르는무지가그것이다.
‘여러분은저마다나는바울로파다,나는아볼로파다,나는베드로파다,나는
그리스도파다하면서떠들고다닌다는것입니다.
그렇다면그리스도가갈라졌다는말입니까.
여러분을위하여십자가에달린것이바울로였읍니까.
또여러분이바울로의이름으로세례를받았단말입니까.’고전1:11-13.공동.
사도의탄식은예나지금이나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