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도 (祈禱).
기독교에서기도는신자-교인과그가믿는하나님사이의교제또는대화라할수
있다.
그기도의수준은,
주술적(呪術的)인것에서하나님과의영적교제나그분의뜻과일치하는경지에까지
실로다양하다.
때문에기도에대해어떤한가지정의로는그포괄적인내용을다설명할수가없다.
기도의형식이어떠하든그일차적인의미는하나님과의인격적접촉과교통이다.
기도라는방편과그내용은결국기도하는자가하나님을인식하는수준과내용에
달려있음은더말할것도없다.
그건단순한미신에서고등종교까지의엄청난차이를가진다.

구약에나타난기도의특징은모세오경에잘나타나있는바하나님과인간의여러가
지대화로기록돼있다.
하나님의자비로우신행위에대해,
기도를들으시는하나님의섭리에대해,
금기를어겼을때의하나님의침묵까지,
그리고이스라엘의포로시기에는도우심을요청하는호소의기도가많다.
기도의절정은대부분시편에서찾을수있다.
그내용들은영혼깊은곳에서우러나온기도이기때문이다.

이에대해신약에서의기도는전혀다른특징을가진다.
그것은하나님을부자관계의아버지로부르는것과예수를중보자(中保者)로해서
그분의이름으로기도하는것이다.
신약의기도는예수의기도로시작된다.
주께서는친히기도하셨고기도를가르치셨으며기도에대해중요한교훈을주셨다.
특히사도행전에는기도를통해승리하고전진하는초대교회의모습이나타나있다.
바울서신에서의기도는그근거가그리스도이며기도의원동력은성령이다.
기도하는자가언제나조심하고경계해야할문제점은기도와카타르시스(자기감정
에의도취와그배설)의구별을분명히하는일이다.
여기에서혼동이일어나면-그런경우는생각보다많다.-평생진정한기도는드려
보지도못한채신앙생활을마감하게된다.
그건너무나비극적인일이아닐수없다.

현대인크리스챤의기도역시하나님과의접촉과교제라는큰틀에서벗어나는것은
아니다.
대화의형식이여러가지이듯기도역시그형태를살펴보면여러가지다.
가장중요하고내밀한기도는’개인기도’다.
거기에는특정한형식이있는것이아니며기도를드리기위한때와장소가정해져
있는것도아니다.
언제어디서나자유스럽게그무엇에도매이지않는기도가개인기도다.
그기도는정직하고솔직하다.
간절하고절실한내용들로가득차있다.
그만큼하나님께서들어주시는기도이기도하다.
신심이깊을수록기도의자세와내용도그깊이를더해간다.

다음이가족이나모임같은작은단위에서의,약간은공식적인기도가있다.
이때의기도는그주제가분명해진다.
하나의예로관,혼,상,제가그렇다.
경사스러운일이나슬픈일에대한주제가분명하듯모든모임이나행사에서의
주제도분명하다.
때문에그런기도는그기도가가지는주제에대해올바로파악하고준비해야한다.
친지의생신예배에서식사기도를10분이상하는위인들이있다.
음식은다식어버리고’생신축하’라는주제와는무관한잡다한내용으로가득찬,
결코아멘할수없는기도가되고만다.
인간이부족하기때문에그런불상사가생기고그걸’은혜’라는이름으로덮는게
교회의관행이다.
잘못된신앙이그런것이다.

다음이공중예배에서의회중을대표해서드리는’대표기도’가있다.
보통주일예배의기도순서를맡는것이그것이다.
가족이나작은모임에서도마찬가지지만공식적인대표기도는반드시일정한형식,
틀을가지게된다.
그건개인의사사로운기도가아니라회중모두가아멘할수있는공통분모의내용을
가져야하기때문이다.
그래서대표기도는준비가있어야하고반드시기도문을작성,연습하는게옳다.
특히마이크사용에유의해야한다.

대표기도의기본틀은,
하나님의절대하심과그권능에대한찬양.
지금까지우리에게베풀어주신은혜와사랑에대한감사.
하나님의뜻대로이세상을살지못한온갖죄에대한회개.
그리고,그럼에도불구하고하나님의자녀로서조심스러운간구가그순서다.
찬양,감사,회개,간구의이틀은가장기초적인것이며성경전체를정리,도출해낸
신학적작업이기도하다.

대개의경우,
대표기도를맡은교인이이기본틀을모르기때문에(교회의목사들이가르치고
교육시키지않았기때문에)앞뒤가뒤바뀌고내용도회중들을위한것이아닌개인
기도를드리는경우가많다.
기도의서두에서부터간구가시작되고회개의부분이부실하고감사에인색하며
가장적절한어휘로하나님을찬양드리지못한다.
기본틀을모르고준비안된,특히기도문(원고)없이중언부언하는기도는결코은혜
스러운기도가될수없다.
더경계해야할것은오직무엇인가를간구하는것만이기도인줄아는교인들이많다
는사실이다.
기도는일방적인것이아니고나와하나님과의신앙적인대화이며그만큼그분의
말씀에도영의귀를기울여야한다.
우리는그것을응답이라고부른다.
우리가하나님의부르심에응답하듯하나님께서도자기의섭리로서우리의진실된
기도에응답하신다.
그런놀라운체험을가지고있는교인들은많다.
기도가가지는힘은,
세상이아무리발전하고변해도’기도’는결국기도로남는다는사실이다.
뛰어난인간의기술과도구라해도기도를대체하지못한다.

이제는기도일반에서결정적으로잘못쓰이고있는용어에대해검토해봐야한다.
그하나가’축복’이다.
지금모든교회에서그사용빈도가가장높은단어가축복이다.
축복-祝福은다른이의행복을비는일이다.
왜비는가.
내가줄수있는것이아니기때문에그것을가진이에게비는것이다.
‘하나님께서축복해주시기를빕니다.’라고할때이기도는절대자이신하나님을
상대적인존재로끌어내리는것이된다.
하나님은자기가가진복을나누어주시는분이지다른존재에게행복을가지게해
달라고비는존재가아니다.
따라서같은의미의올바른기도는’하나님께서복주시기를빕니다.’가맞는것이다.
여럿이오래동안써왔으니하나의관행으로받아들일수있는사안이아니다.
그건신학적으로도지극히반기독교적인왜곡이기때문이다.
반드시시정돼야하는절대적인문제다.

신앙을가지고있는한인간이하나님께드리는기도의가장지고한자세와형태는
어떤것일까.
이문제에대해서는인간은해답을제시할자격이없다.
인간은피조물이고하나님께간구하는위치에있기때문이다.
다른한가지는기도도다른신앙생활과마찬가지로오직성경에만근거해야한다.
‘또너희가기도할때에외식하는자와같이되지말라,
저희는사람들에게보이려고회당과큰거리어귀에서서기도하기를좋아하느니라.
내가진실로너희에게이르노니저희는자기상을이미받았느니라.
너희는기도할때에네골방에들어가문을닫고은밀한중에계신네아버지께기도
하라.은밀한중에보시는네아버지께서갚으시리라.’마6:5-6개역.

이본문에서두번계속해서쓰인단어가’은밀’이다.
은밀(隱密)은숨겨져드러나지않는것이다.
kroptos-secret,감추어진,비밀의것이다.
외식-겉으로꾸미는일이죄가되는것은이kroptos,감추인것을자기과시를위해
드러냈기때문이다.
통성기도,집단기도,광적인기도모두가위험한것이그이유다.
여기에이상한제스쳐까지합해지면그대로굿판이다.
골방에들어가문을잠그고하나님께드리는개인의기도는kroptos한것이며하나
님의응답역시비밀스럽고감추인,신비인것이다.
그건전적으로한개인이체험하는놀라운영적인세계다.

주께서는우리들에게기도-주기도를가르치셨으며골방에들어가드리는가장
은밀한기도에대해서도가르치셨다.
이가르침을따르는자들은그분의신실한제자들이지만그반대는사탄의자식들
이다.
그분의가르치심을거역하기때문이다.
보이는형태에서그들이아무리승해도그건거짓이며심판의대상일뿐이다.
사람의것으로하나님의것을훼손하고대체했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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