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책으로알려진메소포타미아의점토판과이집트의파피루스두루마리는대략
기원전3000년경에제작된것으로추정된다.
점토판은진흙을사용했는데반죽이굳기전에철필로설형문자(쐐기글자)를새겨
말리거나구웠다.
이설형문자는강가의부드러운흙에남아있던물새들의발자국을보고만든글자다.
점토판제작법은약2000년동안계속사용되었으며지금까지발굴된점토판의대부
분은개인간상거래의기록과국가문서들이다.
수메르문명권인우르에서살았던아브라함의존재도이점토판의거래기록으로증명
되었다.
기원전6세기경아랍어와알파벳이등장하면서사용하기에더간편한파피루스가
점차점토판을대체했다.

파피루스는나일강유역에우거진파피루스풀로만든것으로종이와그재질이
비슷해현대적인책의원조라할수있다.
점토판에비해쉽게파손되는약점이있지만기원전2500년경의파피루스가원형
대로보존,발굴된것은이집트의건조한기후때문이다.
점토판이나파피루스보다앞선것은아니지만중국에서도비교적일찍방대한양의
책이제작되었다.
늦어도기원전1300년경에제작된책들은주로나무나대나무의길쭉한조각들을
끈으로엮어만들었는데그대부분이기원전213년진시황에의해불태워졌다.
그래도재필사된책들의일부는지금까지남아있다.

그리스는이집트로부터파피루스를전래받아기원전6세기부터파피루스두루마리
를만들었다.
책을뜻하는그리스어’biblos’가파피루스를뜻하는이집트어’byblos’와유사한
사실로도이를알수있다.
성경을뜻하는’bible’도그어원은’byblos’다.
그래서그앞에Holy라는수식어를사용한다.
그리스는자기들이발명한것은아니지만페니키아인들이만든알파벳을채용하여
그리스어를표기,정착시켰다.
지중해를중심으로널리사용된그리스어코이네가신약성경을기록한글자가된것도
이때문이다.

로마는그리스의책을서유럽에전달해주는매개역할을했다.
기원전1세기로마의정치가이며웅변가인키케로는대규모필사실에서판매용책을
대량복사했으며,당시개인서재의소유는지위나사회적신분상승에있어필수적인
요인으로인정되었다.
노예들의노동력을동원,책의대량복사가이루어지면서가격도저렴해졌고중류층
에서도쉽게책을구입할수있었다.

두루마리는기록성은뛰어났지만그길이때문에사용하기에는몹씨불편했다.
이단점을대체한것이코덱스다.
코덱스는책의형태에대해일대변혁을가져왔다.
코덱스는각낱장들의한쪽가장자리부분을함께묶어만들었는데이는보고자하는
부분을쉽게찾을수있게했으며각장의양면을모두이용할수있어더많은내용을
수록할수있었다.
코덱스의대표적인재료는양과송아지의가죽이었으며이를양피지라고부른다.
양피지를이용한코덱스의출현은성서가그매개였다.
기독교가제작한수많은코덱스는서적이사회에미칠수있는영향을증명했으며
로마제국이전성기를누렸던300여년동안수천킬로떨어진지역까기성서코덱스가
전달됨으로서상이한문화를가진민족과계층들이책에흡수되었다.
인류문화사에서하나의획기적인계기가성서코덱스에의해이루어진것이다.

인류역사에서중세기독교수도원이가지는의미는필설로는다표현할수없을정도
로중요하다.
5세기서로마제국의붕괴와연이은야만족들의창궐에서인류의문화적기록을보존
한곳이수도원들이었다.
수도원은사회의혼란속에서도서적을제작하고도서관을세우는일을맡았다.
특히수도사들의전문적인필사작업은인류유산을보존,전수하는데결정적인기여
를했다.
중세시대의책은대부분이양피지에쓰여진사본들이었으나15세기경부터종이에
쓰여진원본들도나타난다.
그리스어를사용한비잔틴제국의수도원을제외하고는서유럽의수도원에서는
라틴어로책을만들었으며14세기인문주의학파가등장한이후지역고유의언어로
글을쓰는작가들이부상하면서점차다양한지역언어들이서부유럽의수도원에서
중요하게인식되기시작했다.
그러나모든서책이사람의손에의해필사되는방법에는변함이없었다.

독일마인츠의부유한장인(匠人)집안태생인구텐베르그(Gutenberg1399-1468)는
1445년에활판인쇄를완성했으며1452년’42행성서’를준비하고1460년에개량활자
에의한성서’카트리콘’을출판했다.
인쇄술이발명되기전유럽에는수천권규모의필사본들이만들어졌으나인쇄술이
발명되고난후불과50여년이지난1500년경에는900만권이넘는책들이출판되었으
며이는인쇄기가출판에서차지하는영향력을단적으로보여주는사례다.
실로구텐베르그의인쇄술은책에대한하나의역사적혁명이었으며그이후인류의
위대한유산은글을읽을수있는모든사람들의재산이되었다.
기원전3000여년으로부터지금까지의모든인간의지혜는실로책이있었음으로
보존되고전달될수있었다.
책이가지는의미의깊이는그렇게장구한것이며그가치는불변의것이다.
술과고기가육체의양식이라면책은변함없는인간정신의양식이다.

지금으로부터20년전,
나는퇴근길에책방에들렸다가막창간한연성월간지한권을사서아내에게선물
했다.
다른여성월간지에비해부피는작았지만책의내용이좋았고남자인내게도읽을
거리가많았다.
그이후지금까지아내는그책의정기구독자다.
20년이지난지금,
나는그월간지를들춰보지도않는다.
볼거리만늘어났고읽을거리는거의없어졌기때문이다.
흡사화보집처럼변했다.
그볼거리라는것도일상에없는,상품광고같은천박한수준이다.
읽는책에서보는책으로전락한것이다.
출판도사업인이상팔리지않는책은만들수가없다.
수요가공급을결정하는경제원칙에따라책도변신한것이다.
애석하지만어쩔수없는일이기도하다.

보는책자체를나쁘다고할수는없다.
문제는보는책은늘어나고읽는책은줄어들고있는사회적현상이다.
변화는또하나의발전이지만모든변화가반드시발전은아니다.
인간은정신적존재이기때문에눈에즐거운것만으로살아서는안된다.
육신이음식을요구하듯정신도양식이있어야건전하게살수있다.
읽는책은반드시’생각’을요구한다.
그생각,사고기능이곧정신의양식이다.
보는책은일과성의이미지일뿐’생각’을요구하지는않는다.
편하고표피적인것을좋아하는현대인들에게읽는책이멀어지는것은슬프지만
엄연한현실이기도하다.

모든대합실은많은사람들이자기을차례를기다리는공공의장소다.
동시에대합실의모습은그사회의축소된모습이기도하다.
지금우리의거의모든대합실에는대형TV가있다.
사람들은’보기’를강요당하고있는것이다.
그대합실에는책을읽는사람이없다.
어떤대합실에서도책을읽는사람을발견할수가없다.
모두가’생각’을안하고구경만하면서살고있다.
TV는,보는책은일과성의이미지로끝난다.
디지털세계이기에그렇다.
그어떤개인,사회,국가라해도디지털세계로만살수는없다.
그렇게살아서도안된다.
읽고생각하는것은아날로그의세계다.
인간의위대한사고기능과창의성은아날로그세계의산물이다.
이는앞으로도마찬가지다.
그래서지금도앞으로도보는책과함께읽는책도존재해야한다.
읽는책이그설자리를잃고있는현상은사회적으로심각한위험신호다.
그것은하나의공동체가정신적으로퇴보하고있다는조짐이기도하다.
인류는그긴역사를통해생각함으로서발전해왔고그발전의온갖지혜의기록이
바로책이다.
파피루스두루마리에서지금의세련된책까기인류5000년의역사가그안에있다.
읽는책은그래서소중한것이다.

눈에보이는것은껍질,표피뿐이다.
그밑의내용은육안으로는보이지않는다.
때문에’생각하는눈’이필요하다.
내용을읽어내는게바로그눈이다.
그눈은읽음으로서비로서기능한다.
읽지않고보기만한다는것은결국껍질만보는것으로끝난다는얘기다.
껍질만보고내용을모르면껍질처럼살수밖에없다.
천박하고,경박스럽고,상스러운삶이모두껍질에서오는속성들이다.
인간에게품위를가지게하고품격을지니게하는것은껍질이아니라내용이다.
그리고그내용을읽어내는눈이’생각’이다.
보는책과함께반드시읽는책도존재해야하는이유가거기에있다.
우리모두더건전하고발전하는일상을위해읽는책이줄어들고있는위험한현상을
걱정해야한다.
그게문명사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