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과 하느님.
교인들중에는신,구약성경66권을공책에베껴쓰는사람들이있다.
구약39권과신약27권을모두베껴쓴다는것은정말보통의작업이아니다.
또어떤분은신,구약성경책을수십번씩통독하는분들도있다.
자기의신앙을표현하는한가지방법인것은분명하지만그런행동자체는공적주의
(功積主義)의범주에속한다.
성경책을공책에베껴쓰거나수십번씩통독한다고해서그게조건이되어구원받는
것은절대아니기때문이다.
보수적신앙의대표적인주장하나가성경에대한’축자영감설’이다.
성경의글자한자한자가모두하나님의영감에의해기록되었다는주장이그것이다.
서지학적인검토에서발견되는기록의오류를설명할수없는극단적인입장이기도
하다.

방대한양의성경을베껴쓰는것도,수십번씩통독하는것도,축자영감설을주장하는
것도그핵심은거룩한책에대한경외심때문이다.
한발더앞서있는극단적인입장은우리말성경의마태복음5장18절을근거로한다.
‘진실로너희에게이르노니천지가없어지기전에는율법의일점일획이라도반드시
없어지지아니하고다이루리라.’개역.
이런이들의극단적인주장의하나는성경의다른번역까지도반대하는수준이다.
따라서개역성경이외의번역은인정하지않으려한다.
헬라어원문에서의이부분은,
‘세상이없어지기전에는이오타-iota하나까지도다이루어질것이다.’라는의미다.
이오타가무엇인간.
헬라어알파벳에서가장작은글자,소문자i가그것이다.
주께서는율법의중요성을그렇게말씀하신것인데번역성경인개역성경에서이를
일점일획이라고번역했기때문에문제가됐다.
일점(一點),일획(一劃)은붓으로한문글자를쓰는방법에서비롯된말이다.
중요한것은글자가아니라그글자가담고있는의미인것이며결국하나님의말씀이
그의미에서온전히이루어지는것을설명한것이다.
영어성경에서는’smallestletter’로번역하고있다.
일점일획보다는더원문에가까운번역이다.

그렇다면성경은어떤책인가.
우선책(冊)이다.
Bible은헬라어biblos에서비롯되었으며이헬라어는이집트어byblos에서온
것이다.
이단어도글씨를쓰는데사용했던파피루스에서유래된것이다.
따라서bible은그냥책이다.
때문에그앞에Holy를붙여다른책들과구별하고있다.
글자그대로성경(聖經)이다.
이거룩한책은인간의언어로주어진하나님의말씀이다.

지금까지성경은수천개의언어로번역되어모든사람들이자기말로읽고있다.
원문성경을기준한다면일점일획이아니라만점만획이다바뀐것이다.
하나님의말씀인성경은글자가아니라그의미로모든사람들에게주어진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성경책은글자로읽는책이아니라글자라는수단을통해우리에게주신의미
를읽는책이다.
한가지우리가알아야할사실은,
현존하는수천개의필사본신약의경우그글자들이완전히일치하는사본은단
하나도없다는점이다.
가장오래된사본도4세기를넘지못한다.
그이전의필사본들은모두소실되고말았다.
성경책에대해글자를고집하는일이얼마나잘못된것임을알아야한다.

세계성서공회연합회와로마교황청성서위원회의합의에의해1968년1월한국의
카톨릭과개신교가함께하는’공동번역위원회’가조직되었으며1977년4월,
부활절을기해구약1.997쪽,외경328쪽,신약505쪽,합계2.420쪽에달하는방대한
분량의’공동번역성경’이간행됐다.
이공동번역성경은신,구교가함께번역한세계최초의,유일한성경이기도하다.
특히그의미의전달에서다른번역성경들을능가하는탁월성까지가지고있다.
교회의일치를추구한점에서나,
읽기쉽고알기쉬운번역성서가또하나출판된것이나,
특히성경보급이잘안되어있는카톨릭안에서널리,쉽게읽히게될것이라는점에
서공동번역성경은큰의미를가지는책이다.
가능하다면성경은계속해서현대어의새번역을출판해야한다.
한두세대만지나도이미말-언어의의미는많이달라지기때문이다.
이제개역성경은중,고등학교학생들도제대로읽지못하는옛책이되고말았다.
그런의미에서공동번역이계속개정판을내고있는것은환영할만한일이다.

그런데이뜻깊은’공동번역’이개신교의공식예배에서는사용되지않는다.
가장큰이유는그용어때문이다.
개역성경의’하나님’을’하느님’으로번역,표기했기때문이다.
하느님은본래의우리말이지만하나님은교회가만든조어(造語)다.
사전적인의미에서,
하느님은1)종교적인숭배대상,또는신앙의대상.2)기독교에서신봉하는유일신
(唯一神)이며,
하나님은기독교에서’하느님’을이르는말.이다.
즉하느님은우리고유의종교적언어이지만하나님은개신교가’오직하나인님’
유일신을부르는,만들어낸이름이다.
그렇다면하느님이나하나님은정말그분의이름인가.
둘다아니다.
우리가우리말로그렇게부르고있을뿐두가지모두가그분의이름은아니다.

창세기17장15절에는자음만으로된4개의글자로그분의이름이나타난다.
물론영어성경은God로,
개역성경은하나님으로,
공동번역은하느님으로번역했다.
그네자음은YHWH다.
오래동안’여호와’로불리다가그본래의발음이’야훼’임을밝혀냈다.
그것은그분의이름을직접부를수없는이스라엘이YHWH를’아도나이’로불러
왔기때문이며세월이흐르면서그발음을잃어버렸었기때문이었다.
아도나이의대표적인뜻은’주님’이다.
이제성경을통해그분의이름이’야훼’임이밝혀졌다.
스스로계시는거룩한분의이름인것이다.

하나님과하느님때문에신,구교가함께번역한뜻깊은성경이배척받는다는것은
생각해보면무지때문이다.
무지할뿐만아니라잘못된보수적입장이얼마나무서운것인지도알수있다.
하나님과하느님이문제가돼야할이유는하나도없다.
두단어모두가한국인들만쓰는한국적언어이지그분의정말이름은아니다.
이런사실에서우리가알아야할것은인간의무지와고집이하나님의말씀이쉽게
전달될수있는통로를막고있는점이다.
이얼마나어처구니없는일인가.

‘일점일획’을문자적으로만취하고그깊은뜻을모르면이런가슴아픈일이일어
나게된다.
교회공동체가이런잘못된보수적입장때문에받게되는폐해는많다.
그리고그런잘못은지금만있는것도아니다.
이미주님이계실때부터교조적인바리새인들과의잦은충돌이그걸증명하고있다.
잘못된보수주의는종교근본주의와연결된다.
왜교회안에서그런문제들이생기는것일까.
인간이부족하기때문이다.
특히성경책이무엇인지그내용을모르는사람들에의해늘문제가생긴다.
그무지하고편협한마음들이교회에끼친폐해는역사만큼이나오래된것이기도
하다.

지금도이스라엘은야훼를아도나이로부르고,
한국의개신교는하나님으로,카톨릭은하느님으로부른다.
이서로다른이름때문에그분께서는우리들을차별하고계실까.
바벨탑사건이후인간들의언어를서로다르게하신분이그분이다.
그분의말씀이서로다른언어로번역되고그분의이름이서로다른지역언어로
불리는것은당연하다.
그러나같은말을쓰고있는한국의기독교가하나님과하느님때문에배타적입장이
되는것은성경이아니라인간이중심이되어생긴일이다.
축자영감설이나일점일획을고집하는생각자체가바로그것이다.
하나님도하는님도어차피그분의이름은아니다.
우리가우리말로부르는한지역의언어일뿐이다.
예나지금이나그리고앞으로도성경책은글자가아니라그의미로읽어야하는
책이다.
말-언어도진화하고변한다.
그리고그때마다그시대가사용하는언어로새롭게번역해야한다.

성경을읽는가장좋은기본자세는열린마음이다.
그리고가급적여러가지번역을대조해가면서읽는게큰도움이된다.
최근에번역된영어성경도마찬가지다.
신약성경의원문과한글번역성경을대조해가면서읽어보면번역의한계가생각
보다크다는것을실감하게된다.
어떤단어는적절한우리말이없는경우도있다.
이오타(i)와일점일획도그런것이다.
때문에글자-문자에집착하면그뜻을놓치게된다.
성경은,
인간의서로다른언어와글자로주신하나님-하느님의말씀이다.
겸손한자세,열린마음으로읽으면그뜻은,쉽게우리들에게다가온다.
그게하나님-하느님의섭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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