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깜짝놀란일이있었다.
그모친마리아는’미리암’이라고하자더놀랬다.
전혀들어보지못했던이름들이기때문이다.
예수를믿으면서그분의본명도모르고있었던것이다.
우리는그렇게예수에대해모르는게많다.
이것이문제가되는것은제대로알지못하면신앙내용이왜곡될수있기때문이다.
벌써그런현상은뿌리깊게자리잡았으며교회의온갖변질도그시작은예수를
제대로알지못하는데서비롯된다.
성경지식이부족한일반교인들은사이비목회자들의오도(誤導)에무비판적으로
따라갈수밖에없다.
연간배출되는신학교졸업생의반이상이무인가,사이비신학교출신들이다.
그숫자는약3.000여명수준으로추산된다.
예수에대한믿음은구원과직결되는문제이기에그심각성은클수밖에없다.
예수를제대로알고체험하는문제는그렇게중요하다.
예수는,
‘여호수아’라는유대식이름의헬라어(그리스어,희랍어)음역(音譯)이다.
예를들어마오쩌뚱을한국식으로는모택동이라고부르는것과마찬가지다.
예수에대한성경책인신약이당시지중해를중심으로사용됐던헬라어코이네로
쓰여진것이그이유다.
여호수아가’예수’가된것이다.
더정확히는,
우리성경의경우Iesus-Jesus-예수가됐다.
그러니까예수는땅위에서인간으로살았던한유대인의이름인셈이다.
여호수아는’여호와는구원이시다’라는의미다.
유대에서는여호수아나미리임은아주흔한이름이다.
나사렛예수,하면나사렛동네에살았던인간예수에대한호칭이된다.
아주친근한이름이다.
그래서예수는우리모두의’친구’가되는분의인간적이름이다.
그러나’그리스도’는개인의이름이아닌,유대사회에서는특별한의미르가지는
직명(職名)이다.
그리스도는’기름부음받은자’라는유대말’메시아’의헬라어음역이다.
메시아는일반적으로왕,선지자,대제사장같은기름부음받은자들을지칭하기도
했다.
그러나이용어는후세에’구세주(救世主)’를의미하는직명으로쓰이게됐으며
‘예수그리스도’라고하면,
예수가그리스도다,또는예수는그리스도라는신앙고백적표현이된다.
지금’예수그리스도’는대표적인고유명사의하나가되었다.
한가지유의할사항은,
가장초기의성경책인서신들을쓴바울은예수보다는’그리스도’에무게중심을
두고있는점이다.
유대인인바울에게는인간여호수아보다는구세주로서의그리스도가더중요했기
때문이다.
사실바울서신들에는인간예수에대한언급이거의없다.
나는개인적으로스스로불자(佛子)임을밝히는사람들에게늘같은질문을한다.
-싣달타를아는가.
-부처라는말은무슨뜻인가.
-불교의가장큰가르침은무엇인가.
단한번도제대로된대답을들어본적이없다.
절에다니기만했지왜가는지를모르는것이다.
반대로기독교인들에게
-예수는누구신가.
-그리스도는무슨뜻인가.
-기독교의핵심적인가르침은무엇인가.
하고질문하면제대로대답할사람이몇이나될까.
모르기는해도사정은비슷할것이다.
우리속담에,
‘죽을때까지같이살고도시어머니성(姓)씨도모른다’는게있다.
사실이그러하다.
신앙생활도내막적으로는별로다르지않은게현실이다.
아직까지평교인으로서’은혜’와’구원’을제대로설명한사람이없었다.
알것같은것과아는것은전혀다르다.
이문제는확실히알거나모르는,두가지뿐이다.
‘예수에대해서는’많이아는것같지만,
‘예수그리스도’에대해서는정확하게모르고있는게그런것이다.
예수믿은지가오래되고,
수천,수만이모이는대형교회에나가고,
집사,권사.장로의직분을가지고,
주일은하루종일교회에서살아도그것이구원의조건은아니다.
참으로많은,어리석은인간들이보이느크기에현혹되어그크기가자기를구원
하는줄알고있다.
크리를자랑하는어리석음이그것이다.
특히외화내빈의민족성과맞물려교회의물량주의가이제는큰자리를차지하고
있다.
역세속화가된것이다.
보이는,비본질적인것을추구하는거짓교회가되고말았다.
이제예수그리스도를제대로아는일이얼마나어려운것인지성경을통해살표보자.
신약에서공관복음-마태,마가,누가복음은예수의그리스도되심을집중적으로기록
한책들이다.
예수의어록을중심으로가장먼저쓰여진책이마가복음이며마태와누가는자기책의
상당부분에서마가를인용하고있다.
세책을면밀히대조해서읽어보면,
책을쓴저자들이그생전에인간예수를직접만난일이없었음을알수있다.
가장먼저쓰여진마가복음도주후60년이전에쓰여진책은아니다.
십자가사건이있은지두세대가지났다는것은그사건의현장감은오래전에사라진
것을의미한다.
똑같이기록이많지않았던그시대의정황을생각해보면복음서기자들이사용할수
있는자료가비약했음도쉽게생각할수있다.
임박한재림을기대했던1세대는주의가르치심을기록으로남겨야한다는사실에
유념하지않았다.
필요를느끼지않았기때문이다.
마태는,마리아와요셉이줄곳베들레헴에살다가헤롯의유아학살을피해이집트로
피난했으며거기에서돌아올때나사렛으로이주한것으로이해하고있으며,
누가는마리아와요셉이예수가태어나기전부터나사렛에살았던것으로묘사하고
있다.
마태는요셉을다윗왕의28대후손으로말하고있는반면누가는41대후손이라고
주장한다.
성령에의한잉태로인간요셉을배제하면서도다윗계의족보를명시하는것은
메시아가다윗의후손이어야한다는구약의예언에맞추려는의도로생각할수있다.
요셉보다천여년전인물인다윗의마을로돌아가는’호구조사’도누가의정확하지
못한역사기록으로그모순이드러난다.
가이사아구스도때의이호구조사는로마전체가아닌퀴리니우스총독때의지역
수준의조사였으며특히그실시연대는주후6년의일이다.
시기적으로전혀맞지않는이런주장은구약의성취라는압박감이만들어낸기록일
것이다.
지금우리가가지고있는세복음서의기록중주께서직접하신말씀은얼마나될까.
오래동안수많은필사본들은나쁜의도는아니었지만자신의신앙적입장을반영하지
않았을까.
오랜세월수많은가필(加筆)이있었을것은쉽게짐작할수있다.
이는현존하는필사본들을비교하는것만으로도어렵지않게발견할수있다.
미국에는’예수세미나’라는신약학전문교수들의모임이있다.
로버트펑크박사와존도미닉크로산박사가공동대표를맡고있다.
이세미나가세계적으로유명한것은연례적인모임과거기에서발표되는연구내용
때문이다.
예수세미나는공관복음에수록된예수의말씀중약20%만이그분께서직접하신
말씀으로결론내리고있다.
나머지는교회가그절실한필요에의해창작한것임도밝혀냈다.
말하자면공관복음서의서지학적취약점에대해학문적접근으로그실상을연구해
낸것이다.
지금까지살펴본간략한내용만으로도공관복음서가’예수전’,즉,예수의전기
(傳記)가아님을쉽게알수있다.
구약의메시아예언에촛점을맞춘,아주제한적인기록들이곧공관복음서다.
시대적으로두세대가이미지나갔고임박한재림을확신했던1세대가제대로된
기록을남기지않았으며인간예수와접촉이없었던후대의기자들이빈약한자료를
가지고복음서를쓴다는것은어려운일일수밖에없다.
(기록을기준한다면마가의경우인간예수를알고있을가능성이높다.)
신앙에비약(飛躍)이필요한이유는인간이가지고있는인간적제한을극적으로
극복해야하기때문이다.
그것을성령의역사라고한다.
믿음은과학의세계가아니기때문이다.
그러나이비약은이성(理性)에바탕하지않으면광신(狂信)이될소지가아주크다.
전혀딴것이되는것이다.
수많은제약에도불구하고우리가예수를만날수있는것은그분께서우리를찾아
오시기때문이다.
그것이성경이강조하고있는우리를향하신그분의’사랑’이다.
성경은우리를그분에게인도해주는길라잡이다.
비록많은제한과취약점을가지고있다해도마차가지다.
그분에게다가갈수있는다른통로는없다.
그래서성경은귀한책이며생명의책이다.
성경이우리에게전해주는의미만제대로깨달을수있다면비약은우리들몫이다.
예수는나사렛에살았던유대인청년의이름이다.
그러나그리스도는우리를구원하시는분의거룩한이름이다.
예수를그리스도로고백하는모든이들에게’예수그리스도’보다더귀한이름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