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빌라도.
매주일요일,
전세계수십억의크리스챤들은신앙고백문인’사도신경’을통해이미죽은지오래된
한인간을저주한다.
한인간이죽어서까지이렇게집단적으로,지속적으로수많은사람들에게저주를
받는경우는본디로빌라도가유일할것이다.
역사적은폭군네로도빌라도에게는미치지못한다.
빌라도가저주받는이유는단한가지.
‘예수’때문이다.
‘본디오빌라도에게고난받으사십자가못박혀죽으시고.’가그부분이다.
지금우리모두는이신앙고백문에있는내용대로빌라도가예수를처형한것으로
굳게믿고있다.
그러나한가지유의할점은예수와빌라도의관계는그때당시가기준이되어객관적
으로해석돼야한다는전제다.
그래야사건의진상을제대로알수있다.

말하자면지금의잣대로그때를재단해서는안된다는의미다.
그때의나사렛예수와지금의그리스도예수가가지는엄청난차이를인정해야
정당한해석에접근할수있다.
그때빌라도앞에섰던예수는지금우리가신앙하는위대한그리스도가아니라
점령자로마가가장싫어하는,민중의소요를만들어낸갈릴리출신의’이상한
청년’이었다.
빌라도에게그청년은전혀아무의미도없는,이해관계도없는또하나의골치
아픈유대인이었을뿐이다.

지금이스라엘의가이샤라(세사리아)에는주목할만한비석의한부분이발굴되어
누구나볼수있도록공개되어있다.
이비석은1961년가이샤라에있는원형극장에서발굴된것으로티베리우스황제
에게헌정된비문의한부분이며거기에는
‘유대의장관본디오빌라도’라는글귀가선명하게남아있다.
이비문이발견된원형극장은그보존상태가좋기때문에지금도각종공연장으로
이용하고있다.
바다를바라보게설계된이원형극장은기류의효과로음향전달이아주좋다.
주후26년에서36년까지로마의직할지인팔레스틴에재임했던2급총독빌라도는
제5대총독이었으며1급총독이주재하는시리아관구에소속돼있었다.

당시로마의시스템에서빌라도는총독이기보다는수세관-收稅官의성격이더짙다.
알다시피로마는모든점령지에대해최대한의자치권을허용했지만세금징수만은
아주엄격했다.
점령지역별세금징수입찰에서팔레스틴은연간5만탈란트정도였다고전해진다.
여리고의삭개오가부과금액의4배까지토색질한것도징수낙찰자들의탐욕이
얼마나자심했는지를알게해주는대목이다.
점령지에대한로마의세금징수는아주가혹했다.

지금남아있는기록을보면빌라도는적어도세가지문제로유대인들에게미움을
받았다.
그는유대인들에게모욕적인로마기(旗)를거룩한도시에가지고와그들을불쾌하게
했으며,로마신(神)들의이름과형상이조각된황금방패를성전안에걸었고,
성전세를종교행사가아닌수로(水路)건설에전용하기도했다.
이제예수에대한빌라도의입장과태도를공관복음과제4복음서를통해살펴보자.
복음서의오리지날인마가의기록을보면,
유대인들이예수를결박해빌라도에게넘겼을때그가처음물어본말은,
‘네가유대인의왕이냐.’였다.
빗발치는유대인들의고발에대해,
‘보라,사람들이저렇게여러가지죄목을들어고발하고있는데너는할말이하나도
없느냐.’라고다시묻는다.
예수는빌라도도이상하게여길정도로침묵한다.

명절에죄수하나를석방하는전례에따라유대인들이죄수의석방을요구하자,
빌라도는,’유대인의왕을놓아달라는것이냐.’하고반문한다.
예수의석방을유도하는질문이다.
그는유대인고위성직자들과그무리들이예수를시기해서자기에게끌고왔다는것을
알고있었다.
사주를받은유대인들이예수가아니라바라바를놓아달라고하자
‘도대체이사람의잘못이무엇이냐.’하고되묻는다.

마태는마가가몰랐던자료를찾아기록하고있다.
빌라도가예수를재판하고있을때그의아내푸로클라-procula-가전갈을보내,
‘당신은그무죄한사람의일에관여하지말라,
간밤에나는그사람의일로꿈자리가몹씨사나왔다.’고전한다.
그러나빌라도는예수를십자가에못박으라는유대인들의요구를더이상거부할수
없다는것을알았으며오히려폭동으로이어질조짐을보이자물을가져오라하여
그들앞에서손을씼으며,
‘나희가맡아서처리하라.
나는이사람의피(죽음)에대해서는책임이없다.’고말한다.
그때유대인들은
‘그사람의피에대한책임은우리와우리자손들이지겠다.’고대답했다.
2차대전이끝났을때,
나치에의한600만유대인의학살인’홀로코스트’가그대가라고말하는이들이
많았는데마태의이자료때문이기도하다.

누가는보다상세한고발내용을전해주고있다.
‘우리는이사람이백성들에게소란을일으키도록선동하며카이사르에게세금을
못바치게하고자칭그리스도요왕이라고하기에붙잡아왔읍니다.’
군중소요의획책과납세의거부,그리고시저의존재를부정하는행위는빌라도에게
있어서는대단히민감한정치적인문제가된다.
누가는교활한유대인들이빌라도를어떻게옭아매고있는가를보여주고있다.
여기서도빌라도는,
‘나는이사람에게서아무런잘못도찾아낼수없다’고선언한다.

제4복음서인요한에는그들이예수를빌라도에게끌고온현실적인이유가설명되고
있다.
빌라도는유대인들을향해,
‘너희가데리고가서너희의법대로처리하라.’고말하자
‘우리에게는사람을사형에처할권한이없다.’고대답한다.
즉유대인들의종교재판만으로는예수를죽일수없기때문에그를빌라도,즉사형을
선고할수있는행정적명령권자에게데리고온것이다.
요한복음의기록중우리가간과하면안되는대목은,
빌라도가’너희의왕을나더라십자가형에처하란말이냐.’하고물었을때
대제사장들은,
‘우리의왕은카리사르밖에없읍니다.’하고대답하는부분이다.
이말은당신이예수를처형하지않으면카이사르,즉자기상관인로마의황제를
부인하는것이된다는협박이숨겨져있는것이다.

예수가십자가에못박힌후,
빌라도는히브리어와라틴어,그리고헬라어로
‘유대인의왕나사렛예수’라른명패를붙이게했다.
유대인들이’유대인의왕’대신’자칭유대인의왕’으로고쳐써야한다고주장하자
이를일축한다.
못마땅했기때문이다.

이상의복음서기록들을종합,정리해보면
빌라도는예수에게죄가없다는것을알았으며그가유대인고위성직자들의시기로
희생되고있는것도알았다.
가급적이면그를석방하려고했으며종당에는물로손을씼으면서그책임을유대인
들에게묻고있다.
그가무고한청년예수를십자가에처형하도록허락한것은오직’정치적이유’때문
이었다.
로마직할지역의행정책임자로서군중의소요가다시일어난다는것은그의정치적
입지를약화시키는일이며잘알지도못하는청년하나때문에유대인세력들과의
반목을살이유도없었다.
빌라도의선택은그때로서는특별히좋은것도,나쁜것도아닌일상적인것이었을뿐
이다.

같은부분의사도신경영역은그표현이훨씬유연하다.
sufferedunderpontiuspilate,로번역했다.
빌라도때에,또는빌라도치하에서로번역할수있으며이는사실에더가까운표현
이기도하다.
나는개인적으로이부분을,
‘빌라도때에유대인들에게고난받으사’로정정해서읽곤한다.
개인이사도신경의내용을수정할수있는가.
얼마든지그렇게할수있다.

사도신경은8세기이후서방교회의대표적인신앙고백서인것이사실이지만그건
500여개가넘는모범적신앙고백문중하나일뿐이다.
한국의개신교는사도신경의한부분을삭제한후사용하고있다.
‘본디오빌라도에게고난받으사십자가에못박혀죽으시고.’다음에
‘음부에내려가시고.’를임의로삭제해버렸다.
한국의카톨릭과성공회는본문그대로를사용하고있다.
사도신경은성경이아니라성경을해석한상대적인교회의전례문(典禮文)이다.
거기에절대적가치를부여,매이는것자체가몹씨위험한일이다.
기독교는경전을가지고있는고등종교답게그신앙고백에서도유연성을가져야
한다.
어느하나의신앙고백을도그마로묶는것은스스로입지를좁히는경직성일뿐이다.
빌라도는특별히잘한일도,잘못한일도없는전형적인로마의고위관리였다.
당시를기준할때다른총독이라해도결과는마찬가지였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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