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지못하면동물적존재에더가깝다.
따라서짐승같은놈,짐승만도못한놈이실제로존재하는게사람사는사회다.
이때배운다는것은학교의학습만의미하는것은결코아니다.
인격적인간의바탕은학교의학습이전가정에서이미형성된다.
가정교육의중요성은그래서무게를더하는것이다.
가정에서의가르침은어디에서나오는가.
그게집안의어른이다.
농경사회에서의어른은’경험’을축적한귀중한존재다.
파종과재배,결실과보관에대한일체의농사경험을가지고있는절대적존재였다.
한편투박하기는했지만선대로부터내려오는’사람의도리’에대해서도그들은
엄격한선생이었다.
정말한집안의어른이었던것이다.
핵가족시대는대가족의해체를의미했으며어른이가지고있던’경험’은과학이
대체했다.
집안에서어른이없어진것이다.
그러나대부분의경험은과학으로대체될수있지만과학이해결할수없는분야가
사람됨의’기본’이되는도덕과윤리적차원이다.
도덕과윤리는이념의세계이지과학은아니기때문이다.
근자우리사회에수많은망종들이나타나는것은근본을배우지못해서생기는구조적
현상이다.
그래서무서운것이고개선도어렵다.
아무리앞서있는선진사회라해도그들이사는속내를들여다보면대단히완고한
가치체계가형성돼있고그것을가르치는엄격함이있다는것을알수있다.
어른은안보이지만어른의’역할’은엄연히존재하고있다.
겉으로봐서는모두가비슷한수준에서사는것같지만계층이갈라지는틈새를보면
기초교육에서판가름난다.
상류계층에존재하는’룰’이따로있는것이다.
거기에도집안-가문이있다는뜻이다.
그건학교교육과는다른,집안의전통이가지는학습이다.
어른들로부터대를이어전수된가치체계가등뼈를이루고있는것이다.
한가정뿐아니라하나의사회공동체에도’어른’과그’역할’은언제나있어야하는
선순환적기능이다.
그게없다면막가는사회가될수밖에없다.
관광의도시’로마’에는세속적의미의’밤문화’가없다.
교황이계시는곳이기때문이다.
같은이스라엘땅이라도텔아비브에는관광문화가있지만예루살렘은전혀다르다.
예로부터성도(聖都),거룩한곳이기때문이다.
그런곳에사는사람들은그런분위기를받아들이고순응한다.
딱짤라그이유를설명하기는어렵지만지금우리사회에는’어른’이보이지않는다.
모두가어려워지고,혼란스러울때지침이되는’말씀’이아주귀하다.
진정한의미의권위(權威)가30년묵은적폐(積弊)가되어척결됐기때문이다.
권위와권위주의를구분하지못하는무지한세력이저질러놓은일이그것이다.
진정한의미의권위가부정되면그건그대로막가는세상이될수밖에없다.
견제하는이가없기때문에제마음대로하고도어디가잘못되었는지조차모르게된다.
지금우리모두가이렇게한심한세상을살고있다.
생각해보면끔찍한일이지만모두의표정은백치처럼편하다.
무서운일이다.
두렵고근심스러운사회적현상이아닐수없다.
‘인간의삶에서돈과경제타령만하고아름다움이없다면,
내밀한영역인그아른다움을등지고산다면,그건행복에이르는길목을
놓치고마는것이다.’
지난10월21일,
길상사에서법정스님이하신법문이다.
‘돈과명예를추구하는수행승은초야에묻혀사는시골선비만도못하다.’
스님의질타는이어졌다.
‘최근불교계의문제는출가정신의부재에서비롯됐다.
무엇때문에출가했는지거듭묻지않을수없다.
같은옷을입고있는것이면목이없다.’
지금우리사회에서이렇게바른말을할수있는분은몇안된다.
카톨릭에는김수환추기경이계시지만개신교에는아무도없다.
종교가제목소리를내지못하고있는것은이미죽었기때문이다.
덩치는커도그건껍데기일뿐이다.
나는개인적으로법정을만나본일이없다.
그러나그의글은가까이두고늘읽는다.
나는크리스챤이지만법정을존경하고그말씀에귀를기울인다.
그분이’참’을말하기때문이다.
이시대에’참’을말한다는것은여간한용기가아니면안된다.
또권위가있어야한다.
그분이서양고전음악에대해해박한지식을가지고있는것이나성경말씀에정통하고
있는것은그가학승(學僧)이기때문이다.
‘참’을향해가는길은서로다르지만그다름은지극히지엽적인것이다.
종교다원주의를옹호하는게아니라구도자(求道者)의자세가그렇다는얘기다.
그의쓴소리는우리들에게는약이다.
그가들려주는’참’은은은히울려퍼지는종소리처럼우리의삶을치유한다.
그날길상사에는2000여명이모여그분의법문을들었다고한다.
‘참’에목마른사람들이모인것이다.
어른이없는사회,어른의목소리가없는사회에서그것을갈급해하는사람들이모인
것이다.
지금우리사회는한마디로모든것이아주’현란’하다.
눈부시고빛나고아름다운것으로차고넘친다.
그리고그대부분이젊은이들이선호하는것들이다.
그런데역사를읽어보면’현란’했던모든문명권은한결같이같은방법으로몰락했다.
야만에게먹힌것이다.
극과극이만나한쪽이사라졌다.
현란한것이지속적으로존재하기위해서는그것을받쳐주는보이지않는견고한부분,
바탕이있어야한다.
잘지은집이그밑에튼튼한기초를가지고있는이치와마찬가지다.
우리사회는보이는’현란함’은있는데보이지않는기초에는아주취약한민족성을
가지고있다.
외화내빈-外華內貧이그것이다.
기초가부실하면무너지는것은삽시간이다.
손써볼사이도없이붕괴되고만다.
우리는이미그런일을여러번겪은바있다.
다시그런역사의되풀이가없으라는법도없다.
모든사회공동체에’어른’이있어야하는이유는자명하다.
어른의기능이있어야그사회는단단한기반을가지는건전한공동체가될수있다.
어른은단순한수구세력이아니다.
그건어디까지나정치용어일뿐이다.
현란한것은받쳐주는힘이있어야한다.
겉이아무리화려해도그속이비어있으면송곳끝만닿아도터지는풍선과같다.
그런허약한체질로는견디어내지못한다.
바야흐로모든사회는더다양해지고더가까이에서서로에게영향을주고받는다.
더이상어떤나라도,사회도게토안에서살수는없다.
문을여는순간모두가경쟁상대다.
그경쟁에서생존하기위한조건의하나가유연성이다.
유연성은안에가지고있는힘이없이는생기지않는다.
그리고그힘은축적된경험에바탕한다.
과학만으로는채워지지않는내용이그것이다.
우리사회가지금보다더나은사회,사람이사람답게사는사회가되기위해서는
참을말하는,쓴소리를말하는어른들이많아야한다.
무엇이잘못되었는지를알려주는경고가있어야한다.
그리고그것을바로잡는길라잡이가있어야발전할수있다.
어른은단순히나이많은노인을이르는말이아니다.
그안에축적된귀중한경험이사회를위해기여하는정황을의미하는용어다.
‘어른’이더이상고리타분한수구세력을이르는말이되어서는안된다.
그것은현실적으로필요한또하나의건전한세력이다.
경험이라는그릇속에온갖노하우를가지고있는우리사회의크낙한자산이다.
‘저뜰에물들기시작한단풍은작년과도다르고내일도다를것이다.
순간순간내뿜는아름다움을허심탄회하게보지않고작년과비교하거나하면지금
저아름다움을놓치는것이다.’
법정은그날회심탄회를말했다.
허심탄회가무엇인가.
비어있는깨끗하고솔직한마음이그것이다.
현대를사는우리들의마음속은온갖쓰레기로가득차있다.
스님의말씀은그걸버리고참을담는자리를만들라는뜻일것이다.
본래’종교를가지는생활’이그걸위한것이아니겠는가.
이가을이다가기전자기를성찰해볼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