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의 마음.
사람들은왜종교를가지는것일까.
종교의모습은서로달라도그깊은가르침에는커다란공통점이있다.
절대선(善)에대한것이그것이다.
그것을부르는명칭은여러가지지만상대적인간에대한절대적존재의의미는종교가
존재하는근본적인이유가된다.
그래서종교-宗敎는근본을가르친다는문자적인뜻을가지고있다.
사람이종교를가지는것은자기의인간적인한계(限界)를깨달았기때문이다.
지혜로운사람들이다.
물리적인수명(壽命)에서,
생각하는범위에서,
온갖환경의지배를받는나약함에서,
고통앞에무력한육체의한계에서,
의지대로살지못하는연약함에서자기의부족함을깨달은인간이종교를찾는것은
당연한일이기도하다.
그러나그것은어려운선택이기도하다.
그결과가본질적인변화를요구하기때문이다.

사람은종교를가지게되면그종교가요구하는’신앙생활’을하게된다.
신앙생활은이미평범한일상과는전혀다른세계다.
종교를가지기이전과이후의차이는그래서근본적인것이어야한다.
한사람의’신앙생활’을살펴보면그가믿는종교와그종교의내용이나타난다.
그것은미신의수준에서고등종교에이르기까지참으로다양한모습을하고있으며
신앙생활자체도천차만별이다.
신앙생활은크게두가지형태로분류할수있다.
그하나는종교를’수단화’하는경우다.
자기가원하는것을얻기위해종교를가지는것이며대표적인것이기복신앙-祈福信仰
이다.
이경우그인간은전혀변하지않는다.
자기의이기적욕망때문에종교가필요한경우이기때문에사람은전혀변하지않는다.
아무리고등종교라해도이렇게접근하는인간앞에서는미신-샤머니즘화한다.
종교가변질하는것이아니라이기적인인간이그종교를수단화했기때문에딴것이
되는것이다.
지금한국개신교의구조적인위기가바로그것이다.

두번째유형은,
종교를가짐으로서그인간이변하는경우다.
기독교신앙에서,성경은그것을,metanoia-메타노이아-전향(轉向)이라고정의한다.
보통’회개’로번역된헬라어원어가그것이다.
잘못을뉘우치는수준이아니라방향(方向)자체가바뀐다는뜻이다.
가치관이바뀌는것이다.
중생(重生)-거듭난다는것이그의미다.
유대인들의선생이었던니고데모도처음에는그의미를몰랐다.
주께서는’성령으로거듭나야한다’고말했으며성령의존재를바람으로비유했다.
신비한거듭남-metanoia의설명이그러했다.
예배당안에함께앉아있어도한번난사람과거듭난사람은겉으로봐서느모른다.
그러나그들의일상생활을살펴보면그구분은확연해진다.
전혀다른내용과모습으로살기때문이다.

예수를믿는다는것은무엇일까.
설명은여러가지일수있다.
그러나그근본에서대답은하나뿐이다.
예수의가르침대로사는것이예수를믿는생활이다.
그렇게살기위해서는그가한신말씀하나하나를암기하는것이아니라그분의마음을
알고닮아야한다.
그분의마음을닮기위해서는먼저그분을사랑하지않으면안된다.
그래서성경말씀을찬찬히읽으면서그의가르치심에대해배워야한다.
우리가특히복음서들을정독해야하는이유가거기에있다.
읽고,또읽고,음미하고,반추해봐야한다.
그때비로서큰윤곽이보이기시작한다.
사실,그건놀라운체험이기도하다.
R.H.McDaniel은1914년,
‘주예수내맘에들어와계신후변하여새사람되고’라는노랫말로그놀라운체험을
고백했으며G.H.Gabriel은여기에감동적인곡을붙였다.
Daniel은’물밀듯내맘에기쁨이넘침은주예수내맘에오심’이라고고백한다.
기쁜마음으로예수의마음을닮는다는것은이미구원된증거다.
그런사람의삶이전과같을수는없다.
Gabriel은다시1932년노랫말과곡으로자기의신앙을고백했다.
‘내마음에평강이찾아옴은주님의마음을본받았기때문이며,
내영혼이날마다주를만나신령한말씀을배우는것도,
내마음에불평이없어지는것도,
모두가주님의마음을본받았기때문이다.’

어떤사람은주님의마음을본받을수있는데또어떤사람은그렇지못한게현실이다.
우리가주님의마음을본받기위해서는,
주님의마음을닮기위해서는,
주께서내마음에들어오기우해서는,
우리들마음속에그것이자리잡고채워질수있는여백(餘白)이있어야한다.
영적으로빈자리,빈마음,빈공간이필요한것이다.
그게없다면metanoia는불가능하다.
지금우리모두는이여백을가지기가아주어려운세상을살고있다.
근자자주쓰이는말중에’살아남기위해’라는게있다.
개인도,기업도,국가도살아남기위해최선을다하지않으면안된다는뜻이다.
이살벌하고각박한표현은지금우리가살고있는세상을가장확실하게정의해주는
시사용어이기도하다.
살아남아야하는이유는경쟁에서지면죽기때문이다.
경쟁이무엇인가,
겨루기다.
속도,힘,긴장,고도의집중력이요구되는상황이다.
이런일상에서’마음의여백’은들어설자리가없다.
그것뿐이아니다.
개인적으로가지고있는이기심,욕망,집착,성취욕은분명하게여백을거부하는
각박한정서들이다.
종교를수단화하는기저에는언제나이정서가깔려있다.
그어디에서도,그어떤것에서도여백은찾을수가없다.
다른것이들어설자리가없는것이다.

신양성서빌립보서2장5절에는,
‘너희안에이마음을품으로곧그리스도예수의마음이니…’
라는바울사도의권고의말씀이있다.
품는다는말은어떤생각이나감정을마음속에간직하는것이다.
원문은proneo,-attitude로서,
마음가짐이나태도를의미하기도하지만,
어떤생각을마음에두고’몰두’하라는뜻이다.
그리고그것이태도로나타나는경지에까지이르러야한다는의미다.
예수가주신가르침을읽고,
그가르치심의깊은뜻을생각하고,
그것을이해하고받아들이는것이proneo다.
한마디로예수의마음을닮는것이다.
‘주예수내맘에들어와계신후변하여새사람’되는것이metanoia이며예수의마음을
가지고신앙생활하는것이proneo다.
종교를수단화하는인간으로서는전혀불가능한신비한세계다.

우리모두는마음의여백을가지기가몹씨어려운세상을살고있다.
그첫째가스피드다.
자고일어나면달라지는세상에서우리가살고있으며그변화하는것들을쫓아가느
라고허둥대는게우리들이다.
다음이무서운경쟁이다.
정말’살아남기’위해피나는경쟁을해야한다.
경쟁은내가이기기위해남이쓰러져야하는속성이있다.
자칫잘못하면내가쓰러지기때문이다.
세번째가맘몬(mammon)이다.
단순히’돈’이아니라그구매력이가지는재화(財貨)의세계가우리를포로로한다.
그래서현대의우상은물신(物神)이다.
이것들을더많이쉽게차지하기위해모두가일류지향적(一流指向的)된다.
각가정이사교육에쏟아붓고있는돈의규모가그것이다.
이렇게각박한환경속에서’마음의여백’을가진다는것은결코쉬운일이아니다.
‘여백’그자체를모르고사는사람들이부지기수다.

여백을얻기위해서는반드시댓가를지불해야한다.
스피드와경쟁과맘몬에서비켜서야된다.
질풍노도와같은흐름에서빠져나오는것이다.
그래서그것들을다잃어야한다.
새로얻는것이그것들보다더중요한것임을아는자만이비켜설수있고빠져나올수
있다.
그렇게얻는여백에새로운것이채워질때가지는기쁨이세상의것보다더크다는것을
깨달은자의선택이그것이다.

종교를가진다는것,
신앙생활하는것을쉽게생각하는사람들이많다.
그속을모르기때문이다.
한인간이자기의전부,생명까지걸고선택하는길임을모르기때문이다.
그래서그들은쉽고넓은길을여럿이함께걸어가면서그게신앙생활인줄안다.
그런사람들에게는종교적인간으로서의사회적기능은하나도없다.
남은모두가경쟁상대인타자들이지’이웃’은아니기때문이다.
참종교는모든타자를’이웃’으로규정한다.
그래서종교의사회적기능이있는것이다.

2008년,무자년의새해가시작됐다.
모든일이마찬가지지만신앙생활에도목표가있어야한다.
우리가부족한인간들이기때문에과정을위한목표설정이반드시필요하다.
마음의여백을만들어예수의마음을닮는목표를세워야한다.
우리의소망이올바르고진지한것이라면주께서도우리를도우실것이다.
우리의준비가선한것이라면그분은우리들을찾아오실것이다.
마음의여백을가지기가어려운세상일수록그여백을가지려는우리들의노력도
그만큼절실해야한다.

謹賀新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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