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3장.
고대세계에서’고린도사람’이란곧’매춘부’를의미했다.
주후52년경제2차전도여행중인바울에의해고린도교회가세워졌을때도이국제
항구도시의수호여신인아프로디테신전에는수많은여사제(신전의매춘부)가있었다.
고린도는’불’이라는뜻이며,
펠로포네소스반도와본토사이의지협에위치한고대그리스도시였다.
지금이곳에는어마어마하게깊이파내려간고린도운하가있다.
로마령아가야의수도였으며상업,무역,정치의중심지로크게번영했으며동시에
배금사상,유물주의에빠져향락과폐풍이만연한곳이기도했다.
지금의고린도유적지에는바울도드나들었던가게들의건물골격이그대로
남아있으며그들이이미수세식화장실을사용했던흔적도뚜렷하게남아있다.

결과적인입장에서말한다면,
바울은기독교를위해’준비된사역자’였다.
사실상바울은기독교의창시자이기도하다.
그의’갈라디아서’와’로마서’를정독해보면예수그리스도의기독교를유대교에서
분리해내는신념과확신,그리고논리정연한설명을만날수있다.
신임팔레스틴총독’베스도’는바울의변론을들어본후말했다.
‘바울아네학문이너를미치게했구나.’
지금우리가가지고있는단편적인기록들만으로도바울이라는인간이얼마나위대한
사역자였는지를충분히알수있다.
당시를기준할때그는거의완벽에가까운인간적인조건을가지고있었다.
혈통,종교,교육,문화.시민권에서그러했으며그모든조건들이기독교를시작하고
전파하는데결정적인도움이된것도사실이다.

지금의터키(소아시아)타르소스(다소)에는돌로만든아치형의’클라오파트라문’이
있다.
보라빛의아름다운돛을가진여왕의화려한배가이곳을방문한것을기념하는유적
이다.
바울은그곳에서태어난디아스포라였으며그의집안은베냐민지파의정통유대인
가정이었다.
그들은베냐민지파가배출한위대한왕사울의이름을따서아들을사울이라불렀다.
사울은13세경누이들이살고있는예루살렘으로유학했고유명한가말리엘문하에서
공부했다.
바울의제자인누가가기록한사도행전을읽어보면이미그는청년시절에유대교
안에서’지도적위치’를인정받았고막시작된기독교를박해하는일에앞장섰다.
히브리의종교,그리스-로마의문화,제국로마의시민권은청년사울이가진상대적
으로유리한조건들이었다.

지금로마에는바울성당과함께바울기념수도원도있다.
그수도원안에는바울이참수될때머리를올려놓았던작은돌기둥이남아있다.
로마시민권자는참혹한십자가형에서면제되었으며대신빨리죽는참수형을받았다.
바울은예수가그리스도이심을확신하는믿음때문에순교했다.
자기한목숨을바쳐그리스도를증거한것이다.
사울-큰자,위대한자가바울-작은자가되어그리스도를위해순교했다는것은논리적
으로는설명이어려운전향이다.
누가가기록한사도행전9장에보면,
그가예수와충돌,실명하는사건이있다.
바울은,예수를체험한사람이다.
예수와부딪혀서깨진사람이고,그체험을통해목숨을걸고그리스도를증거한인물
이다.
예수는바울이라는당대의놀라운인물을통해그리스도로정리되었고,설명되고,전파
되었다.

바울은그때의사건을이렇게기록하고있다.
‘하나님께서는내가나기전에이미은총으로나를택하셔서불러주셨고당신의아들을
이방인들에게널리알리게하시려고기꺼이그아들을나에게나타내주셨읍니다.’
갈라디아1:15-16.공동.
체험된신앙과소명에대해그가어떤확신과신념을가지고있었는지를알수있는대목
이다.
‘내가복음을전한다해서그것이나에게자랑거리가될수는없읍니다.
그것은내가마땅히해야할일이기때문입니다.
만일내가이복음을전하지않는다면나에게화가미칠것입니다.’고전9:16.공동.
정말놀라운사명감이다.
그가전도여행에서겪은기록들을자세히읽어보면참으로많은어려움을겪었고실제로
죽을고비도많았다.
바울은정신-신념-믿음뿐아니라육체적으로도강인한사람이었다.
그는’천막수리업자’로서분명한수입원인직업도가지고있었다.

바울이체험한예수는어떤분이었을까.
그가목숨을걸고자기의모든것을바쳐증거한그리스도의가르침은어떤것이었을까.
신약성서27권중그3분의1이상을차지하는그의서신들은실로많은내용을담고
있으며일상에서의신앙생활에지침이되는말씀들로가득차있다.
그중하나가고리도전서13장이다.
보통’사랑장’으로불리는이부분은널리알려지고유명한만큼크게오해받고있는
부분이기도하다.
바울은,
예수의가르침에서’사랑’이차지하는비중이크다는것을깨닫고있었다.
주께서는하나님을사랑하는것과이웃을사랑하는것이모든율법의고리라고하셨다.
바울은13장마지막부분에서,
‘그런즉믿음,소망,사랑,이세가지는항상있을것인데그중에제일은사랑이니라.’
하고강조한다.
사랑이없이믿음과소망은있을수없다는역설이다.
그가설명하는내용을읽어보면주께서직접주시는말씀처럼예리하고구체적이다.

‘사랑’이없다면사람의방언과천사의말을한다해도소리나는구리와울리는꾕과리일
뿐이며,놀라운예언의능력과산을옮길만한믿음있다해도그게아무것도아니며,
내가가진모든것을내어주고구제할지라도아무유익이없다고했다.
그리고는유명한설명이시작된다.
사랑은오래참고,시기하지않는다.
자랑하지않으며교만하지도않다.
무례하지않으며사욕을품지않는다.
불의를보면분노하고,진리를보면기뻐한다.
방언이그치고지식이끊어져도사랑은가실줄모른다.
이내용을자세히읽어보면고전13장이’사랑장’이아니라는것을곧알수있다.
수신인이없는서신이었다면그럴수도있다.
그러나고린도전서는바울이두번째로고린도교회에보낸편지다.
(1서와3서가소실되어2서와4서가전,후서가된것이다.)

다른서신도마찬가지지만고린도전후서역시이제막시작된이방인교회가신앙생활
에대해바울에게보낸질문들에대해대답하는서신이다.
고린도교회가안고있는여러가지문제의근본원인은’사랑’이없기때문이라는
질책이바로13장의내용이다.
경고의말씀이며희구하는말씀이기도하다.
원문에서사랑은agape다.
신양성서에서이단어는인류에대한하나님의사랑을의미하고있으며,
그사랑을본받아가지는크리스챤들의형제애도포함된다.
땅위에서는자식을향한어머니의사랑이아가페다.
이아가페라는헬라어는처음부터기독교의용어로만쓰여진특이한단어이기도하다.
가끔결혼주례를맡은목회자가신랑신부에게고린도전서13장의내용으로주례설교를
하는경우를보게된다.
참으로민망한일이다.
번역성경만읽으면그렇게된다.
부부의사랑은이성간인남여의사랑이며그것은eros다.
부부사이의사랑이아가페가되면그건친구끼리의사랑이지남여의사랑은아니다.

확신은체험된신앙의산물이다.
예수를만나깨진사람들은바울처럼’변화’하게된다.
그변화의가장큰특징이전에는타자로보이던사람들이이웃으로보이는점이다.
그와나사이에그리스도가계시기때문이다.
바울이고린도교회에대해이렇게길게,구체적으로아가페를설명하는이유도
‘사랑’이없다면그리스도의공동체가아니라는경고의말씀이다.
아가페의출발은’관심’이다.
관심이없으면다음단계는없다.
관심은이미이타적인정서이며그것이바탕이되었을때에만’이웃’은존재할수있다.
다른사람을배려하는것,
다른사람의입장을살피고이해하는것.
그리고그입장에동참하는게아가페다.
주기는주되받는것이전제되지않는게아가페다.
엄격히말해아가페를실천해본사람만이신앙의진수에접근해본사람들이다.
바울이그토록아가페를강조한이유가그것이다.

지금한국개신교의위기는,
바로고린도교회가오래전에겪었던위기그대로다.
왜냐하면시대는달라도사람사는모습과그내용은별로다를게없기때문이다.
아가페가없는교회,
아가페를가르치지않는교회,
아가페가뭔지알지못하는교인들,
물량과이벤트와기복으로가득찬오늘의교회가고린도교회와다른건하나도없다.
고린도전서13장은,
오늘,지금한국교회에주시는말씀이다.
성경은죽어있는고전이아니다.
‘살아계신말씀’이라고부르는이유가그것이다.
오늘에재해석되는,오늘의상황에그대로대입되는기능과능력이살아있는말씀이다.
예나지금이나아가페가없는교회는단지인간의집단일뿐이다.

Catharsis-카타르시스.
아리스토텔레스가시학6장에서사용한이유명한용어는,
인간이비극을봄으로서정화되는정서를설명하는단어다.
그리고이단어는진화를거듭해지금은강박관념을표출하는,해소하는의미로
쓰인다.
그게배설-排泄이다.
인간의신앙생활에서자기감정의배설을신앙체험으로오해하는잘못은개인과교회를
위해치명적이다.
제설음에울면서그게회개인줄안다.
한국개신교회에아가페가부족한것은아가페가무엇인지를모르는무지와배설과
신앙적체험을혼동하는수준때문이다.
정말고린도전서13장을제대로,다시읽어야할때가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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