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파심-老婆心.
40이넘은아들이출근하면서노모(老母)에게인사드린다.
‘어머니다녀오겠읍니다.’
‘오냐,다녀오너라.’
그리곤나가는아들을다시불러세운다.
‘얘야,길건널때좌우를잘살피고조심해야한다.’
40이넘은아들에게길을조심하라고당부하는게말하자면노파심이다.
아들은그것이어머니의진심임을잘알고있다.
그래서공손히대답한다.
‘네,조심하겠읍니다.’
노모의그당부는40이넘은아들에게현실성이있는것은아니다.
그러나아들을향한노모의애정은현실이다.
그아들이퇴근해서돌아오는집에는노모의애정과가족들의따뜻한정이그를
기다리고있다.
그래서노파심은현실이다.
사람사는세상이그런것이다.

2007년8월현재,
우리나의주택은1.322만채다.
그중아파트가696만채로전체의52.7%로반이넘는다.
보통사람들이입주해서사는아파트를토끼장,성냥갑이라고부른다.
그모양새가규격화(規格化)되어있기때문이다.
규격은사물을일정한틀에맞추어독자성이나개성을없애는것이다.
같은’틀’에서구워내는붕어빵이똑같은게그런것이다.
처음아파트가대량으로보급돼많은사람들이입주했을때,제집을잘못찾아가는
일이빈번했다.
호수는맞는데동(棟)이틀린경우가그러했고이소재는장,단편소설에자주
인용되기도했었다.
일반적인의미에서그넓이에관계없이모든아파트의구조는획일적이다.
규격화는같은건축재로최고의효율을낼수있고그만큼단가도낮출수있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벌집이가지는기능성이그런것이다.

사람은그게누구든자기의주거환경에서크게영향받는다.
바다를보면서자란사람의넓은심성이있고,
산을보면서큰사람이가지는도량이있다.
시골사는사람의흙냄새나는마음이있는가하면도시에서자란인간들의각박한
마음이있다.
아파트는콩크리트로정열된규격화의공간이다.
비록앞집과도소통없이살지만아파트가가지는’규격’에서는모두가같은환경에서
사는셈이다.
주택의절반이상이아파트인나라는우리밖에는없을것이다.
선진국들을여행하면서봐도우리같은대규모아파트단지는볼수가없다.
규격은,또다른규격을만드는속성이있다.
사람이라고예외일수가없다.
가장이기적이고파편화된개인이라해도아파트의규격성에서해방되는것은아니다.
일상을그안에서살기때문이다.
자기도알지못하는사이에인간도규격화되는것이다.

규격의특징은획일성이다.
과거전체주의국가들은무서운시스템으로그국민을규격화했다.
군국주의,파시즘,나치즘,스탈리니즘이그것들이다.
오늘의북한은거의유일하게남아있는전체주의폐쇄국가다.
규격은획일성을불러오고,
전체주의는’다른생각’을허용하지않는다.
규격화의가장무서운폐해는다양성을배척하는것이다.
나와다른것을인정하지않으려는독선은규격화가가져온가장무서운결과다.
지금의우리사회공동체는민주주의정치체제를가지고있으면서도그운용은거의
전체주의적이다.
‘다른것’을받아들이려하지않는다.
계속모난돌이정을맞고있다.
다른것들이모인게’다양성’이다.
인류역사에서,특히문화사의기록을보면발전한사회의공통분모가’다양성’이다.
서로다른것들이부딪히면서더새로운것이나타나는게발전이기때문이다.

성공을지향하지않는사람은없다.
그성공의길이여러가지인사회가건전한사회다.또그래야한다.
사람은그생긴것도서로다르고재주도서로다르다.
그런데우리사회의통로는하나뿐이다.
‘입시전쟁’이그것이다.
대학-학벌이라는규격품만통하는획일적사회-전체주의적규격사회이기때문이다.
입으로는직업에귀천이없다고하면서도3D업종엔지원자가없다.
천지가백수인데중소기업에선손이모자라불법체류외국인들을고용하고있다.
규격사회의경직된사고방식은규격품이외의것은인정하지않으려한다.
붕어빵틀로는붕어빵밖에는찍어낼수가없다.
그붕어빵백날찍어내봐야절대큰돈은만져보지못한다.
규격품은부가가치가가장낮은제품이기때문이다.
그렇게낮은단가로는승부가될수없다.
지구촌시대에는더그렇다.

색맹(色盲)은,
시각장애자는아니지만특정색깔을보지못하는부분장애자다.
똑같이난청(難聽)은잘듣지못하는경우도있지만특정주파수를듣지못하는부분
청각장애다.
난청은소리를제대로듣지못하는질병이다.
사실보통일이아닌것이다.
나와주변이차단되기때문이다.
일단난청이시작되면,
먼저우울증이온다.
우울증이무서운것은자살로이어지는케이스가가장많은정신질환이라는점이다.
다음이이유없는불안심리다.
불안하다는것은정서적으로안정적이지못하다는뜻이다.
정서불안이엽기적인범죄로이어지는일은흔한경우다.
난청은걱정거리를만든다.
현실적으로걱정해야할일이아닌데도계속걱정한다는것은한인간을감성적으로
파괴할수있다.
다음이편집증과망상이다.
망상은정신장애때문에생기는그릇된판단이며편집증은이망상에사로잡히는현상
이다.
무서운골목인것이다.

난청이가져오는다른하나의폐해가사회적고립이다.
잘듣지못한다는것은다른사람들과의접촉을기피하려는충동으로이어진다.
그것이오래계속되면스스로자초한고립에갇혀사회와는점점더멀어진다.
그리고난청이가져오는결정적인타격은,
‘삶의질’이저하되는것이다.
정상적인일상을살수없다는게그것이다.
예를들어’음악’을듣지못하는게그하나다.
생활을질이그렇게떨어지는것이다.
난청이가져오는폐해는결코’보청기’가해결하수있는사안이아니다.

지금의젊은이들이노년에이르는2040년경,난청은카다란사회문제가될것이다.
MP3나CD풀레이어를듣기위해귀에꼳고있는이어폰이가져오는’쓰나미’가
그것이다.
이미노년의난청이무섭다는경고는수도없이발표된바있다.
그런데도젊은이들은귀에서이어폰을빼지않는다.
왜그럴까.
규격화됐기때문이다.
너도나도이어폰을끼고있는모습이21세기를사는첨단의삶이라고알고있기
때문이다.
귀에서이어폰을빼는것은이단아이며겁쟁이다.
이어폰을빼는,그다름이용납되지않는것이다.
이어폰에서나는그쇳소리는치명적으로고막을때리는소음이지음악은아니다.
난청은이명(耳鳴)과함께치료되지않는난치병이다.
사람이정상적으로듣지못한다는것은물속에서혼자사는것이나다름없다.
그고통이기다리고있는데,
귀에서이어폰을빼지못하는규격화는그래서전체주의적이다.
그획일성은유행이라는이름으로우리들을기만하고있다.

우리모두가지금큰혜택을입고있는온갖발명들은생각하는방법에서규격을깬
사람들이이루어낸위업이다.
반대로생각하고,뒤집어생각하고,단단한껍질을쪼개낸사람들이만들어낸놀라운
결과들인것이다.
규격화는생산성에서,독창성에서,효율에서뒤떨어질수밖에없다.
2차대전이후,확실하게선진국으로진입한나라는아직없다.
우리는자타가인정하는강력한후보국이다.
우리가선진국으로진입하기위해서는강력한엔진의출력이필요하다.
그힘은규격화가아닌다양성에서만나올수있다.
작년8월서울시는,
2008년부터모양이똑같고층수도일율적인상냥갑아파트는못짓게하겠다고발표
했다.
같은단지내에다양한층수,다양한디자인이섞여야건축심의에서통과시키겠다는
것이다.
발상의전환이시작된것이며규격을탈피하려는시도가시작된것이다.
정말기대되는일이다.

노파심에서하는소리는언뜻들으면아무짝에도쓸모없는잔소리처럼들린다.
그러나꼭한가지알아야할것은,
노파심안에는돈으로살수없는연륜이녹아있다는사실이다.
경험하고체험된값진지혜가그안에있다.
과거를모르면현재를알수없고내일을예측할수가없다.
노파심은오늘을알게해주고내일의문을열어주는열쇠다.
그래서노파심이없는사회는위험한사회다.
좌우를살피지않고길을건너다사고를당할수있다.
40이넘은그아들은지혜로운사람이다.
그래서노모의노파심을알고이해한다.
그것이얼마나소중한것인지를알고있는것이다.
아들을사랑하는그노모가떠나고나면그누가자기를그토록염려해주겠는가.
40이넘은아들은그것을잘알고있는것이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