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자가 없는시대.
단순하게생각하는사람들은과학이발달하면종교는소멸된다고생각했다.
물론종교의미신적측면은확실히과학의영향을받는다.
그러나고등종교는전혀그렇지가않다.
형태를달리할뿐그필요성은전혀줄어들지않고있다.
인간의종교적심성이그걸원하기때문이다.
전통적인의미에서의종교와새롭게모습을드러내는종교적환경은다르게보일수있다.
템플스테이,요가,명상같은현대인들의종교적수요는외형에서는완전히다른것처럼
보인다.
그러나그것이’종교적인이유’때문에생기고영위되는것이라면종교자체는그대로의
연속성을가지는것이다.
인간의이성(理性)이철학을낳았다면인간의영성(靈性)은종교적영역이다.
어떻게사는가를묻는것이철학이라면죽은다음의세계를이야기하는게종교다.
그것은미래의세계이기때문에한번도인간의곁을떠난적이없는궁극적인문제이기도
하다.
인간을육체와정신으로만생각하는사람은종교를가지지않는다.
그러나인간이육체와정신,그리고영적존재임을믿는사람은종교의존재를인정한다.
경전을가지고있는고등종교인기독교도초기로올라갈수록미신적인부분이많았음이
드러나며지금까지남아있는잔재도많은편이다.
그것이과학이전과이후의차이다.

인간이모여사는사회공동체는,
아주처음부터종교가있었다.
그리고그종교의기능은비일상적인차원과관계가있다.
초월적인것,기적,섭리의세계가그것이다.
인간에게는차안(此岸)뿐아니라피안(彼岸)도필요하기때문이다.
지금도종교의사회적기능은마찬가지다.
일상이비본질적인것이라면종교는본질적인것이다.
종교가말하는내용을’진리’라고하는이유가그것이다.
세상은거짓을말해도종교는’참’을말한다.
‘참’을말한다고믿는게또종교다.
그래서종교의타락과변질이무서운것이다.

신,구약을통해같이쓰여지는용어중하나가예언자(預言者)다.
그의미에서는똑같은뜻으로쓰고있는선지자(先知者)가더본래의의미에가깝다.
선지자는세상일을남보다먼저깨달아아는자다.
예언자나선지자로번역된본래의단어는prohetes,직역하면하나님의계시(啓示)를
선포하거나해석하는자다.
구약에서는왕,제사장과함께기름부음받는세가지주요직분중하나다.
prohetes는하나님의말씀을받아그뜻을백성에게전하는사람이다.
따라서하나님의영감에감동되어그분과소통하는존재다.
구약의마지막선지자이자신약의첫번째선지자인’세례요한’을보자.
그가유다광야에서외친것은,
‘회개하라,천국이가까왔느니라’였다.
그것이자기백성에게전하라고주신하나님의말씀이었다.

현대의예언자,선지자는누구일까.
그게교회다.
그리고더좁은의미로는목회자다.
이때의교회는곧예배당은아니다.
예배당은예배를드리는집,장소일뿐이다.
교회는ekklesia,부르심을받은무리,사람들이다.
교회는세례요한처럼말로,행동으로,일상의삶으로예언자-선지자의기능을가져야
교회다.
하나님의부르심을받은무리,-교회의사명이그것이다.
이세상을향해’회개하라,천국이가까왔다.’하고외칠수있어야한다.
그의미를넓히면세상의모든옳지않은것에대해그잘못을알게하고바로잡게해야
한다.
언제나종교의순기능이그것이다.
세상에대해’바른말’을하기위해서는,
세상을보는눈이달라야하고,
생각하는기준과방법이달라야하고,
표현하는언어가달라야한다.
세상과같은수준에서는할수없는기능이며세상보다낮은수준에서는경멸을받는다.

얼마전,
서울프레스센타에서중견목회자들이모여’자기성찰을위한포럼’을가진바있다.
이포럼에서교계의원로한분은목회자들의변질에대해심층적이고구체적인지적을
했다.
무인가신학교가배출하는가짜들도큰문제지만정규신학교를졸업한목회자들문제
역시심각하기로는마찬가지라는얘기다.
우선,
예언자의품격이없어졌다고했다.
세례요한은겉모습과삶의방식에서보통사람과는판이하게달랐다.
지금의목사들은외형이아니라그’내용’에서그래야한다.
이혼탁한한국사회의’세례요한’이돼야하는것이다.
‘회개하라’고외칠수있는영력(靈力)이있어야한다.
그게없다는지적이다.
변질됐기때문이다.
하나님의영감에감동되어그분과소통할수있는통로가막힌것이다.
다른말로세속화됐다.
성직(聖職)이직업(職業)이되었으니거기에무슨영력이있겠는가.

다음이웅변가를거쳐만담가(漫談家)가되기직전까지와있다고했다.
교인들의비위를맞추고교인들을웃게만드는삐에로의수준이됐다는얘기다.
한마디로강단에’케리그마’가없는것이다.
권위있게선포되는,위탁된’말씀’이없는것이다.
하나님의말씀이선포돼야하는강단이사자후를내뿜는웅변과사람들을웃기는
만담가의자리가됐다는것이다.
케리그마가없는강단은이미기독교는아니다.
특히개신교예배의중심이’설교’에있음을생각하면더그렇다.
설교-케리그마가없는목회자는엄격히말해목사가아니다.

한국개신교의교파는몇개나될까.
그걸제대로하는사람은아무도없다.
장로교라는간판을내건교파만해도100개가넘는다.
핵분열을했기때문이다.
이유는단한가지,’총회장’이라는감투때문이다.
목회자들이감투를얼마나좋아하는가.
신앙노선이아니라,신학적인차이때문이아니라감투때문에갈라지고,또갈라지고
있는게한국의개신교다.
목회자들의감투욕심은교단을쪼갤정도로강열하며그게성직자에게금물인명예욕
이다.
그원로가지적한게바로이탐욕이다.
그리고한걸음더나아가그것을자랑으로여기는치졸함을비판하고있다.
이모든지적사항은성직자로서는있을수없는가장기본적인하자들이다.
쉽게말하면기본이안돼있는인간들이목회자가되어있기때문이다.

우리가살고있는일상의주변에서어떤사람들이신학교에가는지를살펴보면대답은
절로나온다.
따라서앞으로도그수준에서의개선은아주어려울것이다.
인간적바탕이크게부족하기때문이다.
‘한국교회는상식이부족하다’는안티기독교단체의주장은충분히일리가있다.
우리사회의중간수준에도미치지못하는일들이교회안에서는다반사다.
지식인들이교회를떠난것은이미오래전이다.
견딜수가없었기때문이다.
그런데도교회는점점더소란스러워지고있다.
그소음속에서어떻게기도를드릴수가있겠는다.

그래도희망적인것은이포럼에서본질적인문제에접근하는진지한자세가있었고,
중견목회자들이도출한문제의식과그해법이본질적이었다는점이다.
첫째가교회와예배당을구분하자는것이다.
얼핏들으면잘못된주장같지만이건사실이다.
‘교회’는ekklesia,하나님의부르심을받고그분앞에나아온’무리’다.
사람이교회인것이다.
정말이건본질적인문제다.
이점만제대로알아도한국교회는달라질수있다.
극단적으로말해교회만있다면예배당-그집은없어도그만이다.
교회의물리적필요에의해예배드리는집-예배당이있는것이지,화려하고큰예배당이
있고교인-교회가있는것은아니다.
에클레시아의뜻만제대로알고있다면온갖물리적팽창-성공이아무것도아니라는
것을깨달을것이다.
보이는예배당은아무리크고화려해도땅위에서끝나는먼지일뿐이다.
우찌무라간조나함석헌의무교회주의-예배당없는신앙생활이그런것이다.

두번째명제가,
‘성경적인크리스챤을양성하자’는것이다.
예수무당과굿을배격하자는얘기다.
성경을덮어놓고,읽지않고믿는위험한신앙을바로잡자는것이다.
문제의핵심을짚어낸반성이다.
교회-에클레시아의기준은성경뿐이다.
거기에없는것은그게무엇이든참교회와는아무관계도없는것들이다.
주일이면하루종일포로처럼예배당에붙잡혀있는것이사실은아주사악한인간의
술수임을알아야한다.
성경을읽지않고성경을모르는교인이제대로된크리스챤일리가없다.

다음이기도하는교회,기도하는교인들이되자는것이다.
기도가무엇인가.
하나님과소통하는영적통로다.
주께서가르치신대로골방에들어가문을닫고,은밀한중에보시는분에게드리는
진실된기도를하자는것이다.
수천,수만이모여팔을하늘로쳐들고고함치고,울부짖는카타르시스는기도가아니
라는자성의소리다.
이제는기도를통해하나님의소리,말씀을들을때가되었다는얘기다.

다음이목회자의자질이향상되어야한다는주문이다.
목사는목회자일뿐만아니라사회의지도자이며그시대의예언자요선지자다.
그런위치에서그소임을다하기위해서는우선인간적인자질이그일에맞아야하고
상당한수준의전문교육과영성훈련이있어야한다.
이대학,저대학다떨어지고신학교에나가는수준으로는감당할수없는사명이다.
목회자들의자질향상,그것은한국개신교의사활이걸린중차대한문제다.
선발,교육,서임에서더없이엄격해져야한다.
그게가장시급한급선무다.
결국땅위의모든조직은사람이운영하는것이다.
그래서사람이중요하다.
‘보이는땅위의교회’도예외는아니다.
교회도그인력이우수해야한다.
하나님의일을맡아하는사람들이아닌가.
사실최고의엘리트가필요한곳이교회다.
결국아무나예언자-선지자가될수있는것은아니다.
그래서기름부음을받는직분이었던것이다.
이제우리모두는간절한기도로서참예언자-참선지자가나타나기를간구해야한다.
예언자가있어야하나님이이시대에우리에게주시는말씀을들을수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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