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된 예수.
예를들어우리가부활하신예수를만났다고하자.
정말우리모두는그예수를알아볼수있을까.
통계를내본일은없지만거개의크리스챤들이그분을알아볼수있다고생각할것이다.
그러나냉정히,그리고객관적으로생각해보면예수를알아볼수있는크리스챤은
하나도없다.
그분을본일이없기때문이다.
예수의얼굴을본크리스챤은단한사람도없고,또있을수도없다.
그분은2000여년전팔레스틴의갈릴리지방에살았던농부였고,우리는21세기를살고
있는현대인들이다.
수많은크리스챤들이그분을알아볼수있다고생각하는것은화가들이그린,상상화인
예수의얼굴을정말그분의얼굴이라고믿고있기때문이다.
화가들이그린예수의얼굴은화가마다다르다.
시대,국적,민족,문화에따라예수의얼굴은천차만별이다.
심지어검은예수까지있다.
왜그런가.
화가마다자기가해석한예수를그렸기때문이다.
때문에화가들이그린예수의얼굴은정말그분의얼굴일수가없다.
가장초기의그림들도서로다른얼굴을하고있다.
직접그분을본화가가없기때문이다.

화가가그린예수의얼굴을그분의얼굴로생각하는것은’해석된예수’를믿는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림의세계만그런것은아니다.
복음서가기록되는단계에서부터예수는수많은사람들에의해서로다르게해석됐다.
결코나쁜의도는아니었지만그들은자기가체험하고느끼고생각하는예수를나름
대로기록했다.
지금까지수많은외서(外書)나위서(僞書)들이복음서와함께있는이유가그것이다.
대표적인책의하나가’도마복음’이다.
모든해석은반드시’잘못된해석’을포함한다.
그리고긴시간이지나면그왜곡된내용이제자리를잡고도그마가되는것이역사적인
사실이기도하다.

마태복음27장51-54절은십자가에서예수가숨을거두는순간의장엄한광경을묘사
하고있다.
‘바로그때,
성전휘장이위에서아래까지두폭으로찢어지고,
땅이흔들리고바위가갈라지고,
무덤이열리면서잠들었던많은옛성인들이다시살아났다.
그들은무덤에서나와예수께서부활하신뒤에거룩한도시에들어가서
많은사람에게나타났다.
백인대장과또그와함께예수를지키고있던사람들이지진을비롯하여여러가지
일들이일어나는것을보고’이사람이야말로정말하나님의아들이었구가.’하며
몹씨두려워하였다.’
이묘사는전형적인샘(Sem)족의과장법이다.
성경어디에도이기록에관한후속기사가없다.
기록된대로큰지진이있었고죽으지오래된사람들이살아났다면그건반드시
공식기록으로남을만한큰사건이다.
그런데도로마사나유대사에그런기록은없다.

그것은,
이기사가유대종말론을염두에두고있는신앙적해석이기때문이다.
예수의주검이가지는우주적의미에대해나름대로의해석을했기때문이다.
나는히브리대학부설’마틴부버연구소’에서연수받을때비교종교론을연구하는
히브리대학교수에게물어봤다.
‘한국인유학생으로샘족의과장법에대해연구하는분이있는가.’
없다는것이었다.
정말유감스러웠다.
신,구약성경에대한올바른이해를위해서도샘족의과장법은연구돼야한다.
성서의번역을위해서도그렇다.
지금도,악의는없지만아랍인들의허풍은여전하다.
그게그들의뿌리깊은문화다.
과장법안에담겨져있는소중한의미를제대로알기위해서라도샘족의과장법은연구
돼야한다.

토마스제퍼슨(ThomasJefferson1743-1826)은,
미국’독립선언서’의기초자이자미국의제3대대통령이기도하다.
미국민주주의의아버지라고불리는제퍼슨은깊은신앙의소유자이기도했다.
특히그는개인적으로’예수연구’에몰두하기도했다.
대통령첫임기의막바지에이른어느겨울날저녁,
그는예수의진정한말씀과가르침이라고생각되는것만을수록하는새로운개인
복음서의편찬에착수했다.
‘킹제임스버젼-흠정역’에서해당내용을오려내연대적순서에따라공책에배열했다.
그후,이작업에다시손을댄것이78세에이른1816년이었다.
그는킹제임스역의발췌부분에헬라어와라틴어,프랑스어번역본들을병열편집해서
덧붙였다.
그가’나사렛예수의생애와교훈’이라고제목을붙인이소책자는그의집안에보관돼
있다가1904년제57대미의회의결정에따라출간되어상원과하원의각의원들에게
배부됐다.

제퍼슨이미국의제2대대통령이었던존아담스(1735-1826)에게보낸편지를보면
그가신약성경,특히복음서에대해가지고있었던생각을읽을수있다.
1813년10월12일의편지에는,
‘우리는그책들을간략한복음전도서로줄여야하며그안에서도예수가직접한
말만을골라취해야합니다.
이는예수가얘기한내용을제대로기억하지못하거나이해하지못한데서비롯된
자신들의그릇된생각을그의말인양제시하고자기들스스로도이해하지못한것을
남들이도무지알아들을수없는모호한어법을사용하며전하고있는것을가려냄으
로서가능합니다.
그러면거기에는인간에게주어진가장숭고하고자비로운도덕율법이남게됨을
발견할것입니다.’

다시1814년1월24일에아담스에게보낸편지내용은,
‘이책(복음서)들은,
그전체역사가너무나불완전하고의심스러워상세한연구를시도하는일조차부질
없게생각될정도입니다.
그복음서들의내용에서나그와연관된책들의내용에서발견되는속임수들을볼때
그중에도대체어떤부분이진짜인지의심하고들어가지않을수가없읍니다.
[신약성서]에는그일부만이탁월한정신에서유래되었으며나머지부분은매우저급한
정신의소유자들이꾸며낸것임을보여주는내재적증거가있읍니다.
이런부분들을가려내는것은거름더미에서다이아몬드를골라내는것만큼이나쉬운
일입니다.’
현대적학문들이가지고있는정밀한방법과도구가없었던제퍼슨은다이아몬드를
도끼로다듬듯거칠게작업했다.
그러나그는분명다이아몬드가어떻게생겼는지는알고있었다.
그는복음서가취합되는과정에서예수의본래가르침이첨삭,변경된사실을알아
차리고충격받은깨어있는정신의소유자였다.

미국에는’예수세미나’라고부르는,
신양성서전문연구교수들의조직이있다.
이조직이세계적인주목을받는것은그연구내용의발표때문이다.
거의평생을복음서연구에매달려있는최고의전문가들인이들은상식을벗어나는
연구발표로사람들을놀라게하고있다.
그러나그들의연구가인정받는것은그진지함과전문성,그리고누적된공로때문이다.
‘예수세미나’는복음서안의예수의말씀은20%정도만이그분이직접하신말씀으로
결론짓는다.
나머지는그의입을빌린개인,교회의주장이라는것이다.
물론그주장들은예수를해석하는,더신앙적이되기위한것들임은말할것도없다.

그러나그렇다하더라도지금우리들은20%의주님의말씀과80%의그분을해석한
얘기를읽고있는셈이다.
예수세미나의주장은그전문성때문에학계에서도수용되고있다.
엄격히말해예수에대한해석은자의적(恣意的)일수밖에없다.
때문에잘못된경우도있다고봐야한다.
마태복음27장51-54절의기록도자의적해석의하나로볼수있다.
그의도하는바는분명신앙적이지만사실이아닌것은아닌것이다.
그러나,그렇다고해서샘족의과장법이우리들의신앙을방해하는것은아니다.
그래서성경은’뜻으로읽는책’인것이다.
가장위험하고큰문제는지금의크리스챤들이성경을읽지않고예수를믿고있다는
사실이다.
그러한신앙태도는남이해석해주는예수에대해서만알뿐,자기가부딛쳐체험하는
예수를만날수없다는함정에빠지게된다.
성경은진지하게,정밀하게,꾸준히읽어야하는책이다.
그래야해석되지않은예수를만날수있다.
그리고그작업은남이대신할수없는,해서도안되는자기자신의일이기도하다.

우리모두는반드시부활하신예수를만날것이다.
그때,
어떻게그분을알아볼수있을까.
우리눈에익은,화가들의서로다른상상화는전혀도움이되지않는다.
그것또한해석된예수이기때문이다.
방법은하나밖에없다.
느끼는것이다.
‘예수의마음’으로’예수의마음’을느끼는것이다.
‘내가네안에,네가내안에있다’는주님의말씀이그것이다.
예수의마음을품지않고있는크리스챤은그분이바로옆에계셔도느끼지못한다.
영적통로가없기때문이다.
그러나그분의마음을닮고,품고있는크리스챤은그분이멀리계셔도곧알아볼수있다.
그분이우리에게다가오시고,우리를부르시기때문이다.
지금의교회는자의적으로해석된예수를도그마로포장해서기복상품(祈福商品)으로
세일하고있다.
우리모두는,이제그것이얼마나위험한일인지를깨달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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