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축문(祝文)
維歲次,
顯考께서六.二五戰爭參戰後,
未還하시어五十餘年哀慕不寧타가,
今日에야顯考遺體를確認하여,
이곳國立墓地靈宅으로奉安하오니.

지금예순두살의강준석씨가
네살때집을떠나실로58년만에
유골이되어돌아온젊은아버지를위해
손수지은축문(祝文)이다.
축문은제사때지어신명에게고하는글이다.

維歲次는(유세차)는,
‘간지(干支)에따라정한해로말하자면’이라는뜻으로죽은이에대해슬픈뜻을
나타내는제문(祭文)의첫머리에사용하는관용어다.
顯考(현고)는돌아가신아버지의위패인신주(神主)첫머리에쓰는말이다.
哀慕不寧(애모불령)은애도하고사랑하여그리워함이다.
顯考遺體(현고유체)는아버지의시신을달리이르는말이며,
奉安(봉안)은신주를모시는뜻이다.

‘간지에따라정해진해로말하자면,
아버지께서는6.25전쟁에참전하신후
돌아오시지않았읍니다.
오십여년을애도하고그리워하던중
오늘에야아버지의유골을받아확인하고
이에국립묘지에아버지의신주를모시게되었읍니다.’

국방부는지난해발굴한6.25참전전사자유골378구에대한DNA검사를실시해
2구의유해에대해그신원을확인했다.
그중한구가지난해2월충북영동에서발굴한고(故)강태수일병이었다.
예순두살의아들강준석씨가받아든아버지의유골이그것이다.
대전국립현충원에안장된강태수일병을위해아들이축문을지은것이다.

1950년7월,
강태수일병의집으로그의전사통지서가왔다.
충북영동군부근에서전사했다는것이다.
강일병의아버지는그전사통지서를찢었으며’내아들은죽지않았다.’고했고,
국가보상도거부했다.
식구들의기다림은그날부터시작됐다.
온식구가잠이들었다가도바람결에’부스럭’소리라도들리면’왔구나’하고
잠에서깨어났다.
그렇게58년이흘러간것이다.

집을떠나있는식구가있는모든가정은,
‘부스럭’소리에도일어나앉는다.
겪어보지않은사람들은절대로이해하지못하는,
생과사가갈리는단장(斷腸)의순간이그것이다.
그되풀이는정신을갉아먹고사람을지치게한다.
점점예민해진신경은바람소리에라도무슨소식이실려올가몰라
귀를기울인다.
그래서사람,식구,가족을기다린다는것은가장무서운형벌이다.
아들,남편을전장에보낸모든가족은,
그남은식구들은돌아오지않는혈육을그렇게애가타게기다렸다.

남은가족을유가족(遺家族)이라고한다.
수많은청상과부와철부지들은,
아무도돌아보지않는세파를몸으로떼우면서
주변부로밀려난다.
그렇게쇠락해간것이다.
모든악조건은세습되었고,
살아남은사람들은모두가제살기에바빴다.

현충일을어떻게이해하고
현충일을어떻게지키는지를보면
그나라의어제와오늘,그리고내일을가늠해볼수있다.
하나밖에없는목숨을나라에바친사람들은,
뚝이되어홍수를막은주검들이다.
그뚝이없었다면다쓸려갔을것이다.

그러나아무도그들을기억하지않는다.
그장엄한주검의뜻을모른다.
그리고잊혀지고있다.
역사는되풀이되기때문에기록된다.
그기록에서지혜를얻지못하면
똑같은일을당하는게또역사다.

뚝이없다면무엇으로물을막을것인가.
현충일-顯忠日은,
뚝이되어전장에서산화(散華)한이들을기리는날이다.
자라나는애들에게그걸가르치는날이다.
애들이그걸알고자라나야우리에게내일이있다.
노는날이아니다.
놀기만해서는안되는날이다.

2008년현충일아침에.
要路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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